홍해엔 수만㎞ 기름띠…후티 공격 받은 英화물선 결국 침몰
홍해에서 예멘 친(親)이란 후티 반군의 공격을 받은 영국 소유의 화물선이 결국 침몰했다. 후티가 민간 선박에 대한 무차별 공격을 지속할 경우 유조선 파괴 등으로 '환경 재앙'이 발생할 것이란 경고가 현실이 되자, 후티 반군에 대한 비난의 목소리가 한층 높아지고 있다.
2일(현지시간) 로이터통신 등에 따르면 지난달 18일 아랍에미리트(UAE) 코르파칸에서 불가리아 바르나로 향하던 중 후티의 공격을 받은 화물선 루비마르호가 이날 침몰했다. 12일 동안 홍해에서 표류하다 폭풍우를 만나 가라앉은 것이다. 다만 공격받은 당시 승조원 24명은 모두 대피해 인명 피해는 없다.
후티 반군이 홍해에서 민간 선박에 대한 공격을 시작한 지난해 11월 이후 공격받은 배가 침몰한 것은 루비마르호가 처음이다. 이 배가 침몰한 해역 인근으로는 수십㎞에 달하는 기름띠가 형성돼 있다고 로이터통신 등은 보도했다.
아흐메드 아와드 빈무바라크 예멘 외무장관은 소셜미디어 X(옛 트위터)를 통해 "루비마르호 침몰은 예멘과 주변 지역이 과거 경험하지 않은 환경 재앙이며 우리 국민에 새로운 비극"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우리는 매일 후티 반군의 모험에 대한 대가를 치르고 있다"며 후티 측을 맹비난했다. 사우디의 지원을 받는 예멘 정부는 2014년부터 후티 반군과 대립해왔다.
중동을 담당하는 미군 중부사령부 등에 따르면 루비마르호는 공격받을 당시 2만1000t(톤)이 넘는 비료를 운송 중이었다. 이 엄청난 양의 비료가 바다로 흘러 들어가면 해양 생태계에 큰 영향을 끼칠 수밖에 없다는 것이 외신의 분석이다. 비료로 영양분이 과잉 공급되면 해조류 등이 지나치게 증식해 바닷물의 산소를 흡수하게 되는데, 이렇게 되면 다른 해양 생물의 생존이 어려워지는 '부영양화'가 발생할 수 있다.
AP통신은 해상 보안 전문가 이안 랄비의 말을 인용해 "홍해에서 바닷물의 순환은 독특한 패턴을 가지고 있는데, 마치 호수에서처럼 홍해에 유출된 물질은 다른 곳으로 가지 않고 홍해에 남는다"며 "이 때문에 환경 훼손 우려가 크다"고 설명했다.
홍해의 해양생태계가 파괴되면 예멘 등 어업 의존도가 큰 인근 국가들이 타격을 입게 된다. 사우디아라비아는 지난 수십년간 해수 담수화 시설을 구축해 주요 도시에 식수를 공급하고 있는데, 바다에 유출된 기름 때문에 시설 운영에 어려움을 겪을 수도 있다. 영국 가디언은 "거대 선박 침몰의 영향으로 이 항로를 지나는 다른 선박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전했다.
홍해가 산호초가 비교적 건강한 상태로 보존된 곳으로, 다양한 해양생물이 살고 있어 환경 오염에 대한 우려는 더욱 커지고 있다. 요르단대 소속 해양과학 연구원 알리 알사왈미는 "홍해 인근 국가들이 바다를 정화하는 일뿐 아니라 오염 지역을 모니터하는 긴급 대책을 세워야 한다"고 로이터통신에 토로했다.
후티 반군은 지난해 10월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무장 정파 하마스 간 전쟁이 발발한 이후 하마스를 지지한다는 명분으로 홍해를 지나는 상선들을 공격해오고 있다. 미국은 영국·바레인·캐나다·프랑스·이탈리아 등 약 20개국이 참여한 다국적 작전 태스크포스(TF)를 구성해 대응하고 있지만 후티의 공격은 계속되고 있다. 가디언은 "미군 주도의 공습이 한 달 넘게 이어졌지만 후티는 여전히 공격 능력을 갖추고 있다"며 "앞으로도 공격을 지속할 것으로 보여 이런 재앙이 이어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임주리 기자 ohmaj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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