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 버전 ‘낙랑공주’ 이야기를 아시나요 [조홍석의 ‘알아두면 쓸데 있는 유쾌한 상식 이야기’]

2024. 3. 2. 2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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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 수도 하노이는 2000년이 넘는 역사를 갖고 있습니다. 하노이 중심에서 서북쪽으로 20㎞ 떨어진 꼬로아성(Thanh Co Loa·달팽이 성)은 하노이의 시작을 알려주는 유적지인데요. 적의 침입을 잘 방어하고자 나선형으로 성곽을 쌓아 이런 이름으로 불린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 유적지에는 우리나라 호동왕자-낙랑공주 이야기와 유사한 슬픈 전설이 전해지고 있습니다.

전설에 따르면 기원전 257년 안즈엉브엉(안양왕·安陽王)이 반랑국을 무너뜨리고 어우락 왕조를 시작하면서 꼬로아성 일대를 수도로 정합니다. 하지만 성을 쌓던 도중 계속 무너졌답니다. 이에 왕이 목욕 재개하고 천지신명에게 지극 정성으로 제사를 올리니 꿈에 노인이 나타나 “장차 찾아올 황금 거북이와 함께 성을 쌓아야 무너지지 않을 것”이라고 하더랍니다.

그 뒤 실제로 나타난 황금 거북이를 정성껏 모시자 거북이가 말하길 “반랑국 왕자의 넋이 복수를 하려는데 여관집 딸이 갖고 있는 흰 닭이 바로 그 요괴니 그 닭과 딸을 죽이라”고 알려줍니다. 이에 왕이 요괴를 물리치자 성이 제대로 쌓이게 됐다고 합니다.

그 뒤 3년이 지나 황금 거북이는 떠났는데요. 발톱을 하나 주면서 적이 쳐들어오면 이 발톱으로 쇠뇌 방아쇠를 만들어 쏘라고 알려줍니다. 당시는 진이 망하고 한나라가 들어서던 혼란기였는데요. 어우락 왕조 북쪽 지방 장관인 ‘찌에우 다’가 지금의 중국 광동성 일대에 남비엣(남월·南越)이라는 나라를 세우고 어우락 왕국을 공격하지만 발톱으로 만든 쇠뇌로 인해 연이어 패배하고 맙니다. 그러자 ‘찌에우 다’는 화친하자며 본인 아들 ‘쫑 투이’ 왕자와 안즈엉브엉의 딸 ‘미 쩌우’ 공주의 결혼을 요청했습니다. 평화가 찾아오는 듯싶었습니다.

베트남판 ‘삼국유사’에 기록된 전설

하지만 결혼 후 꼬로아성에 살게 된 왕자가 공주를 꼬드겨 발톱을 가져오게 한 뒤 가짜 발톱과 바꿔치기하고는 부모를 보러 다녀오겠다고 합니다. 이에 공주는 슬퍼하면서 자기 이불에 든 거위 깃털을 뽑아주며 이걸 보고 찾아오라고 당부합니다. 그러나 남비엣은 왕자가 돌아오자마자 공격을 재개합니다. 안즈엉브엉은 태연히 바둑을 두며 거북이 발톱이 지켜줄 거라고 믿었지만 가짜로 바뀌치기 당한 걸 몰랐고, 결국 꼬로아성이 함락됩니다.

이에 말에 올라탄 왕은 공주를 태우고 탈출하지만 뒤에 앉은 공주는 왕자를 다시 볼 욕심에 거위 털을 뽑아 왕자가 이끄는 남비엣군이 뒤쫓아올 수 있게 합니다. 결국 바다에 이르러 더 도망갈 곳이 없자 안즈엉브엉은 왜 하늘이 날 버리느냐고 울부짖었습니다. 그러자 황금 거북이가 나타나 “바로 당신 뒤에 있는 적을 베어야 구해줄 수 있다”고 합니다. 비로소 사태를 깨달은 왕이 딸의 목을 베자 황금 거북이가 길을 내어 안즈엉브엉을 바닷속 궁궐로 안내했다고 하지요. 뒤늦게 당도한 쫑 투이 왕자는 목 잘린 미 쩌우 공주의 시신을 붙잡고 통곡했고 장례식 도중에 결국 왕자마저 우물에 뛰어들면서 이 비극이 끝납니다.

이 전설은 14세기 후반 베트남 설화집 ‘영남척괴열전(嶺南怪列傳)’에 처음 수록됐습니다. 이 책은 몽골 침략에 맞서던 베트남인의 민족적 각성을 고취하기 위해 여러 고대 설화를 실었기에 베트남판 ‘삼국유사’라 할 만합니다.

아마도 실제 기원전 179년 남중국에서 침략한 남비엣에 쫓겨 바다에 빠져 죽은 안즈엉브엉의 슬픈 역사가 구전되던 중 고려와 교류하면서 알게 된 호동왕자 이야기가 덧붙여지지 않았을까 합니다. 왜냐하면 베트남 운문소설 ‘관음시경(觀音氏敬)’의 주인공 관음 스님 고향은 고려라고 나오는 등 우리나라와의 교류 흔적이 있거든요.

조홍석 삼성서울병원 커뮤니케이션팀 수석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248호 (2024.02.28~2024.03.05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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