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어젠, ‘펩타이드’ 앞세워 수출 공세…영업이익률 51%
대한민국은 수출로 먹고사는 나라다. 수출 비중이 큰 기업 뒤에 ‘수출 역군’ ‘수출 보국’ 타이틀이 뒤따를 정도다. 최근에도 윤석열 대통령이 외국인투자기업(외투기업) 대표들과 간담회 자리에서 비슷한 발언을 했다.
그간 수출 보국 타이틀은 반도체 등 제조업들의 독차지였다. 하지만 시야를 조금 넓히면 수많은 다양한 수출 역군을 찾을 수 있다. 상대적으로 규모는 작지만 매출 대부분이 수출로 발생하는 기업들이 있다. 펩타이드 기반 전문 테라피(필러)와 화장품 등을 개발해 판매하는 ‘케어젠’도 그중 하나다. 2023년 9월 기준 130개국에 제품을 수출한다. 연간 매출에서 수출이 차지하는 비중은 95%에 달한다. 수익성도 놀랍다. 2023년 연간 매출과 영업이익은 각각 792억원, 403억원. 영업이익률(OPM)이 50.8%에 달한다. 그야말로 ‘작지만 확실한’ 수출 역군이다.
2001년 설립…유방암 진단 모태
케어젠을 설립한 이는 정용지 케어젠 대표다. 정 대표는 성균관대에서 유전공학을 전공하고 미국 코넬대 분자생물학과 노스웨스턴 의대 박사 후 연구 과정 등을 마친 뒤 2001년 회사를 설립했다. 처음부터 펩타이드 기반 제품 개발·판매를 고민했던 것은 아니다. 창업 당시에는 모유로 유방암을 진단하는 ‘단백질 칩’ 사업을 시도했다. 하지만 국내의 경우 각종 규제로 인해 단백질 칩 사업 허가가 쉽지 않았다.
정 대표는 빠르게 사업 방향을 전환했다. 무리하게 규제 해소를 위해 뛰어다니며 자금을 낭비하기보다 당장 캐시카우(현금 창출)가 될 수 있는 사업을 발굴했다. 그렇게 뛰어든 게 지금의 펩타이드 시장이다.
케어젠은 펩타이드를 “성장인자 단백질(세포 성장·증식에 관여하는 생체 단백질)과 같거나 유사한 효능을 갖는 아미노산 중합체”라고 설명한다. 쉽게 말하면 아미노산으로 이뤄진 단백질 조각이 펩타이드다. 아미노산 조합에 따라 펩타이드 종류와 효능도 달라진다. 케어젠 측은 “수만 종의 펩타이드 연구를 통해 국내외 특허 등록이 완료된 것만 686건이다. 대규모 펩타이드 라이브러리를 구축하고 있다”고 밝혔다.
바이오에서 화장품으로 업종이 달라진 만큼 쉬운 결정은 아니었다. 그만큼 관련 업계는 정 대표의 경영 가치관이 빛났던 순간이라고 입을 모은다. 정 대표는 주주총회 등 주주들과의 소통 자리에서 ‘주인 없는 회사’를 경계한다는 발언을 해왔다. 창업자가 원하는 신약 개발 등의 행보도 확실한 캐시카우가 갖춰진 뒤 뛰어들어야 한다는 식이었다. 관련 업계 관계자는 “틀린 말이 아니다. 캐시카우 없이 신약 개발 등에만 몰두하는 바이오 기업의 경우 외부 투자자 자금으로 연명한다. 이 과정에서 창업주 지분율은 희석되고 연구개발 등 각종 사업 방향성은 투자자에게 휘둘린다. 경영권을 완전히 넘겨준 사례도 상당수”라고 설명했다.
정 대표의 케어젠 지분율은 2023년 12월 주식 대량 보유 상황 보고서 공시 기준 64%다. 2001년 설립됐고 2015년 상장까지 마쳤다는 점을 고려하면 상당히 높은 창업자 지분율을 유지하고 있다.
발로 뛰며 해외 시장 개척
에스테틱 등 의료미용 부문은 대표적인 고부가가치 시장이다. 관련 업계에서 “소비자 신뢰만 얻으면 이익은 알아서 따라온다”는 말이 나오는 배경이다. 그중에서도 펩타이드 기반 제품은 전통적인 에스테틱 제품보다 원가율이 더 낮다고 알려졌다. 케어젠의 2023년 3분기 누적 기준 매출원가율은 29.6%에 불과하다. 매출원가율은 매출에서 매출원가가 차지하는 비중이다. 예를 들어 100원의 매출을 일으켰을 때 회사가 부담한 원가는 29.6원 수준이라는 의미다. 원가율이 낮다 보니 영업이익률도 더 큰 구조다.
다만 아무리 고부가가치 제품이라도 찾는 이들이 없으면 끝이다. 정 대표와 케어젠은 초기부터 해외 시장을 염두해 제품을 개발했다. 국내 시장은 회사 인지도가 중요한 반면 해외에서는 기술력 하나로 뚫어낼 수 있다는 판단이었다. 정 대표는 제품 개발을 완료한 2004년부터 해외 전시회에 참여해 직접 제품을 홍보했다. 발로 뛴 효과는 상당했다. 케어젠이 만든 화장품 원료 효능이 좋다는 입소문이 퍼졌다. 주요 글로벌 화장품 브랜드들이 앞다퉈 케어젠을 찾았다.
현재도 전시회 홍보는 케어젠의 주력 마케팅 수단이다. 케어젠 측은 “전 세계 130개 국가에서 각 나라별 대리점을 통해 제품 판매를 하고 있다. 지속적인 신규 거래처 확보를 위해 해외 전시회에 참가하고 마케팅 활동에 주력 중이다. 전시회에서 신규 거래처를 발굴하면 이후 현장 상담과 초청 상담 등을 통해 주문을 수주하는 방식”이라고 설명했다.
발로 뛰며 얻어낸 신규 거래처들은 그대로 매출로 이어졌다. 연간 매출의 95% 정도가 해외 수출로 발생하는 배경이다. 지역별로 살펴보면 아시아가 비중이 가장 크다. 전체 수출의 절반가량을 담당한다. 그 뒤로 유럽과 아메리카, 아프리카, 오세아니아 등의 순서다.
캐시카우 앞세워 신사업 발굴
예상보다 느린 매출 성장세는 과제
기존 캐시카우를 발판 삼아 새로운 성장동력도 찾아 나섰다. 최근에는 펩타이드를 활용한 혈당 조절 건강기능식품 ‘프로지스테롤’에 힘을 주고 있다. 프로지스테롤의 원료인 디글루스테롤(Deglusterol)은 2022년 3월 혈당 강화 효과를 인정받아 미국 식품의약국(FDA)의 신규건강식품원료(NDI·New Dietary Ingredient)로 등록됐다. 디글루스테롤은 제2형 당뇨 환자에 인슐린 저항성을 낮추는 기전으로 혈당 조절에 도움을 주는 펩타이드다. 이 역시 해외 시장을 중심으로 영업 활동을 펼치고 있다. 최근에는 매출도 발생하기 시작했다. 2023년 3분기 누적 기준 건강기능식품 매출은 85억원, 전체 매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13.8% 정도다.
다만 관련 매출 성장 속도가 예상보다 느리다는 점은 우려되는 대목이다. 앞서 케어젠은 2023년 2월 연간 매출 전망치를 1500억원으로 공시했다. 프로지스테롤 매출이 빠르게 늘어날 것으로 판단, 높은 가이던스를 제시한 것. 하지만 2023년 12월 연간 매출 전망치를 800억원으로 낮췄다. 그러면서 “건강기능식품 신규 제품의 각국 현지 등록 절차 지연 등에 따른 매출 이연 발생으로 인한 매출액 감소를 반영했다”고 말했다. 올해 2월 5일 발표된 잠정 실적은 792억원으로 나타났다.
관련 업계는 프로지스테롤 수출 공급 계약 대부분이 ‘논바인딩(non-binding)’이라는 점에 주목한다. 논바인딩 계약은 말 그대로 구속력이 없는 계약이다. 계약 규모가 1조원이 넘더라도 실제 계약금은 고객사 발주량에 따라 확정된다. 업무협약(MOU) 수준의 계약으로 판단하면 이해가 쉽다.
케어젠은 신사업과 별개로 신약 개발에도 뛰어들었다. 앞서 언급한 정 대표의 경영 전략이 구체화되고 있는 셈이다. 물론 아직 갈 길은 멀다. 케어젠 분기보고서에 따르면 펩타이드를 활용한 노인성 안구 질환 황반변성 치료제 ‘CG-P5’ 등을 개발 중이다. 케어젠 측은 “케어젠이 개발한 습성황반변성 치료 펩타이드는 안전하고 안정적이다. 점안액 형태로 편의성이 높고 부작용이 없는 수준”이라고 말했다. CG-P5 임상 1상은 미국에서 진행 중이다. CG-P5 임상 1상은 지난해 12월 첫 환자 투약을 시작했다. 이르면 오는 5월, 늦으면 올해 하반기에야 중간 결과 확인이 가능할 것으로 예상된다.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248호 (2024.02.28~2024.03.05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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