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겨울은 날씨를 종잡을 수가 없다. 최근에는 추웠다가 더웠다가 하면서 겨울인지 봄인지 분간이 가지 않는 날들이 계속되고 있다. 그 바람에 한겨울에도 제철에 앞서 꽃을 피우는 식물들이 유난히 많았다. 봄인 줄 알고 서둘러 꽃을 피웠다가, 어느 날 갑자기 폭설이 내리는 바람에 난데없이 된서리를 맞는 식물들도 있었다. 그 와중에 필 꽃은 또 계속 핀다.
올해 매화꽃이 피는 시기가 평년에 비해 10일에서 40일가량 앞당겨질 것으로 예상된다. 남쪽 어딘가에서는 지난 1월에 이미 매화꽃이 피었다는 보도가 있었다. 매화만 그런 게 아니다. 다른 꽃들도 마찬가지다. 꽃들이 일찍 피어서 반갑기는 한데, 그게 급변하는 기후 때문에 식물들이 채 적응하지 못해서 생기는 일이라고 하니 입맛이 씁쓸하다.
이런 사정을 감안해 지자체마다 봄꽃 축제를 앞당겨 개최한다는 소식이다. 지자체로서는 매년 꽃이 피는 시기를 가늠해 축제 일정을 조정하는 것도 참 골칫거리일 것 같다. 여차하면 판이 어그러질 수 있다. 이런 소란 속에서도 마침내 봄이 오고 있다. 꽃이 피는 시기가 빨라지면서, 올해 한강에서 맞이하는 봄 또한 그 어느 때보다 빠르게 다가오는 모양새다.
▲ 한강 강변 언덕에 핀 봄까치꽃, 일찌감치 봄소식을 알려주는 꽃 중에 하나다. 꽃 크기가 0.5cm에 불과해 가까이 다가가 보지 않으면 잘 보이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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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촌한강공원 자연학습장에 드문드문 피어 있는 야생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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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에서 봄을 즐기는 시민들
올해 들어, 처음 한강에서 자전거를 탄다. 올겨울은 아침저녁으로 기온의 변화가 심하고, 눈이 오거나 비가 오는 일이 잦아 자전거를 탈 수 있는 날이 그다지 많지 않았다. 언제 또다시 좋은 날씨가 찾아올지 알 수 없으니 기회가 있을 때 자전거를 타야 한다. 일기예보에 따르면, 이날 낮 최고 기온이 영상 9도까지 오른다. 자전거 타기에 좋을 날씨다.
아직은 피부에 와닿는 공기가 쌀쌀한 편이다. 그래도 이런 날이 오히려 땀이 잘 나지 않아 자전거를 타는 데 적합하다. 그리고 자전거 페달을 밟다 보면 추위는 금방 잊히기 마련이다. 서울에서 가장 먼저 봄이 당도하는 곳 중 하나가 한강이다. 이른 감이 없지 않지만, 겨울이 그 명을 다해 가는 지금 한강에 상당한 변화가 일어나고 있는 게 분명하다.
▲ 봄빛이 역력한 이촌한강공원, 강변 자전거도로가 지나가는 길가에 새로 돋아나는 싱싱한 풀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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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강에는 봄이 오고 있지만, 강 건너 멀리 바라다보이는 관악산에는 아직도 희끗희끗 눈이 덮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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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은 확실히 봄빛이 완연하다. 얼마 전까지 폭설이 내렸던 터라 큰 기대를 하지는 않았는데 직접 와서 보는 한강은 예상 밖이다. 이제 막 얼음이 녹아 푸석푸석한 땅 위로 파릇한 풀들이 무더기로 돋아나는 게 보인다. 그 풋풋한 풀들 사이로 봄까치꽃 같은 야생화들이 여기저기 피어 있다. 봄까치꽃은 이른 봄에 피는 야생화 중에 하나다.
버드나무 가지에서 푸른 빛이 감돈다. 그 풍경이 강 건너 멀리 여전히 눈이 덮여 있는 관악산과는 지극히 대조적이다. 한강에 이렇듯 봄꽃들이 피어 있는 걸 봤으니, 이제 서울에 봄이 왔다고 말해도 하나 틀릴 게 없다. 날이 포근해서 그런지, 한강 수면 위에 떠 있는 물새들도 한결 평안한 모습이다. 물 위를 유유히 떠다니다가 자맥질하며 먹이를 찾고 있다.
▲ 한강 강가에 줄지어 서서 한가롭게 깃털을 다듬고 있는 물새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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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의도한강공원, 강변 잔디밭에서 피크닉을 즐기고 있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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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가에서는 한 떼의 물새들이 몸단장하느라 여념이 없다. 부리에 물을 묻혀 깃털을 다듬고 있다. 그 물새들 사이에 바닷가에 있어야 할 갈매기들이 뒤섞여 있는 게 보인다. 먹이를 찾아 한강을 거슬러 올라온 갈매기들이다. 그 수가 적지 않다. 한강이 끼룩끼룩 갈매기 울음소리로 시끌시끌하다. 이것도 이른 봄에 한강에서 보는 풍경 중 하나다.
봄나들이에 사람들이 빠질 수 없다. 물새들이 강가에서 한가롭게 시간을 보내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사람들이 강변에 돗자리를 깔고 앉아 정답게 봄볕을 쬐고 있다. 아직은 강변에 그늘막을 설치할 수 있는 시기가 아니라, 그나마 사람들이 적은 편이다. 그늘막 설치가 가능한 4월이 되면, 다시 강변이 사람들로 뒤덮이는 날이 올 것이다.
▲ 이촌한강공원, 산책로 자리에 새로 만들어진 자전거도로. 산책로에 있던 장애물을 피해 가느라 길이 심하게 구불구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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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져 버린 '미루나무 산책로'
한동안 한강에 나와 보지 못한 사이에 또 이런저런 변화가 눈에 띈다. 곳곳에서 공사가 진행 중이다. 그 공사들이 한강에 여러 변화를 가져왔다. 공사는 앞으로도 계속될 모양이다. 한강이 또 어떻게 변할지 알 수 없다. 한강을 자주 나가보는 사람들은 알 수 있는데, 요즘 한강이 꽤 어수선하다. 있었던 것이 없어지고 없었던 것이 계속 새로 생겨나고 있다.
살다 보면, 사실 그런 일이 일상다반사다. 딱히 문제 될 게 없다. 하지만, 한강에서까지 쉼 없이 '공사'를 겪어야 하는 게 영 마음이 편치 않다. 그 공사들이 기후변화를 겪는 것만큼이나 적응이 쉽지 않다. 이촌한강공원 강가에, 전에 보지 못했던 자전거도로가 새로 깔렸다. 원래는 강변 산책로가 있었던 곳인데, 그 길 위에 아스콘을 덮고 자전거도로 표시를 그려 넣었다.
보행로는 자전거도로 옆으로 겨우 사람들이 지나다닐 수 있게 만들었다. 그런데 그 폭이 지나치게 좁다. 자전거를 타는 사람들에겐 그다지 나쁠 게 없는 변화이긴 한데, 평소 이 길로 산책을 다니던 사람들에겐 이게 무슨 일인가 싶을 수도 있다. 이 길은 '시민들의 안전을 위해서 자전거도로와 보행로를 완전히 분리한다'는 기존 정책과도 맞지 않다.
▲ 이촌한강공원, '미루나무 산책로'가 있던 곳. 열수송관을 매설하는 공사가 진행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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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촌한강공원, 예전에 우리가 보던 '미루나무 산책로' 풍경(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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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언론에도 보도가 돼서 관심을 끌었던 '미루나무 산책로'마저 뜻밖의 변화를 겪고 있다. 이 산책로는 한강공원에서 찾아볼 수 있는 아름다운 산책로 중의 하나였다. 자전거를 타다가도 이 길을 보면, 걸어서 지나가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런데 지금 이곳에서 보게 되는 광경은 예전에 양버들이 산책로 양옆으로 도열하듯 높게 서 있던 그 풍경이 아니다.
여기도 공사 중이다. 열수송관 공사를 위해 나무들을 모두 한쪽으로 옮겨 심었다. 이 산책로가 이렇게 바뀔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던 터라, 당황스럽다. 올해는 한강에서 더 많은 변화가 일어날 전망이다. 열수송관 공사는 그나마 기간이 정해져 있다. 요즘은 한강에 수상버스를 띄운다고 야단이다. 김포 골드라인에서 생긴 출퇴근 문제를 수상버스로 해결하려는 속셈이다.
이 사업에는 수상버스 이용률을 높이기 위해 한강에 선착장 7곳을 조성하고, 거기서 가까운 곳에 버스정류장을 신설하는 계획 등이 포함돼 있다. 오세훈 시장이 이 일을 너무 서두르는 감이 없지 않다. 이전에 수상택시에서 실패한 전철을 밟지 않으려면, 숙고가 필요하다. 한강에서 접하는 봄소식이 반갑기는 한데, 오래간만에 찾은 한강이 이런저런 일로 참 어수선해 보여 마음이 심란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