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워야 제맛, 황태가 익어가는 마을

진재중 2024. 3. 2. 17: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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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꽃과 어우러진 대관령 횡계덕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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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재중 기자]

 일렬로 늘어선 황태덕장(2024/2/28)
ⓒ 진재중
     
영동고속도로를 타고 대관령을 지나다 보면 열 맞춰 길게 늘어선 명태덕장을 쉽게 볼 수 있다. 하얀 눈밭 위에 명태를 빼곡히 널어 말리는 황태덕장의 모습은 그 자체로 겨울을 상징하는 풍경이 됐다. 겨울철이면 50만 마리 이상을 말리는 횡계리 지역의 덕장은 겨울 눈꽃과 함께 진풍경을 연출한다.
국내의 황태덕장 명소는 평창군 대관령면 횡계리와 인제군 북면 용대리다. 두 곳은 한 겨울 가장 매서운 추위를 발하는 백두대간의 허리고 동해안에서 가장 가까운 고원 지대다.  
 
 눈 내린 대관령 횡계리(2024/2/28)
ⓒ 진재중
 
덕장에는 줄에 꿰어져 널린 명태가 가득하다. 아직은 명태에 가까운 모습이나 겨울을 나고 봄을 맞으면 황색 색깔을 띤 황태로 다시 태어날 녀석들이다.
  
 황태말리기 작업(2024/2/28)
ⓒ 진재중
       
명태가 많이 잡히던 시기, 갓 잡은 지방태는 곧바로 횡계 송천으로 이동, 배를 갈라 내장을 빼내고 덕장에 걸었다. 하천에 씻어서 바로 말릴 수 있기 때문에 하천 주변에 덕장이 성행한 이유 중 하나다. 요즘은 러시아산 동태를 수입해서 동해안에서 해동을 한 후에 씻어서 이곳에 올라온다.
세척까지 마친 채 그냥 덕대에 걸기만 하면 되는 상태로 온 것들이다. 명태덕장에 걸린 명태는 멀리 러시아에서 잡아온, 이른바 '원양태'라는 명태다. 과거에 근해에서 잡히던 지방태에 비할 수는 없지만 12월부터 4개월간 얼고 녹기를 반복하면 꽤 근사한 황태로 변신한다.
 
 대관령 횡계리 황태덕장(2024/2/28)
ⓒ 진재중
 
11월이면 고랭지 채소 수확을 마친 밭에 통나무를 이어 덕장을 만들고 12월 초부터 본격적으로 황태를 걸기 시작, 이듬해 5월에 상품화된다. 황태는 추위와 바람이 좌우한다. 명태는 겨울밤 영하 20℃ 이하로 떨어지면 순식간에 얼어붙는다. 낮에는 따스한 햇볕에 녹는다. 이렇게 얼었다, 녹다를 반복하면서 황태가 탄생한다. 한 겨울철에 명태를 일교차가 큰 덕장에 걸어 차가운 바람을 맞으며 얼고 녹기를 스무번 이상 반복해 노랗게 변해야 제대로된 상품이 된다.
20여 년간 황태 작업을 하고 있는 박영숙(83)씨는 "날씨가 황태의 질을 좌우한다고 한다. 추워서 만도 안되고 얼었다 녹았다를 반복하면서 적절하게 바람도 불어야 상품가치가 높은 황태를 만든다"고 말한다.
 
 눈 쌓인 대관령 황태덕장
ⓒ 진재중
 
눈이 많이 내리는 지역이 적지이지만 그에 따른 어려움이 동반된다. 덕장 위에 쌓인 눈을 털어 내야 하고 바닥에 쌓인 눈을 파네야 한다. 명태가 눈에 닺지 않아야 상품가치가 높기 때문에 눈을 적기에 치워야 한다.

베트남에서 온 외국인 노동자는 "너무 추워요, 우리가 명태를 말리다가 동태가 될 것 같아요" 하고 농담섞인 말을 전한다.

잘 말린 명태는 망에 넣고 덕장 위에서 1개월간 다시 말리기 작업을 한다. 이렇게 5개월간 추위에 견뎌낸 황태는 밥상 위에 오른다.
 
 황태덕장 아래 쌓인 눈과 황태(2024/2/28)
ⓒ 진재중
 
매서운 겨울철 눈보라와 청정한 봄바람 속에서 말린 명태는 속살이 노랗게 변한다. 황태는 속살이 노랗다 해서 붙여진 명태의 또 다른 이름이다
명태처럼 다양하고 재미난 이름을 많이 가진 생선도 없다. 갓 잡아올린 명태는 생태, 잡자마자 얼린 동태, 반쯤 말린 코다리, 바짝 말린 명태는 북어나 황태라고 한다. 계절에 따라 봄에 잡은 춘태, 가을에 잡은 추태, 동짓달에 잡은 동지태, 어린 명태를 말린 노가리, 원양어선에서 잡은 원양태, 근해에서 잡은 지방태, 황태를 만들다가 추워서 하얗게 된 것은 백태, 날이 따뜻해서 검게 된 것은 먹태, 몸통이 잘린 것은 파태, 머리가 없어진 것은 무두태 등등 35여 가지에 이른다. 가장 좋은 상품은 잘 말라 노르스름해진 황태로 몸체가 타원형을 그린 통통한 것이다.
  
 눈에 묻힌 대관령 황태덕장(2024/2/28)
ⓒ 진재중
  
 황태덕장에 널린 명태(2024/2/28)
ⓒ 진재중
  
횡계 읍내에서 고불고불한 대관령마루길을 따라 대관령 휴게소 방향으로 가다 보면 하얗게 쌓인 눈길 사이로 황태덕장의 진풍경을 볼 수가 있다.
 
 철로처럼 늘어선 황태덕장(2024/2/28)
ⓒ 진재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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