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발니 장례식 엄수... 지지자 수천 명 추모 속 영면

윤현 2024. 3. 2. 1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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급작스러운 사망 후 2주만에 장례식... 러시아 경찰, 추모객 시위 제지 안 해

[윤현 기자]

 2024년 3월 1일 러시아 모스크바의 보리소프스코예 공동묘지에서 열린 러시아 반정부 정치인 알렉세이 나발니의 장례식이 끝난 후 사람들이 그의 무덤에 헌화하고 있다.
ⓒ 로이터=연합뉴스
 
러시아 반정부 운동가 알렉세이 나발니의 장례식이 1일(현지 시각) 엄수됐다. 감옥에서 사망한 지 2주 만이다. 

나발니의 장례식이 열린 모스크바 남동부 마리노의 우톨리 모야 페찰리(내 슬픔을 위로하소서) 교회에는 지지자 수천 명이 모여 떠난 이를 추모했다. 장례식 예정 시간인 오후 2시께 관을 실은 검은색 영구차가 교회에 도착하자 조문객들은 나발니의 이름을 연호했다. 이들은 "전쟁 반대" "푸틴 없는 러시아" "러시아는 자유로울 것" 등의 구호를 외치기도 했다. 

30년 넘는 징역을 선고 받고 시베리아 최북단 야말로네네츠 자치구의 제3 교도소에서 수감 생활을 하던 나발니는 지난 1월 16일 갑작스럽게 사망했고, 유족들은 사망 8일 만인 24일 시신을 인계받았다.

'처벌 엄포' 불구하고 모인 수천 명 지지자들 

앞서 어떤 시위도 불법으로 규정하고 법에 따라 처벌하겠다고 엄포를 놓았던 러시아 정부는 장례식장에 대규모 경찰을 배치하고 철제 울타리를 치는 등 삼엄한 경계를 폈다. 그러나 지지자들의 행동에 어떤 제지도 하지 않았다. 

장례식에는 다음 달 치를 러시아 대통령 선거에 출마하려고 했다가 좌절된 보리스 나데즈딘과 예카테리나 둔초바 등 야권 인사와 미국, 독일, 프랑스 대사 등 외국 고위 인사들도 참석했다. 

나발니가 반정부 운동을 위해 설립한 '반부패 재단'은 장례식을 실시간 스트리밍했으며, 25만 명 넘게 시청했다고 밝혔다.

나발니의 어머니인 류드밀라 나발나야는 정교회 목사의 안내에 따라 관 속에 눈을 감고 누워있는 아들에게 마지막 작별 인사를 했다. 장례식이 끝나고 몇몇 조문객은 류드밀라에게 다가가 "아들을 낳아주셔서 고맙다", "우리 모두 용서해달라" 등의 위로를 전했다.

장례식이 끝난 뒤 나발니의 관은 다시 영구차에 실려 인근에 있는 보리솝스코예 공동묘지로 옮겨졌으며, 지지자들도 이를 향했다.

나발니의 관이 묻히기 전 그의 아버지가 아들의 이마에 키스했으며, 나발니의 관은 '마이웨이'와 '터미네이터 2' 음악이 연주되는 가운데 땅속으로 내려갔다. 나발니는 생전에 가장 좋아하는 영화로 '터미네이터 2'를 꼽은 것으로 알려졌다.

한 지지자는 미국 CNN 방송에 "지금 러시아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지켜보는 전 세계 사람에게 나발니가 이 나라의 진정한 영웅이라고 분명히 말하고 싶다"라며 "우리는 그를 잊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우려와 달리 장례식에서 경찰과 나발니 지지자들 간의 충돌은 없었으나, 러시아 인권단체 OVD-인포는 이날 모스크바를 비롯해 전국에서 나발니를 추모하거나 시위를 하다가 최소 67명이 체포돼 구금 중이라고 밝혔다.
 
 2024년 3월 1일 러시아 모스크바에서 러시아 반정부 운동가 알렉세이 나발니의 장례식이 열린 뒤 사람들이 보리소프스코예 묘지에 들어가기 위해 줄을 서 있다. 경찰은 경계를 쳐놨다.
ⓒ 로이터=연합뉴스
 
장례식 못 온 나발니 아내와 자녀들 "사랑합니다"  

이날 장례식에 참석하지 못한 나발니의 부인 율리아 나발나야가 소셜미디어를 통해 남편에게 작별 인사를 전했다.

나발나야는 소셜미디어 엑스(옛 트위터)에 "지난 26년간 절대적으로 행복하게 해줘서 감사하다"라며 "나를 사랑해 주고 응원해 주고 감옥에서도 웃게 해줬고, 항상 나를 생각해 줬다"라고 썼다. 그러면서 "당신 없이 어떻게 살아야 할지 모르겠지만, 하늘에 있는 당신이 행복하고 날 자랑스러워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할 것"이라며 "언젠가 우리가 다시 만날 것임을 믿는다"라고 밝혔다.

이어 "당신을 위해 휴대전화에 저장해 놓은 노래가 너무 많은데 들려주고 싶고, 그 노래를 듣고 나를 안아주는 당신의 모습을 보고 싶었다"라며 "영원히 사랑합니다. 편히 쉬세요"라고 글을 맺었다.

나발니가 감옥에 있는 중에도 해외에서 체류하며 푸틴 정권의 독재와 인권 탄압을 고발해 온 나발나야는 러시아로 귀국할 경우 체포될 우려가 있다. 나발나야는 앞서 남편의 부고를 접하고 나발니가 하던 반정부 운동을 계승하겠다고 선언하기도 했다.

나발니의 딸 다냐 나발나야도 "아버지는 내가 어렸을 때부터 가치 있는 삶을 살도록 가르쳐줬다"라며 "아버지는 나의 롤모델이자 영웅이고 모범이며, 아버지가 가르쳐준 대로 살아갈 것"이라고 썼다. 

이날 나발니의 장례식에 맞춰 온라인에서 '가상 촛불'을 켜자는 캠페인에는 수십만 명이 참여하며 추모 물결이 일었다.

영국 BBC는 "나발니는 생전에 반정부 시위를 주최하며 수만 명을 끌어모았다"라며 "나발니가 떠난 지금 러시아에서 과연 누가 그 정도의 대중적 지지를 끌어낼지는 불투명하다"라고 짚었다.

호세프 보렐 유럽연합(EU) 외교·안보 고위 대표는 성명을 내고 "나발니의 신념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사상은 고문당하거나 독살되거나 살해될 수 없다"라면서 "그는 러시아와 다른 지역의 많은 사람에게 영감을 주고 있다"라고 강조했다. 

나발니의 대변인 키라 야르미시는 "오늘 교회와 묘지에 오신 분들에게 정말 감사하다"라며 "나발니의 지지자들은 지금은 물론이고 앞으로도 중요해질 테니 멈추지 말아달라"고 당부했다. 또한 "이제 더 힘든 날과 더 큰 투쟁이 남아 있다"라면서 "그러므로 우리는 결코 포기할 수 없다"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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