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극마크 향한 주민규의 라스트 찬스

이준목 2024. 3. 2. 1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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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리그] 토종 골잡이 주민규, A대표팀 승선 가능성

[이준목 기자]

 15일 울산 문수축구경기장에서 열린 2023-2024 아시아축구연맹(AFC) 챔피언스리그(ACL) 16강 울산 현대와 일본 반포레 고후의 1차전에서 울산 주민규가 슛하고 있다. 2024.2.15
ⓒ 연합뉴스
 
'토종 득점왕의 자존심' 주민규(울산 HD)가 과연 태극마크의 한을 풀 수 있을까. 3월 A매치 소집을 앞둔 축구 국가대표팀이 최근 임시감독 '황선홍호' 체제로 개편되면서 주민규의 대표팀 승선 가능성에도 축구 팬들의 시선이 쏠리고 있다.

주민규는 현재 K리그 최고의 토종 골잡이로 꼽힌다. 최근 3년간 득점왕만 2번(2021, 2023시즌)이나 수상했다. 2022시즌에도 득점은 조규성(17골, 당시 전북)과 동률이었지만 경기출전 수가 더 많다는 이유 때문에 득점왕을 놓친 것을 감안하면, 사실상 3년 연속 리그 최다 득점자였다.

리그에서 득점왕 트로피를 두 차례 이상 들어 올린 선수는 데얀(3회), 이기근, 윤상철, 김도훈(이상 2회)에 이어 주민규가 역대 다섯 번째였다. 외국인 공격수들이 강세를 보이는 K리그에서 주민규의 가치가 더 돋보이는 이유다.

또한 소속팀 울산이 지난해 2연패를 달성하며 주민규는 2012년 데얀(당시 서울) 이후 11년 만에 한 팀에서 득점왕과 우승을 모두 이룬 선수로 이름을 올렸다. 제주 시절인 2020년 K리그2 우승에 이어 1, 2부리그에서 모두 정상에 오르는 진기록도 세웠다. 이미 K리그에서 주민규는 '살아있는 레전드'의 반열에 올랐다고 하기에 손색이 없다.

하지만 K리그에서의 꾸준한 활약과 별개로 대표팀과는 이상하리만큼 인연이 없었다. 놀랍게도 주민규는 A팀을 비롯한 연령대별 대표팀 경력조차 전무하다.

이는 주민규가 비교적 늦게 빛을 발한 전형적인 '대기만성형' 선수였던 것과도 관련이 있다. 주민규는 20대 초중반까지만 해도 무명에 가까웠으나 2015년 서울 이랜드 FC로 이적하여 공격수로 포지션을 전향하며 뒤늦게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고, 1부리그에서 처음 활약하기 시작한 것은 군복무 시절인 상주 상무(현 김천)에서 뛰던 2017시즌부터였다. 심지어 K리그1에서 득점왕급 스타로 거듭난 것은 사실상 30대가 넘어서였다.

그동안 A대표팀에서 부름을 받을만한 기회가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주민규는 2010년대 중반 울리 슈틸리케 감독 시절에 국내파 선수들 위주로 구성된 동아시안컵 예비 엔트리에 두 차례 포함된 적이 있다. 하지만 모두 최종 명단에는 이름을 올리는 데는 실패하며 끝내 단 한 번도 태극마크를 달지 못했다. 그 뒤를 이은 신태용과 파울루 벤투-위르겐 클린스만 등은 모두 주민규에게는 전혀 눈길을 주지 않았다.

K리그 득점왕들이 대표팀에서 외면 받았던 것은 주민규만의 사례는 아니다. 역대 K리그 득점왕 경력을 자랑하는 이기근-윤상철-김현석-신태용-유병수 등은 하나같이 대표팀에서는 거의 중용되지 못했고 월드컵 본선무대를 단 한 번도 밟지 못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하지만 이중에서도 아예 A매치 경력이 전무한 것은 주민규가 유일하다. 어느덧 30대를 훌쩍 넘긴 주민규의 나이를 감안할 때 더 이상 태극마크와의 인연은 기대하기 어려워보였다.

그런데 최근 들어 상황이 달라졌다. 주민규를 외면하던 클린스만이 아시안컵의 성적부진과 선수단관리 실패로 1년만에 경질되면서, 축구협회는 3월 태국과의 A매치 2연전을 이끌 '임시 감독'으로 국내파인 황선홍 올림픽대표팀 감독을 낙점했다.

황선홍 감독은 한국축구의 한 시대를 풍미한 공격수 출신으로 주민규의 실력과 장점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또한 황 감독은 이미 지난 항저우 아시안게임에서 주민규를 유력한 공격수 '와일드카드' 후보로 발탁을 검토했던 적이 있다. 여러 가지 이유로 차출은 끝내 무산되었지만 황 감독이 '주민규 활용법'을 마지막까지 고려했다는 것은, 아예 눈길조차 주지 않던 이전의 대표팀 감독들과는 확연히 다른 대목이다.

또한 제주 유나이티드 시절에 주민규와 함께했던 정조국 코치가 최근 황선홍호를 보좌할 A대표팀 코치에 발탁되었다는 것도, 주민규의 승선 가능성에 희망을 높인다. 정 코치는 제주 시절 주민규의 성장에 큰 도움을 준 은사이자 형님으로 지금까지 끈끈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주민규는 2021년 당시 득점왕 수상의 공을 정 코치에게 돌리며 "정조국 코치님 덕분에 어려운 시기를 잘 견뎌낼 수 있었다"고 감사를 전하기도 했다. 정 코치 역시 A대표팀 코치에 발탁되기 전, 최근 한 유튜브 채널에 출연해 "내가 대표팀 지도자라면 주민규는 당연히 발탁할 것"이라고 망설임 없이 확언한 바 있다.

주민규의 소속팀 울산은 지난 3월 1일 울산문수경기장에서 열린 2024 하나원큐 K리그1 개막전에서 동해안 라이벌 팀 포항을 1-0으로 꺾으며 개막전을 기분 좋은 승리로 장식했다. 원톱으로 선발 출전한 주민규는 공격 포인트를 올리지 못했지만 경기 내내 위협적인 움직임으로 팀 승리에 기여하며 쾌조의 컨디션을 증명했다.

그리고 황선홍 감독도 3월 A매치 대표팀 발탁을 앞두고 이 경기를 관전한 것으로 알려졌다. 소속팀 홍명보 감독은 주민규가 비시즌 동안 몸관리를 잘했다며 적지 않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체력과 활동량이 더 나아졌다"고 칭찬하기도 했다.

물론 주민규가 대표팀에 뽑힐 가능성은 아직은 '반반'이다. 주민규가 그동안 대표팀에 뽑히지 않았던 데는, 고전적인 센터포워드와 가까운 플레이스타일상 연계능력이나 스위칭플레이에서 현재 대표팀이 추구하는 스타일과는 맞지 않았기 때문이기도 하다. 장기적으로 봤을 때도 어느덧 33세의 주민규가 2년 뒤 차기 북중미월드컵까지 세대교체에 어울리는 카드와는 거리가 멀다고 했을 때, 황선홍 감독 역시 젊은 선수들에게 더 기회를 주는 선택을 내릴 가능성도 있다.

다만 황 감독은 어디까지나 임시 감독인 만큼, 철저히 태국과의 2연전에만 초점을 맞춰서 최상의 선수선발을 선택할 권리가 있다. 아시안컵에서 조규성-오현규 등 유럽파 공격수들이 부진했고 황의조는 사생활 문제로 당분간 A대표팀 복귀가 불투명한 상황이다. 스트라이커 보강을 필요로 한다면 K리그에서 주민규보다 검증된 카드는 없다.

또한 주민규같이 새로운 K리그 선수들의 발탁은, 그동안 외국인 감독 체제에서 유럽파에 비하여 차별을 받았던 국내 선수들을 위한 동기부여와 경쟁체제 재건, 그리고 후임 정식 감독이 참고할만한 선수 점검이라는 측면에서 충분히 시도해볼만한 카드다. 주민규에게 황선홍호의 승선 여부는, 어쩌면 축구인생에서 태극마크의 한을 풀수 있는 '라스트 찬스'가 될 가능성이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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