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종 스코어러의 자존심' 이정현이 특별한 이유

이준목 2024. 3. 2. 1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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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L] 고양 소노 이정현, 한국 농구 차세대 에이스될까

[이준목 기자]

'토종 스코어러의 자존심' 이정현(고양 소노)이 연일 물오른 득점력을 과시하며 한국 농구 차세대 에이스다운 활약을 선보이고 있다.

이정현은 지난 1일 울산동천체육관에서 열린 2023-2024 정관장 프로농구 5라운드 원정경기에서, 3점슛 4개 포함 29점 4리바운드 5어시스트 3스틸의 맹활약을 펼치며 팀의 83-73 승리를 이끌었다. 소노는 이날 승리로 15승 29패를 기록하며 8위를 지켰다.

소노는 현재 외국인 선수들이 번갈아 부상에 시달리며 경기 운영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틀 전 A매치 휴식기 이후 재개된 첫 경기인 2월 28일 서울 SK전에서는 치나누 오누아쿠가 발목 부상으로 결장하며 무려 32점 차(66-98)로 완패했다.

이날 현대모비스전에서는 이번엔 다후안 서머스가 허벅지 통증으로 결장했고, 오누아쿠(14점 8리바운드)가 복귀했으나 5반칙 퇴장 당하며 18분 5초를 소화하는 데 그쳤다. SK전에서 복귀했던 국가대표 슈터 전성현도 현대모비스전에서는 다시 결장했다.

반면 최근 상승세인 현대모비스는 외국인 선수 2명이 모두 건재했다. 게이지 프림은 이날 무려 34점 16리바운드를 몰아넣을 만큼 컨디션이 좋았다. 정상적인 상황이라면 매치업상 소노가 도저히 이길수 없는 경기였다.

하지만 소노는 그 어려운 기적을 해냈다. 소노는 경기 초반 한때 12점차까지 끌려갔으나 국내 선수들의 끈질긴 트랩수비와 스위치 디펜스로 현대모비스의 실책(20개)을 대거 유발해내며 흐름을 반전시켰다.

공격에서는 이정현이 사실상 외국인 선수급 활약을 펼치며 득점을 이끌었다. 국가대표 동료인 박무빈(6점 6리바운드 5어시스트 2스틸)과의 맞대결에서 압도하며 공수 양면에서 혼자 북치고 장구치는 '원맨쇼'를 펼쳤다.

턴오버를 8개나 범한게 옥의 티였지만, 이는 외국인 선수들이 없는 상황에서 팀내 최다인 37분 16초를 출장하여 공을 갖고 있는 시간이 길다보니 감수해야할 대가였다.

이정현은 이날 활약으로 자신의 시즌 평균 득점을 어느덧 21.5점(전체 6위)까지 끌어올리며 사실상 '국내 선수 득점왕-평균 20점대' 달성에 한 걸음 더 다가섰다. 국내 선수중 이정현 다음으로 많은 득점을 올린 99년생 동갑내기 국가대표 하윤기(수원 KT, 16.4점)와는 이미 격차가 크게 벌어졌다.

올시즌 프로농구에서 평균 20점 이상을 올리고 있는 선수는 모두 7명에 불과하며, 이중 국내 선수는 오직 이정현이 유일하다. 프로농구 초창기에는 국내 선수도 평균 20점을 넘기는 경우가 자주 나왔지만 수비 전술의 발전과 외국인 선수들의 득세로 토종 득점원들의 비중은 점점 줄어들었다.

KBL에서 국내 선수가 마지막으로 평균 20점을 넘긴 것은 2010-11시즌 귀화혼혈선수인 문태영이 창원 LG에서 기록한 22점이 마지막이었다. 이정현 같은 순수 토종 선수로만 범위를 좁히면 무려 2007-2008시즌의 방성윤(22.1점, 전체 5위)까지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이정현은 불과 프로 3년 만에 리그 최고의 스코어러로 거듭나고 있다. 2021-2022시즌 신인드래프트 1라운드 3순위로 입단한 이정현은 2021-2022시즌 고양 오리온에서 52경기 평균 9.7점(전체 33위, 국내 24위), 2022-23시즌 캐롯에서 52경기 15점(전체 12위, 국내 7위)을 기록한데 이어 세 번째 시즌에 20점대 고지까지 정복하며 매년 급격한 성장세를 보여주고 있다.

한편으로 이러한 이정현의 놀라운 기록은, 선수층이 얇은 '약팀의 에이스'라는 측면도 없지는 않다. 현재 소노는 이정현 외에는 특출한 선수가 없는 실정이다. 팀사정상 이정현의 부담을 덜어줘야할 외국인 선수 2명과 전성현은 번갈아 부상에 시달리고 있다. 6강 진출이 사실상 멀어지면서 김승기 소노 감독도 사실상 남은 시즌 동안 이정현의 성장과 경험치 축적에 더 초점을 맞춰서 비중을 몰아주고 있는 분위기다.

하지만 KBL의 특성상, 외국인 선수도 아닌 국내 선수에게 이같은 역할이 주어진다고 결코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매경기 노골적인 집중 견제를 받는 상황에서도 해결할 수 있는 기술과 담력, 꾸준함까지 두루 갖춰야하기 때문이다.

이정현은 올시즌 34경기에 출전하여 무려 22경기에서 20점 이상을 올렸고, 25점 이상의 고득점을 올린 경기도 이번 현대모비스전 포함, 13차례나 된다. 한 자릿수 득점에 그친 것은 올시즌 단 2경기에 불과하다. 특히 지난 2월 14일 부산 KCC전에서는 무려 42점을 폭발시키며 개인 커리어하이 기록을 새로 쓰기도 했다.

더구나 이정현은 팀 사정상 득점에만 전념하는 것이 아니라 패스와 경기운영, 수비 등 궂은 일까지도 두루 신경써야한다. 이정현은 현재 국내 선수 득점을 비롯하여 3점슛 성공(2.79개)에서도 1위를 달리고 있으며 어시스트(6.5개) 스틸(1.82개)에서는 2위로 이 부문 각 1위인 이선 알바노(DB, 어시스트 6.8개)와 문성곤(수원 KT, 스틸 1.9개)를 근소한 격차로 추격하고 있어서 다관왕도 가능하다.

더 나아가 이정현은 올시즌 유력한 정규시즌 MVP 후보로까지 거론되고 있다. 현재 이정현과 함게 MVP 후보로 거론되는 것는 선두 원주 DB의 알바노(15.6점, 6.8어시스트)와 강상재(14.2점, 6.3리바운드, 4.3어시스트), 2위 수원 KT의 하윤기(16.4점, 6.8리바운드) 등이 있다. 이중에서 개인 기록은 단연 이정현이 압도적이다.

이정현의 유일한 약점은 부진한 팀성적이다. 소노는 현재 8위에 그치며 6위 KCC(22승 19패)와 무려 8.5게임 차로 사실상 6강 진출은 어려워졌다. KBL 역사상 6강플레이오프 탈락팀에서 MVP가 배출된 경우는 2008-2009시즌 7위를 기록한 안양 KT&G(현 정관장) 소속의 주희정이 유일하다. 당시 주희정은 15.1점, 8.3어시스트 2.3스틸, 4.8리바운드를 기록하며 어시스트와 스틸 2관왕을 차지했고, 상위팀에서 개인기록에 두각을 나타낸 국내 선수가 없었다.

2019-20시즌의 허훈(수원 KT)도 당시 팀성적은 6위(코로나19로 시즌 조기종료)에 그쳤지만, 경기당 평균 14.9득점과 7.2어시스트(국내 선수 득점 2위, 어시스트 전체 1위)를 기록하며 MVP를 수상한바 있다. 올시즌 이정현의 활약상과 리그 내 영향력은 주희정과 허훈을 능가한다.

이 두 선수가 패스와 경기운영에 더 치중하는 포인트가드 역할이었다면, 이정현은 사실상 팀내 1옵션 에이스로 활약하고 있는 메인 스코어러라는게 가장 큰 차이점이다. 무엇보다 오랫동안 '토종 해결사'에 목말랐던 한국농구에 모처럼 등장한 득점기계라는 점에서, 이정현만의 특별한 희소성은 충분히 MVP 평가에 반영될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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