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년 3등' 마이크론의 도박…'이 없이 잇몸으로' 삼성 제쳤다
이번 주 반도체 업계의 최대 화제는 미국 마이크론의 HBM3E 양산 소식이었다. 메모리 반도체 격전지로 떠오른 고대역폭메모리(HBM) 시장에서 SK하이닉스와 삼성전자에 밀려 점유율 10% 미만인 마이크론이 지난 26일 5세대 HBM3E을 세계 최초로 양산한다고 전격 발표하며 승부수를 던졌다.
특히 올해 엔비디아에 납품하기로 했다는 수주 사실까지 스스로 공개했다. 고객사를 직접 언급하는 것은 이례적인 일이다. 이로써 마이크론은 메모리 빅3 중 SK하이닉스에 이어 엔비디아의 HBM3E 파트너가 됐다.
만년 3인자의 반란
특히 마이크론은 메모리 빅3 중 유일하게 첨단 D램 공정에 필수적인 극자외선(EUV) 노광 장비를 제대로 갖추지 못했다. 마이크론이 미국에서 사용 중인 연구개발(R&D) 전용 EUV를 제외하면 현재 생산 공정에 활용할 수 있는 EUV는 없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동안은 3나노미터(㎚·1㎚=10억 분의 1m) 이하 최선단 공정 경쟁에 접어든 시스템 반도체에서 주로 EUV를 써왔다. 하지만 메모리 반도체 업계에서도 EUV 공정이 당연시되는 분위기다. 삼성과 SK하이닉스는 평택과 이천 공장에서 이미 최신형 D램 생산에 EUV 공정을 쓰고 있다. 마이크론이 EUV 장비 없이 HBM3E을 양산하려면 수율 측면에서 큰 손해를 감수해야 한다. 생산비용이 크게 치솟는다는 뜻이다.
이에 마이크론도 EUV 도입에 나섰다. 대만 디지타임스에 따르면 마이크론은 지난해 말부터 대만 타이중 공장에서 본격적인 EUV 공정 적용에 돌입했다. 산자이 메로트라 마이크론 최고경영자(CEO)는 “내년까지 대만과 일본 히로시마 공장에서 EUV를 도입해 D램을 생산할 것”이라 밝혔다.
HBM3E에 베팅하기 위해 ‘안전한’ 시장까지 포기했다. 마이크론은 보급형 AI 반도체용으로 중국 등에서 여전히 많이 팔리는 구형 HBM2E 생산마저 HBM3E 양산을 위해 중단한 것으로 알려졌다. 대만·일본·미국 등에 팹(반도체 공장)이 흩어져 있는 마이크론은 생산 능력에 한계가 있어 선택과 집중이 필요하다. 반도체 업계에선 마이크론이 숱한 한계에도 끝내 10나노 5세대(1b) 공정으로 HBM3E 양산에 돌입한 것에 주목한다. 삼성전자가 올해 양산을 앞둔 HBM3E조차 10나노 4세대(1a) 공정에 머물러 있다.
EUV 없이 들이박았다
업계에서는 실제 D램 성능을 좌우하는 집적도 측면에서 마이크론이 확실히 삼성전자를 앞섰다고 단언하긴 어렵다면서도, 적어도 메모리 3사의 선단 공정 기술력 격차는 이제 거의 사라졌다고 본다. 반도체 업계의 한 관계자는 “마이크론이 EUV 없이 여기까지 왔다면 원가와 수율 등 모든 면에서 큰 손해를 감수하고도 고객사인 엔비디아의 요구에 맞춰 공급한 것”이라며 “그야말로 ‘이 없이 잇몸’으로 들이 박은 셈”이라고 평가했다.
특히, 마이크론은 메모리 빅3 중 유일한 미국 회사라는 점에서 기술력을 확보한 마이크론의 상대적 이점은 향후 더 커질 수 있다. 반도체 제조 생태계를 미국 내에 조성하는 데 집중하고 있는 미 정부가 든든한 지원군 역할을 할 수 있기 때문.
흔들린 메모리 신화...‘반격의 시간’은 올까
익명을 요구한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이번 도박이 최종적으로 성공할지는 지켜봐야겠지만, 과거였다면 삼성이 질렀을 법한 과감한 승부수를 오히려 마이크론이 먼저 던진 격”이라며 “30년 간 메모리 1위를 지켰던 삼성이 그동안 놓쳤던 게 무엇인지 돌아봐야 할 때”라고 말했다.
이희권 기자 lee.heekw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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