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빠는 책 찢었고, 엄마는 "공부 관둬"…그래도 꿋꿋한 비밀학교

전수진 2024. 3. 2.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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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르카를 입은 아프가니스탄 여성들. AFP=연합뉴스


아프가니스탄의 로야 아지미(33ㆍ가명)는 어린 시절 등교길에서 한 남자를 마주쳤다. 그는 "너, 어른이 되면 꽤 괜찮은 재산(nice property)이 되겠구나"라고 희롱했다. 하교 후 가족에게 무서웠다며 이 이야기를 털어놓자 남자 가족 구성원들은 이렇게 답했다고 한다. "밖에 나다니면서 그런 이야기나 듣다니, 너는 우리 가족의 수치다. 당장 학교를 그만둬." 영국 이코노미스트가 지난달 27일(현지시간) 전한 이야기다.

아지미는 고집을 부려 학교를 계속 다녔다. 그래도 소녀들이 학교에 가는 것은 허용됐던, 호시절이었다. 무장세력 탈레반이 2021년 재집권한 뒤론 사실상 소녀가 학교에 가는 게 금지됐다. 아지미는 그러나 역시 굴하지 않았다. 대신 집에 비밀리에 소녀들만 올 수 있는 작은 학교를 차렸다. 소녀 10명 정도가 아지미의 집에 마실 오는 것처럼 왔다가, 영어와 수학 등을 공부한다. 그렇게 학교를 세운지 약 2년 만에 학생 수는 150여명으로 늘었다.

이코노미스트가 지난주 전한 아프가니스탄의 비밀 여학교. 출처 및 저작권 the Economist


그러다 지난달, 아지미는 전화를 한 통 받았다고 이코노미스트는 전했다. "내일, 탈레반이 남편을 데려갈 거야. 그냥, 알아두라고. 미리 경고해두는 거야." 아지미는 다음날, 집을 나왔다. 아프가니스탄 여성들이 반드시 뒤집어 써야 하는 얼굴부터 발끝까지를 가리는 부르카 속엔 화이트보드와 책을 숨겼다고 한다. 부르카가 유용하다고 느껴진 몇 안 되는 순간이었다. 그의 남편의 행방을 이코노미스트는 전하지 않았다. 아지미 가족의 신변 안전을 위해서다.

2021년 탈레반 재집권 즈음 교육권 등 기본 권리를 박탈당한 아프가니스탄 여성들이 시위를 벌이고 있다. 이젠 얼굴을 드러내놓고 길에 걸어다니지 못한다. 로이터=연합뉴스


탈레반의 추적은 그러나 집요했다. 동네에 탈레반이 심어놓은 첩자들이 있었고, 점점 아지미가 새로 연 교실 밖엔 미제 트럭이 서 있곤 했다. 이코노미스트는 "탈레반 재집권 이전에 미국이 아프가니스탄을 지원하기 이전에 경찰에게 지원했던 트럭들이 사실상 대부분 탈레반 손에 들어갔다"고 전했다. 어느 날은 선생님 한 명이 퇴근 후 다급하게 아지미에게 전화를 했다. "트럭이 계속 서행하며 저를 따라왔어요, 무서워요"라고 그 선생님은 얘기했다고 한다. 아지미는 또 교실을 옮겼다.

아지미는 당국에 "공부가 아니라 바느질 등 여성이 갖춰야할 살림 지식을 전수하는 것"이라고 둘러대기도 했다고 이코노미스트에 밝혔다. 무용지물이었다. 탈레반의 정부 부처 중엔 '미덕과 악덕 부(Ministry of Virtue and Vice)'가 있는데, 이곳은아지미에게 "여성 교육은 안 된다"라는 메시지만 반복했다고 한다. 아지미는 이제 아예 국제사회에 도움을 호소하는 게 낫겠다고 판단하고, 이코노미스트의 문을 두드렸다.

2021년 아프가니스탄에서 철수하는 미군. AFP=연합뉴스


문제는 탈레반 외에도 있다. 다름 아닌 어머니들이다. 일부 어머니들은 딸들이 학교에 가는 것을 못마땅해한다고 이코노미스트는 전했다. 가족 전체를 위험에 몰아넣는다는 생각 때문이다. 이코노미스트는 "한 학생이 '내일부터 못 나온다'며 '엄마가 공부는 그만하면 됐다'고 했기 때문"이라고 전했다.

아지미는 이코노미스트에 "오빠들이 책을 찢어버리기도 하는 등, 학교에 막상 와도 집중을 못 하거나 표정이 어두운 아이들이 대부분"이라며 "하지만 아이들에게 희망을 버리지 말라고 강조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20년 이상이 걸린다고 해도 좋다, 우리는 계속해서 언젠가 올 그 미래를 위해 공부할 것"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전수진 chun.suj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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