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직 아니라 순직하게 생겼다"…현장 남은 의료진들 한숨

황수연 2024. 3. 1. 1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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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단 이탈한 전공의 대부분이 정부가 제시한 시한을 넘겨서도 복귀하지 않으면서 3월 의료대란에 대한 우려가 커졌다. 1일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29일 17시 기준 100곳 수련병원에서 병원에 복귀한 전공의는 565명으로 이탈자의 6%에 머물렀다. 전공의의 71.8%(8945명)가 이탈한 상태다. 정부가 연휴 기간(1~3일) 복귀한 전공의에 대해 정상 참작을 한다고 가정하더라도 양측이 대치 상태여서 정상화 가능성은 크지 않은 상황이다. 의사 커뮤니티에는 의업을 포기하겠다는 전공의들의 목소리가 이어지고 있다.

특히 2월 말 3월 초는 전공의들의 계약 기간이다. 의과대학 졸업생들이 수련병원 인턴으로 임용되고 수련을 마친 전공의들은 전임의 계약을 맺는다. 이 시기에 인턴은 임용을 포기하고 고연차 전공의는 전임의 계약을 맺지 않고 병원을 떠나는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한 예비 인턴은 “임용 포기서를 제출했다. 내년 3월 군의관으로 입대할 것”이라고 했다. 그는 “정부 정책이 어떻게 될지 모르는 시점에서 그냥 수련을 안 받고 군대에 먼저 다녀오기로 마음먹었다”고 말했다.

수도권의 한 상급종합병원 심장혈관흉부외과에는 원래 전공의 13명(인턴 2명 포함)이 있어야 하는데 전무한 상태다. 이 병원 심장혈관흉부외과 교수는 “오늘 병원에 나왔는데 인턴 1명뿐”이라며 “응급수술은 최대한하고 있지만, 수술한 후의 환자를 몇십명씩 볼 수가 없어서 심장 수술은 평소보다 5분의 1수준으로 줄였다. 심장판막, 관상동맥우회술 등 정규 수술은 어쩔 수 없이 한 달 미뤘다”고 말했다. 이런 상황에서 계약 연장이 필요한 전임의 상당수가 정부 방침에 반발해 재계약 포기 의사를 밝히고 있어서 위기론은 커지고 있다.

현장에 남아있는 의료진들은 번아웃을 호소하고 있다. 지난달 27일 조용수 전남대병원 응급의학과 교수는 SNS에 “이 사태를 끝내달라. 온 목이 녹아내리는 기분”이라며 “사직이 아니라 순직하게 생겼다”라고 적었다. 수도권 상급종합병원의 한 교수는 “다들 번아웃을 호소하고 있다”라며 “외과는 수술 등 업무 로드를 조절할 수 있지만, 내과는 밀려드는 환자를 안 받을 수 없으니 교수들이 당직을 서가면서 세 개 병동을 커버한다. 굉장히 힘든 상황”이라고 전했다.

상급종합병원으로 가야 할 중증 환자들이 일부 중소병원으로 몰리면서 이곳 의료진들도 우려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경기도의 한 2차 병원 응급의학과 전문의는 “원래 5곳 병원에서 중증 환자를 나눠 봐왔는데 3차 병원 3곳 진료 능력이 50%로 떨어졌다. 우리 병원 등 2곳에서 중증 외상 등 중증도가 높은 환자도 어쩔 수 없이 받고 있는데 환자가 잘못될까 공포가 크다”라고 말했다. 이 전문의는 “이런 상황에서 응급실에서 일하는 게 위험하다는 생각에 들어오기로 했다가 채용을 취소한 사례도 있고 이번 일을 계기로 조용한 사직을 하는 응급의학과 전문의가 늘고 있다”라고 했다.

정부가 의대 정원 확대에 반발해 병원을 집단 이탈한 전공의들에게 제시한 복귀 시한 마지막 날인 29일 서울의 한 대형병원에서 의료진들이 발걸음을 옮기고 있다. 뉴스1

연휴 직후 정부가 미복귀 전공의에 대한 행정·사법절차 수순을 밟게 되면 상황은 더 나빠질 것이라는 게 현장의 우려다. 현재 전공의 업무 공백을 메우며 최후 저지선 역할을 하는 교수들마저 “전공의들을 보호하겠다”며 대정부 투쟁에 나설 수 있기 때문이다.

29일 대전 시내의 한 대학병원 응급의료센터 앞에 응급환자를 이송한 구급차들이 줄지어 대기하고 있다.김성태

분당서울대병원 교수협의회가 지난달 28일 실시한 교수 대상 설문조사에서는 ‘전공의들이 면허정지·구속·면허취소 등 실제 사법 조치를 당한다면 교수들이 전공의와 학생들을 보호하기 위해 집단행동(겸직해제·사직서 제출 등)이 필요하다’라는 물음에 84.6%가 찬성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겸직해제는 의대생을 가르치며 병원에 파견돼 진료하는 의대 교수가 학교 강의만 하고 진료는 하지 않겠다는 의미다.

주수호 대한의사협회 비상대책위원회 언론홍보위원장은 “후배들의 부당한 피해를 참을 수 없는 봉직의, 개원의, 교수 등 모든 선배 의사들도 의업을 포기하며 그들과 함께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황수연 기자 ppangsh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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