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로 부활한 독립투사, 증손자와 독립선언 낭독…서울 곳곳서 "만세"
" 죽음을 무릅쓰고 나라를 위해 독립운동을 하신 분들 존경스럽고 감동적이에요. "
올해로 105번째 3·1절을 맞은 1일 오전 서울 종로구 보신각을 찾은 위례솔초등학교 5학년 윤세빈(12) 양이 여성 독립운동가 초상화를 바라보며 말했다. 이날 보신각에선 ‘그날의 간절한 마음, 오늘 여기에 꽃피우다’라는 주제로 타종식과 문화 행사가 진행됐다. 행사장 주변엔 독립을 위해 헌신했지만 업적이 많이 알려지지 않았던 여성 독립 운동가 50여 명의 모습을 담은 초상화가 전시됐다.
서울시는 올해 행사를 시민들이 직접 독립 정신을 기릴 수 있도록 문화제 형식으로 진행했다. 기념공연에서 배우 유효진은 뮤지컬 ‘영웅’ 속 안중근 의사 역할을 맡아 ‘누가 죄인인가’라는 곡을 불렀다. 그가 노래를 부르던 중 감정에 북받친 듯 울먹거리자, 시민들은 눈을 떼지 못하고 진지한 표정으로 바라봤다. 안 의사의 어머니 조마리아 역을 맡은 배우 박정자는 “일제에 굴복 말고 죽으라”는 독백을 실감나게 연기했다. 첼리스트 이호찬과 광진구립합창단은 독립 군가와 장검가 등 두 곡을 함께 불렀다.
타종 행사에는 항일 학생운동단체 ‘독서회’를 조직하고 항일 결사 단체 ‘순국당’에서 활동한 애국지사 김병현의 자녀 김대하(73)씨를 포함해 독립유공자 후손 7명이 타종에 참여했다. 김씨는 타종 후 “아버지가 부산형무소에서 석방됐을 때 가마니에 돌돌 말린 채로 나왔다고 들었는데, 얼마나 고문을 많이 당했을지 생각하면 마음이 아프다”며 “다시는 아픈 역사가 되풀이되어선 안 된다는 마음”이라고 말했다. 이외에도 오세훈 서울시장, 배우 박정자 등도 함께 손을 모아 종을 쳤다.
영하 4도의 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행사장은 200여 명의 시민으로 가득 찼다. 시민들은 노래에 맞춰 태극기를 흔들고 한 목소리로 “대한독립 만세”를 외쳤다. 마포구에서 온 박모(42)씨 부부는 3·5세 자녀를 한 명씩 높이 안고 행사를 보여줬다. 박씨는 “아이들이 어리지만 역사를 바로 아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며 “3·1절은 나라를 위해 애쓰신 분들을 위한 날이라고 쉽게 설명해주고 있다”고 전했다.
이날 오후 2시 종로 탑골공원에서도 만세 소리가 울려 퍼졌다. 1919년 3월 1일 이곳 팔각정에서 기미독립선언서를 낭독했던 독립운동가 정재용(1886∼1976) 선생이 인공지능(AI)으로 구현돼 화면에 등장했다. 당시 그의 나이는 33세였다.
행사에는 올해 33세가 된 정재용 선생의 증손자 정연규씨도 참석했다. 정씨가 단상에 올라 “우리들은 지금 우리 조선이 독립한 나라이고, 조선 사람이 자주적인 국민이라는 것을 선언하노라”라고 외치자, AI 정재용 선생이 이어 “5000년 역사의 권위에 의지해 독립을 선언하는 것이며, 2000만 민중의 충성을 한 데 모아서 독립국임을 널리 밝히는 것”이라고 외쳤다.
세대를 초월한 독립선언문 낭독이 끝나자 곳곳에서 사람들이 “만세”를 외쳤다. 이날 행사에는 7개 종단 대표자를 비롯 1000명의 시민이 함께했다. 경기도 용인에서 온 박동부(73)씨는 “AI 로 어떻게 독립운동가를 살렸는지 신기하다"며 “이렇게 와서 행사를 보는 것만으로도 나라에 힘이 된다 생각한다”고 말했다.
서희숙 종로구 문화유산과장은 “정재용 선생의 손자와 후손을 찾아갔는데, (생전) 음성이 담긴 테이프를 갖고 있었다”며 “의미 있는 자료를 이용해 독립운동의 가치나 의미를 더 널리 알렸으면 하는 마음에 부탁했다”고 행사 배경을 설명했다.
많은 독립 투사가 투옥됐던 서대문형무소 역사관에서는 수백명의 시민이 독립운동을 재현했다. 역사관 앞에서 독립문까지 350m 구간을 “대한민국 만세”를 외치며 행진한 것이다. 한복을 입고 대형 태극기를 가방에 달고 행진한 이정범(75)씨는 “이곳에 오면 애국하는 마음이 샘솟아 평소에도 자주 온다”며 “오늘 사람들이 많이 왔는데 3·1절에만 반짝 관심 갖는 게 아니었으면 한다”고 말했다.
꽁꽁 언 손으로 태극기를 흔드는 어린이들도 많았다. 가족과 함께 경북 포항에서 KTX를 타고 아침 일찍 왔다는 이주안(10)군은 “책에서만 보던 역사 속 현장이 눈 앞에 펼쳐지니 신기하다”고 말했다.
정세희·김서원 기자 jeong.saeh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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