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페 사장도 편의점 사장도…웬만해선 비켜갈 수 없다 [스페셜리포트]

나건웅 매경이코노미 기자(wasabi@mk.co.kr), 조동현 매경이코노미 기자(cho.donghyun@mk.co.kr) 2024. 3. 1. 1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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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 정윤정 기자)
서울 성동구 마장동 축산시장에서 10년 넘게 축산업을 운영해오고 있는 A씨는 최근 고민이 늘었다. 지난 1월부터 중대재해처벌법(이하 중대재해법) 적용 대상이 5인 이상 50인 미만 사업장까지 확대되면서다. 중대재해법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사업을 운영해왔지만 ‘당신도 처벌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주변 조언에 따라 이리저리 알아보기 시작했다.

그가 내린 결론은 ‘포기’다. 법 내용이 복잡하고 모호한 데다 현실적으로 법에서 얘기하는 안전 의무를 하나하나 다 이행하면서 사업하는 것이 도저히 불가능하다는 판단에서다. A씨는 “평생 칼질해온 사람들이 무슨 안전 가이드라인이나 경영 방침을 마련할 수 있겠나”라며 “근로자 안전과 생명을 보호해야 한다는 법 취지에는 공감하지만 하루 벌어 먹고살기 바쁜 입장에서 아무래도 현실성이 없다고 본다”며 한숨 쉬었다.

중대재해법이 최근 근로자 50인 미만 사업장까지 확대 적용되면서 논란이 끊이지 않는다. 중대재해법은 사업장에서 사망 사고 같은 중대재해가 일어날 경우 사업주와 경영책임자를 처벌하는 법이다. 기존에는 50인 이상 사업장만 대상이었지만 올해 1월 27일부터 5인 사업장도 법 테두리 안에 들어오게 됐다.

대상 사업장이 확대된 이후 중소기업과 소상공인 중심으로 반발이 거세다. 법이 요구하는 안전 의무를 다 지키는 것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토로다. 영세업체가 대응하기에는 비용 부담이 큰 데다, 챙겨야 할 서류 작업이 많은 탓에 오히려 현장 안전관리에 신경을 못 쓸 수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안전 의무를 다하지 못한 상황에서 사고가 발생할 경우 징역형을 살 수 있다는 리스크도 크다. 대표가 업무 대부분을 담당하는 영세업자의 경우, 처벌 시 사업을 접을 수밖에 없다. 안전사고가 잦은 건설·제조업 중소기업에선 벌써부터 “존폐 기로에 놓였다”는 얘기가 나올 지경이다.

이번 중대재해법 적용 확대가 고용과 폐업 등 경제 전반에 영향을 끼칠 수 있는 사안이라는 얘기도 나온다. “5인 이상 사업장이 되지 않기 위해 사람을 더 뽑지 않겠다” “징역이나 거액의 벌금을 낼 수 있다는 부담을 질 바에야 사업을 그만하겠다”는 반응이 이어지는 와중이다.

2월 14일 오후 경기 수원시 수원메쎄에서 열린 50인 미만 사업장 중대재해처벌법 유예 촉구 결의대회에서 참석자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연합뉴스)
업종·규모 불문 중대법 적용

아르바이트생 5명 식당도 대상

중대재해법은 산업재해 예방으로 근로자 안전과 생명을 보호하기 위해 제정된 법이다. 사업주나 경영책임자가 안전 확보 의무 등 안전 조치를 소홀히 한 결과로 중대한 산업재해나 인명 피해가 발생할 경우 처벌하는 것을 골자로 한다. 근로자 사망 시 1년 이상 징역 또는 10억원 이하 벌금이라는 중벌에 처한다.

사고가 났다고 무조건 처벌 대상이 되는 것은 아니다. ‘사고가 중대한지’ 그리고 사업주가 ‘안전 의무를 다했는지’를 따진다.

중대재해에 해당하는 건 다음 3가지다. ① 사망자 1명 이상 발생 ② 동일한 사고로 6개월 이상 치료가 필요한 부상자 2명 이상 발생 ③ 동일한 유해 요인으로 급성중독 등 직업성 질병자가 1년 이내 3명 이상 발생한 경우다. 이때 안전 의무를 소홀히 했다고 판단될 경우 처벌 대상이 된다. 안전 관련 예산 편성, 매뉴얼 마련 등 안전관리보호체계를 구축했는지가 핵심이다.

중대재해법이 최근 다시 뜨거운 화두로 떠오르게 된 계기는 적용 대상이 5인 이상 50인 미만 사업장으로 확대되면서다. 2022년 1월, 법 시행 당시 50인 미만 사업장에는 2년 유예 기간을 줬었다. 규모가 큰 기업에 비해 상대적으로 준비할 시간이 더 필요할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유예 기간을 더 늘려야 한다”는 주장이 중소기업과 정부·여당을 중심으로 지난 2년간 제기돼왔다. 하지만 합의가 불발되면서 유예 기간은 예정대로 종료됐고 법 적용이 확대됐다.

이제 5인 사업장도 예외 없이 중대재해법 적용을 받게 됐다. 업종은 무관하다. 중대재해가 상대적으로 잦은 건설이나 제조업은 물론 외식·숙박업, 도·소매업 등 서비스 기업 역시 처벌을 받을 수 있다. 안전사고 발생 가능성이 낮기는 하지만 카페나 편의점 사장님 역시 법이 부과한 의무를 지켜야 한다는 얘기다.

상시 근로자 수 기준은 기간제·단시간 등 고용 형태를 따지지 않는다. 하나의 사업 또는 사업장에서 일하는 모든 근로자를 포함한다. 예를 들어 아르바이트생만 5명 고용해 운영하는 일반음식점 역시 중대재해법 적용을 받는다. 아르바이트생을 3명씩만 고용했다 하더라도 같은 사업주가 2개 이상 매장을 운영하는 경우도 마찬가지다. 총 고용인이 6명이기 때문이다.

강남에서 직원 20명 규모 고깃집을 운영 중인 한 자영업자는 “고깃집 같은 음식점에서 중대재해가 잘 일어나지 않는다고는 하지만 사람 일은 모르는 것 아닌가. 중대재해법 안전 의무 조치를 위해 여러모로 알아보고 있지만 서류 작업을 위한 인력 추가 고용 등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다”며 “결국 전부 다 사장이 일일이 붙잡고 해결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 난감하다”고 한숨 쉬었다.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247호 (2024.02.21~2024.02.27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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