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운동하면 3대가 망해'... 이런 말은 왜 안 없어질까 [넥스트브릿지]
정책네트워크 넥스트 브릿지(Next Bridge)는 지식경제, 기후, 디지털, 민주화 이후 민주주의 등 전환의 시대를 직면하여 비전과 정책과제를 연구하는 포스트 386 세대(90년대 대학을 다닌 사람에서 90년대생 청년) 중심의 연구자·정책 전문가의 네트워크다. 넥스트 브릿지는 주권자인 국민들이 사회 지향과 정책과제에 대한 이해가 높아야 산업화와 민주화 이후 한국의 민주주의와 사회발전이 가능하다는 데 뜻을 모았다. 정책담론을 위한 대중적인 소통을 희망하며 다양한 분야의 정책 전문가들이 자기 분야의 정책과제를 가지고 매주 정책 칼럼을 연재한다. <편집자말>
[이갑준 기자]
▲ 1일 오후 서울 탑골공원에서 열린 제105주년 3.1절 기념식에서 어린이들이 3·1절 노래를 부르고 있다. |
ⓒ 연합뉴스 |
독립유공자에 대한 처우가 너무나 다른 프랑스와 한국
우리나라 국가보훈부의 2024년 주요 사업은 '국가유공자 등 보상수준 강화 및 사각지대 해소, 보훈의료 환경개선, 보훈문화 확산, 국립묘지 안장능력 확대 및 접근성 강화, 제대군인의 원활한 사회복귀 지원' 등이며, 정부가 발표한 보훈대상자는 본인 55만 7338명과 유족 27만 5031명을 포함해 모두 83만 2369명에 예산은 6조 4057억원이다.
보훈대상자 대비 예산을 단순하게 나누면 1인당 7백69만 원 조금 넘게 보훈 혜택을 받는다. 반면 2차대전 당시 독일에 점령당한 기간이 4년 2개월인 프랑스는 연간 60조가 넘는 예산으로 레지스탕스 후손 450만여 명에게 보훈 혜택을 주고 있다. 1인당 약 1333만원의 보훈 혜택을 받고 있다. 우리나라와 비교해 거의 두 배에 달하는 수준이다.
무엇보다 아쉬운 점은 독립유공자와 후손에 관한 지원 정책이다. 프랑스의 독일 점령 기간보다 31년이나 더 긴 일제강점기 동안 항일독립운동에 헌신한 애국지사는 2024년 기준 현존하는 분이 6명이고 유족이 7987명이다. 하지만 이들의 삶은 고단하다.
▲ 흥사단 독립유공자후손돕기본부가 경북의 독립유공자 후손 노후주택 개선사업을 진행하였다. |
ⓒ 이갑준 |
광복 70주년을 맞아 2015년 <한국일보>가 실시한 조사에 따르면 독립운동가 후손의 75%가 월 소득 200만 원 미만이고, 그중 30%는 100만 원도 안 되는 극빈층에 속한다. 2022년 KBS의 보도에 따르면, 적게는 80만원, 많게는 200만원까지 지급되는 보훈급여금은 독립운동가 후손 '가구' 소득의 30%, '개인'으로 따지면 소득의 45%를 차지한다고 한다. 그러나 그나마도 모든 후손이 받을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독립운동가 사망 시점에 따라 후손의 지급 범위가 달라진다. 광복 이전에 사망한 독립유공자 후손은 손자녀까지, 광복 이후 사망자 후손은 자녀까지 보훈급여금이 지급되는데, 형제가 여럿이어도 그중 한 명에게만 지급된다.
독립유공자 후손들 모두에게 보훈급여금이 지급되는 것이 마땅하며, 광복 이후 사망한 독립유공자 후손도 손자녀까지는 보훈급여금을 보장해야 한다. 그리고 극빈 속에 고통받는 후손들에게는 특별 지원책을 마련해야 한다.
보훈급여금보다 더 황망한 것은 독립운동가 약 15만 명 가운데 정부로부터 공적을 인정받은 후손은 불과 10% 정도에 불과하다는 점이다. 나머지 13만5천여 명은 독립운동 공적을 인정도 못 받고 힘들게 살다가 세상을 떠나고 있다. 특히 독립운동 공적을 후손들이 입증해야 하는 현 제도는 매우 아쉽다. 전문가도 쉽지 않은 일을 대부분이 70대 이상 고령인 후손들이 선조들의 공적 입증을 하기란 거의 불가능하다.
입증 자료를 찾던 고령의 후손들 대부분은 끝내는 포기하고 국가에 대한 원망과 상처만 남는 경우가 많다. 그나마 다행인 소식도 있다. 지난해 8월 제주 보훈청은 미서훈 독립운동가들의 공적 자료를 직접 발굴 조사하고 유공자 신청까지 진행하는 작업을 처음으로 추진했다. 전라남도는 2021년부터 '독립운동 미서훈자 발굴 사업'을 통해 2023년 말 현재 지역 독립운동가 2371명을 찾아냈으며, 삼일운동 참가 독립운동가 128명을 발굴하고 이중 18명은 서훈이 확정됐다. 이제라도 정부가 '독립운동공적발굴조사위원회'와 같은 기구를 만들어 전문가들이 기록을 찾아주는 사업이 매우 절실하게 필요해 보인다.
독립유공자 후손에 대한 지원은 대한민국 정체성 찾기의 출발
그런데 최근 몇 년간을 돌아보면 역사의 시곗바늘이 거꾸로 도는 것은 아닌지 불안하고 참담하다. 오늘날 대한민국의 정체성은 친일파가 아닌, 생명을 바쳐 대한의 국권을 쟁취한 독립운동 열사들의 정신에 뿌리를 두고 있다. 그러나 오늘날 광복절에 서울 한복판에서 일장기까지 등장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이런 황망한 현실을 프랑스나 독일의 사례를 들어 비판해야 하는 현실 자체가 참담하다.
독립유공자와 후손에 대한 지원을 강화하자는 것은 단순히 이들의 삶이 고단해서만은 아니다. 독립유공자의 헌신을 국가와 사회가 돌보는 것은 국가정체성과 공동체 시민의식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공적 자산이기 때문이다.
독립유공자 후손 지원이 중요한 첫 번째 이유는 대한민국의 정체성 찾기의 출발에 있다. 대한민국 헌법전문은 "유구한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우리 대한민국은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즉 독립유공자들은 우리 민족이 생명을 다해 독립을 염원한 3·1운동의 정신을 계승하여 대한민국임시정부를 수립했고, 이런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정신은 오늘날 대한민국 정체성으로 이어지고 있다. 따라서 독립유공자 후손에 대한 지원은 독립운동 열사들을 기리는 일이자, 우리나라의 정체성을 확인하는 일이다.
독립유공자 후손 지원이 중요한 두 번째 이유는 역사를 바로 세우는 것이다. "독립운동을 하면 3대가 망한다"라는 말 자체가 우리나라의 부끄러운 현실이자 역사 인식을 반영하고 있다. 1945년 광복 이후, 역사를 바로 세우지 못한 일이 오늘까지도 영향을 주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말 자체가 현대 우리 국민의 마음에 독립운동에 대한 사회적 무관심과 패배 인식으로 각인되어서는 안 된다. 독립운동은 대한민국의 가장 자랑스러운 역사고, 우리는 3.1만세운동의 정신을 모아 상해임시정부를 수립하여 광복 이전까지 국권 회복을 위해 투쟁한 민족이다. 독립운동 역사는 영원히 재조명해야 하며, 독립유공자 후손에 대한 지원은 가난해서가 아니라, 모든 것을 바쳐 헌신한 독립열사들의 정신을 기리는 중요한 역사적 행위이다.
독립유공자 후손 지원이 중요한 세 번째 이유는 사회적 가치를 형성하고 확대에 있다. 참된 나라사랑을 실천한 독립유공자와 그들의 후손을 국가와 사회적으로 예우하는 것은 공동체를 위한 헌신을 예우하는 것이며, 이것은 오늘날 필요한 더불어 행복한 사회의 공적 가치를 만들고 발전시키는 출발점이자, 현대 시민의식을 고취하는 중요한 길이다.
더 이상 "독립운동을 하면 3대가 망한다"는 말이 버젓이 살아있어서는 안 된다. 이런 말이 살아있다면 누가 위기 속에서 국가와 민족을 위해 헌신하겠는가. "역사를 잊은 민족은 미래가 없다"고 한다. 자신과 가족의 삶보다 민족의 독립을 위해 희생하고 투쟁한 애국지사와 그 유족에 관한 부족한 관심과 보훈 정책은 큰 개선 없이 오늘에 이르고 있다는 건 참담한 일이다. 국가와 우리 사회가 모두 노력해야 할 때이다.
* 필자 소개 : 북한학 박사, 흥사단 정책기획국 국장, 전 통일교육협의회 사무총장. 통일교육과 시민운동에 힘써오고 있다.
Copyright © 오마이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