린가드-김기동 효과... '감독 무덤' 오명 벗을까
[이준목 기자]
2024시즌의 대장정을 시작하는 올해 프로축구 K리그에서 가장 주목받고 있는 팀은 단연 FC서울이다. 올시즌을 앞두고 대대적인 변화를 선택한 서울은 K리그 판도를 뒤흔들 태풍의 눈으로 거론되고 있다.
서울은 K리그1 통산 6회 우승에 빛나는 명문팀이자, 연간 평균 관중 2만명 이상을 자랑하는 리그 최고의 흥행구단중 하나다. 하지만 2016년 리그 우승을 마지막으로 더 이상 정상과는 인연이 없었다. 2018년에는 구단 역사상 최초로 승강 플레이오프까지 추락하는 수모를 당했다가 간신히 기사회생했고, 최근 4시즌간은 9-7-9-7위에 머무르며 내내 파이널B를 벗어나지 못했다. 구단 안팎으로 이런저런 사건사고도 많았다.
서울은 2024시즌을 앞두고 모처럼 명예 회복을 위하여 대대적인 투자를 단행했다. 그 첫걸음은 김기동 감독의 선임이었다. 포항 스틸러스에서 명장의 반열에 오른 김 감독은 FA컵 우승과 K리그-ACL 준우승 등을 이끌며 지도력을 인정받은 현재 국내에서 가장 핫한 전술가다.
또한 잉글랜드 국가대표 출신인 제시 린가드라는 '빅네임'의 영입은 단연 프로축구 스토브리그 최대의 화제였다. 린가드는 잉글랜드 프로축구의 최고 명문인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와 웨스트햄 등에서 FA컵-유로파리그 우승 등을 거머쥐었고, 월드컵에서도 잉글랜드의 주전으로 활약했던 스타플레이어다. 역대 K리그를 거쳐간 외국인 선수중에서도 가장 화려한 커리어를 자랑하는 선수라고 할만하다.
린가드 효과는 벌써부터 나타나고 있다. 린가드는 입국 당시부터 축구팬들의 뜨거운 환대를 받았다. 서울 구단이 발표한 바에 따르면 지난 2월 발매한 서울의 2024시즌 모바일 시즌권은 오픈 단 1분 만에 매진되었고, 린가드의 서울 유니폼 역시 온라인 판매 2시간만에 품절됐다. 린가드 영입 전후로 구단의 공식 SNS 팔로어와 유튜브 구독자가 큰 폭으로 증가했다고 한다.
또한 오는 3월 2일 열리는 광주 전용구장에서 열리는 서울과 광주FC와 개막전 원정경기 티켓은 단 2분 30초 만에 매진을 기록하기도 했다. 그만큼 서울 팬들만이 아니라 린가드에 대한 국내 축구팬들의 관심이 뜨겁다는 것을 잘 보여준다.
한편으로 스쿼드를 다지는 작업 또한 착실하게 진행됐다. 베테랑 기성용과 재계약을 맺었고, 임대생이었던 윌리안이 완전이적했다. 조영욱은 항저우 아시안게임 금메달로 조기전역하며 팀에 복귀했다. 여기에 최준, 류재문과 아시아 쿼터로 이라크 출신 수비수 레빈 술라카까지 가세했다. 기존 핵심전력인 일류첸코와 팔로세비치도 건재하다. 자연스럽게 서울이 이번 시즌에는 충분히 상위권에서 경쟁을 펼칠만한 전력이라는 기대감이 높아졌다.
2024시즌 K리그1의 강력한 우승후보는 역시 3연패를 노리는 울산 HD와 2년만의 우승탈환을 노리는 전북 현대의 양강구도다. 하지만 서울 역시 이들의 아성을 위협할 만한 3강이 될수 있는 잠재력을 갖췄다는 평가다. 지난 2월 27일 열린 개막 미디어데이에서는 K리그1 12개 팀 중 5개 팀 감독이 '돌풍을 일으킬 팀'으로 서울을 지목하기도 했다.
하지만 뚜껑은 열어봐야 안다. 단지 좋은 선수들과 감독만 모아놨다고 해서 성적이 나지는 않는다는 사실은 역사속 수많은 빅클럽들이 증명한다.
서울이 올시즌 주목받는 가장 큰 이유라고 할 수 있는 린가드의 경우, 과거의 명성에만 초점을 맞춰져있지만 K리그에서 무조건 성공한다는 보장은 없다. 린가드는 지난해 노팅엄 포레스트에서 방출 이후 무려 9개월 가까이 소속팀이 없는 무적 신분으로 지냈다. 최근의 기량과 몸상태에 의문부호가 붙은 데다 잉글랜드를 제외한 해외 경험이 전무하여 리그와 환경 적응 여부도 변수로 남아있다.
김기동 서울 감독은 미디어데이에서 린가드에 대한 질문이 나오자 "아직 90분을 소화할 몸 상태가 아니다"라며 주변의 높은 기대에 신중한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 광주와의 개막전에서도 린가드가 선발 출전할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김기동 감독은 공백기가 길었던 린가드를 시즌 초반 서두르지않고 천천히 컨디션을 끌어올리게 하겠다는 복안이다.
김기동 감독의 축구가 서울에 잘 녹아들 수 있을지도 지켜봐야 할 부분이다. 김 감독은 포항 시절 빌드업과 전방압박이라는 현대축구의 트렌드를 따라가면서도 고정된 틀에 얽매이지 않는 유연한 전술운용으로 호평받은 바 있다. 김기동 감독이 이끌던 포항은 한정된 스쿼드에도 시즌별로 리그 최다득점팀과 최소실점 상위권을 오가는 변화무쌍한 팀컬러를 보여준 바 있다. 선수들과 허물없이 지내는 소통능력도 김 감독의 또다른 강점이다.
다만 본인부터가 팀의 레전드 출신으로 선수단 장악력이 확고하고 구단 내 위상도 탄탄하던 포항과는 달리, 서울은 감독의 무덤으로 꼽히는 팀이다. 역시 포항에 큰 성공을 거두고 서울에 부임했던 황선홍 감독(현 국가대표팀)은 서울에서는 선수단과 불화를 빚으며 성적부진으로 자진사임했다. 역시 다른 팀에서 지도력을 인정받은 박진섭-안익수 전 감독 등도 서울에서는 자신의 축구철학을 완전히 녹여내는 데 실패했다.
많은 체력과 활동량, 유연한 축구지능을 요구하는 김기동 감독의 축구는 적응만 된다면 엄청난 위력을 보여줄 수 있지만, 그전에 개성강한 서울의 선수들을 하나로 뭉치게 하여 감독의 축구를 따라올수 있게 만드느냐가 관건이다. 성적이 좋을 때는 열렬한 지지를 보내지만, 그렇지못할 때는 오래 기다려주지 않는 서울의 팬덤 또한 신임 감독에게는 양날의 검이 될수 있다.
K리그에서 가장 높은 화제성과 관중동원력을 지닌 서울의 성공 여부는, 올시즌 K리그의 흥행몰이에 있어서도 중요한 비중을 차지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과연 서울이 김기동 감독과 린가드 효과를 앞세워 지난 4년간의 부진을 딛고 K리그에 새로운 바람을 불러올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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