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 "약사법상 의약품 '판매'와 '투약'은 달라"… 유효기간 지난 주사제 진열 수의사 무죄 확정

최석진 2024. 3. 1. 1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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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사법상 의약품의 '판매'와 '투약' 등 '진료행위'는 구별되는 개념이기 때문에 유효기간이 경과한 동물용 주사제를 주사한 수의사를 판매를 목적으로 유효기간이 경과한 의약품을 저장 또는 진열한 행위를 처벌하는 조항으로 처벌할 수 없다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1일 법조계에 따르면 대법원 1부(주심 김선수 대법관)는 약사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수의사 김모씨의 상고심에서 무죄를 선고한 원심판결을 확정했다.

용인시 처인구에서 동물병원을 운영 중인 김씨는 2021년 10월 12일 유효기간(2021년 4월 22일)이 5개월 이상 지난 동물용 의약품인 주사제 '킹벨린' 50ml 1병을 판매를 목적으로 병원 내 조제 공간에 저장·진열한 혐의로 기소됐다.

이에 앞서 김씨는 같은 해 10월 6일 해당 주사제를 진료 목적으로 둥물에게 1회 주사하고 6000원의 주사비를 받기도 했다.

검사는 김씨를 약사법 위반 혐의로 재판에 넘겼다.

약사법 제85조 9항 2호는 동물용 의약품등을 판매하는 자의 준수사항으로 '오남용 방지 등 동물용 의약품등의 안전한 사용을 위하여 농림축산식품부령 또는 해양수산부령으로 정하는 사항'을 규정하고 있다.

그리고 농림축산식품부령인 '동물용 의약품등 취급규칙' 제22조 1항 2호는 동물용의약품제조업자 등의 준수사항으로 '유효기간이 지났거나 변질 또는 오손된 동물용의약품등을 판매하거나 판매를 목적으로 저장 또는 진열하지 아니할 것'을 규정했다.

약사법 제85조 9항을 위반할 경우 같은 법 제95조 1항 8호에 따라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1000만원 이하의 벌금'으로 처벌된다.

1심 법원은 김씨의 행위가 위 취급규칙에서 금지한 행위에 해당한다고 봐 유죄를 인정하면서도 벌금 50만원 형의 선고를 유예했다.

김씨가 초범인 점과 김씨가 저장·진열하고 있던 유효기간이 지난 의약품이 주사제 1명에 불과했고, 유효기간 경과 후 단속될 때까지 해당 주사제를 사용한 내역이 한 번에 불과한 점 등을 고려한 판단이었다.

선고유예는 '1년 이하의 징역이나 금고, 자격정지 또는 벌금의 형'을 선고할 때 피고인이 뉘우치는 정상이 뚜렷할 경우 형의 선고를 유예하고, 형의 선고유예를 받은 날로부터 2년을 경과한 때에는 면소된 것으로 간주해주는 제도다.

재판에서 김씨는 "문제가 된 주사제를 '진료 목적'으로 저장·진열했던 것에 불과하고 '판매 목적'으로 저장·진열했던 게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재판부는 "약사법 제85조 4항에서 '수의사법에 따른 동물병원 개설자는 제44조에도 불구하고 동물 사육자에게 동물용 의약품을 판매하거나, 동물을 진료할 목적으로 제50조 2항 단서에 따라 약국개설자로부터 의약품을 구입할 수 있다'라고 규정하고 있는바, 문언해석상 '수의사가 동물을 진료하는 과정에서 주사제를 직접 투약하고 그에 상응하는 비용을 받는 경우'도 '동물 사육자에게 동물용 의약품을 판매하는 경우'에 해당한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라며 받아들이지 않았다.

약사법 제44조는 약국 개설자(해당 약국에 근무하는 약사 또는 한약사 포함)가 아니면 의약품을 판매하거나 판매할 목적으로 취득할 수 없다는 규정이다.

즉 약사법 제85조 4항이 약사가 아닌 동물병원 개설자가 판매를 목적으로 의약품을 구입할 수 있도록 예외를 규정하면서 '판매 목적'과 '진료 목적'을 병열적으로 나열한 만큼, 약사법은 수의사가 동물 사육자에게 판매하기 위해 의약품을 구입한 경우와 주사제 투입 등 동물 진료를 목적으로 의약품을 구입한 경우를 구별하지 않고 있다는 해석이다.

김씨는 또 "사용하고 남겨 뒀던 위 주사제를 미처 확인하지 못한 상태에서 유효기간이 경과한 것일 뿐 고의는 없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재판부는 "주사제의 포장용기에 제조일자, 유효기간이 명확하게 표시돼 있는 점, 유효기간 만료일로부터 5개월 이상이 지나도록 위 주사제를 보관하고 있었던 점 등에 비춰 보면, 피고인이 위 주사제의 유효기간 도과 사실을 알면서도 이를 저장·진열했다고 봄이 타당하다"고 판단했다.

1심 선고유예 판결에 검사는 '형이 너무 가벼워 부당하다'며 항소했다.

그런데 2심 법원은 오히려 1심의 유죄 판단이 잘못됐다고 판단, 김씨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검사의 양형부당 주장을 판단하기에 앞서 김씨의 행위가 범죄 성립이 안 된다고 봤다.

재판부는 "이 사건 공소사실은 범죄 사실의 증명이 없는 경우에 해당하는바, 이 사건 공소사실을 유죄로 인정한 원심판결에는 사실을 오인하거나 법리를 오해한 위법이 있으므로 직권으로 이를 파기한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2심 재판부는 "약사법 해석상 수의사의 진료행위로서의 주사행위를 문제된 약사법 및 동물용 의약품등 취급규칙이 규율하는 의약품의 '판매'에 해당한다고 포섭하는 것은 약사법 기타 관련 법령의 입법취지와 목적을 감안하더라도 문언의 가능한 해석 범위를 넘는 것으로서 허용될 수 없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이 같은 판단의 근거로 몇 가지를 들었다.

먼저 재판부는 약사법이 '판매'의 개념을 따로 정의하지 않고 '약사'의 개념을 정의한 제2조 1호에서 '판매가 수여를 포함한다'고만 규정하고 있다는 점을 들어 약사법상 판매의 개념은 '값을 받고 물건을 파는 것'이라는 사전적 의미로 해석해야 한다고 전제했다.

한편 약사법 제22조는 약사나 한약사가 아니면 의약품을 '조제'할 수 없도록 규정하면서도 의사의 '주사행위'나 '진료행위'를 약사가 아닌 의사가 예외적으로 직접 의약품 '조제'를 할 수 있는 예외적인 경우로 인정하고 있다.

재판부는 "약사법은 주사제를 주사하는 경우 및 의약품을 투여하는 경우를 의사가 직접 '조제'할 수 있는 경우로 봐 약사 조제 원칙의 예외로 분류하고 있는데, 이에 반해 '판매' 규제 항목에서는 이에 관한 아무런 규정을 두고 있지 않다"고 지적했다. 약사법이 '판매'와 '주사행위나 진료행위'를 구별해 사용하고 있다는 취지다.

마지막으로 재판부는 약사법 제85조 9항이 '이 법에 따라 동물용 의약품등을 판매하는 자는 다음 각 호의 사항을 준수하여야 한다'라고 규정, 해당 조항의 적용을 받는 사람이 '동물용의약품을 판매하는 동물병원 개설자'임을 명시적으로 규정하고 있다는 점에 주목했다.

재판부는 "수의사가 진료행위만 하고 사전적 의미의 의약품 판매행위를 하지 않는 경우에도 주사제인 의약품을 주사하는 진료행위는 당연히 이뤄질 수 있는 것인데, 만일 이 사건 규칙이 주사행위로 인한 주사제 투약 등 진료행위에 수반되는 투약 행위까지 의약품 판매에 해당되는 것으로 봐 규율 대상으로 삼는 것이라면 굳이 '동물병원' 앞에 '동물용의약품을 판매하는'이라는 수식어를 붙일 이유가 없다"고 지적했다.

이어 "즉 약사법 제85조 9항과 이 사건 규칙은 동물병원의 개설자가 진료행위만 하는 경우와 진료행위에 더하여 의약품 판매까지 하는 경우를 별도로 상정하고 있고, 진료행위 과정에서 의약품을 주사하는 행위는 처음부터 규율 대상으로 삼지 않았다고 볼 수 있다"고 결론 내렸다. 수의사가 동물용 의약품을 따로 '판매'하는 경우와 진료 과정에서 이뤄지는 주사제 투약 등 진료행위를 약사법이 구별해 규정하고 있다는 해석이다.

검사는 다시 상고했지만 대법원의 판단도 같았다.

재판부는 "원심의 판단에 약사법 위반죄의 성립에 관한 법리를 오해한 잘못이 없다"고 검사의 상고를 기각한 이유를 밝혔다.

최석진 법조전문기자 csj0404@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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