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춘추] ‘반도체 팀USA’의 무시무시한 공세
AI 주도권 쥐며 자신감 팽배
빅테크도 반도체 진출 경쟁
반도체 굴기 중국이 미국 AI
질주에 제동 걸려, 韓도 비상
21세기 칩워 대비 돼 있나
반도체 종주국인 미국이 최근 전례없는 팀워크를 발휘하며 공세를 펼치고 있다. 혹자는 농구 종주국으로 세계 최강을 자랑하다 1988 서울올림픽에서 동메달에 그친 뒤 프로농구 NBA 최고 선수들로 구성해 영광 재현에 나선 미국 드림팀을 떠올린다. 메모리·파운드리(위탁생산)에서의 열세에서 보듯 미 반도체팀의 면면은 드림팀처럼 압도적이지 못하다. 하지만 반도체 산업의 원천인 설계 분야 강점을 바탕으로 열세 분야를 기업 간 협업으로 만회하고 있다. 특히 첨단 인공지능(AI) 시대의 주도권을 틀어쥐면서 드림팀보다는 느리지만 팀USA의 진가가 드러나는 중이다.
최근 열린 ‘인텔 파운드리 서비스’ 포럼은 미국 반도체 원팀의 출정식을 방불케 했다. 인텔은 2030년까지 파운드리 업계 2위에 오르겠다고 밝혔다. 2위 삼성전자를 제치겠다는 뜻이다. 한때 반도체 제국이었지만 인텔의 파운드리 점유율(1%)은 삼성전자의 10분의 1 수준. 허세로 볼 법한데 마이크로소프트(MS), 오픈AI, 메타 등 빅테크들이 우군으로 나섰다. MS 최고경영자(CEO) 사티아 나델라는 50억 달러(6조6000억원) 규모의 차세대 AI 반도체 생산을 인텔에 맡기겠다고 공표했다. 지나 러몬도 미 상무장관은 “미국이 세계 반도체를 선도하기 위해 ‘제2의 반도체지원법’으로라도 지원할 것”이라고 거들었다.
며칠 뒤 메모리 시장 3위인 마이크론이 차세대 AI 반도체용 메모리인 5세대 고대역폭메모리(HBM) ‘HBM3E’를 세계 최초로 양산했다고 발표했다. HBM 시장 점유율이 4∼6%에 불과한 마이크론이 SK 하이닉스와 삼성전자의 기술 수준을 단번에 뛰어넘었다. 마이크론의 손을 제일 먼저 잡은 게 AI 반도체 최강자 미국의 엔비디아다.
빅테크들이 직접 반도체 영역까지 뛰어들기도 한다. 챗GPT 개발사인 오픈AI CEO 샘 올트먼의 반도체 야망은 상상을 초월한다. 올트먼은 “AI 확산을 위한 칩 공급이 너무 더디다”며 글로벌 반도체 산업을 재편하기 위해 최대 7조 달러(약 9300조원)의 자금을 조달하겠다고 했다. 우리나라 올해 예산(656조6000억원)의 14배를 반도체에 쏟아붓겠다는 얘기다. 이런 내부 경쟁이 팀USA의 실력을 키우고 있다.
불과 1년 전만 해도 미국은 한국 일본 대만과의 칩4 동맹을 통해 중국에 맞서는 반도체 공급망 정비에 주력했다. 러몬도 장관은 지난해 7월 “미국이 반도체 제조, 설계, 패키징에 이르는 전 과정을 혼자 할 수 없다. (동맹 관계가)전략적이어야 한다”고 했다. 그러다 올 들어 “대만과 한국에 넘어간 반도체 주도권을 미국이 가져와야 한다”고 강변한다. 미국의 자신감 말고는 설명하기 어렵다. 젠슨 황 엔비디아 CEO는 최근 “생성형 AI는 (전 세계 산업 수요가 폭발하는)티핑 포인트(전환점)에 도달했다”고 했다. 미 반도체의 티핑 포인트도 AI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80년대 일본 반도체가 시장을 석권할 때 미국이 대공세를 폈다. 하지만 당시엔 미 정부가 직접 나서 덤핑 제소와 엔고 유도를 통해 일 기업들을 무릎꿇렸을 뿐 자국 업체들의 경쟁력은 허약했다. 일종의 관치성 시장 재편이었다. 지금은 기업들이 시장을 선점해 반도체 생태계를 조성하고 정부가 후원해주는 성격이다. 내실은 더 좋아졌다. 중국이 미·중 갈등과 신냉전 시대를 맞아 반도체 굴기를 외치고 있다. 그러나 미국의 칩4 동맹을 통한 반도체 제재는 중국의 고급 반도체 제조 역량 강화에 타격을 줬다(대외경제정책연구원). 나아가 미국의 AI 질주가 더해졌다. 오픈 AI가 최근 텍스트를 영상으로 만들어주는 AI시스템 ‘소라’를 공개했을 때 중국은 미·중 AI 격차 실체에 충격을 받았다.
우리는 더 심각하다. 메모리반도체 우위에 안주하다 ‘첨단 미국’, ‘범용 중국’ 반도체 사이에 낀 형국이다. 일본은 미국 반도체 군단 공세에 맞서 대만을 우군삼아 부흥을 노리는데 우리의 움직임은 굼뜨기만 하다. 고 이병철 삼성 회장이 반도체 산업 진출에 나선 것은 82년 미 컴퓨터 업체 방문에서 느낀 반도체 잠재력, 미·일 D램 갈등, 일본 대체자를 찾는 실리콘밸리 움직임을 간파했기 때문이다(크리스 밀러 ‘칩워’). 밀러는 시대 흐름, 국가 미래에 대한 리더의 통찰력과 민관 협력이 한국을 반도체 강국으로 발돋움시켰다고 적었다. 이는 지금도 통용되고 오히려 더욱 절실히 요구된다. 적과 동지가 없는 21세기 칩워 시대, 우리는 승자가 될 준비가 돼 있는가.
고세욱 논설위원 swkoh@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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