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5년간 ‘한지붕 두가족’ 영풍과 고려아연에 무슨일이?

황민혁 2024. 3. 1. 04: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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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리텔링 경제]
최씨 장씨일가 2022년부터 갈등
주총 앞두고 장외 여론전 격화
잃을 것 없는 영풍 거센 공세
장형진 (오른쪽) 영풍그룹 회장과 최창걸 고려아연 명예회장이 지난 2013년 서울 논현동 영풍빌딩 회의실에서 정기 이사회를 마친 뒤 사진을 찍고 있다. 영풍그룹 제공


75년간 ‘한 지붕 두 가족’ 경영을 이어온 고려아연과 영풍이 다음 달 주주총회를 앞두고 날 선 설전을 주고받고 있다. 영풍 측은 고려아연에 배당 확대를 요구하고, 정관 개정에 반대하며 주총장 표 ‘영끌’에 나섰다. 이에 고려아연 측은 “경영권 장악을 목적으로 고려아연의 기업가치를 떨어뜨리려는 행태”라고 맞불을 놓고 있다. 업계에서는 이번 다툼을 지난 2022년부터 본격화한 최씨(고려아연)와 장씨(영풍) 집안간 지분 경쟁의 연장선으로 보고 있다.

두 회사는 고(故) 장병희·최기호 창업주가 영풍그룹을 공동 설립한 이후 75년간 비교적 평화롭게 공동 경영 체계를 유지해왔다. 고려아연은 최씨 일가가, 전자 계열은 장씨 일가가 맡았다. 그러나 최 창업주 손자인 최윤범 회장이 고려아연 경영권을 물려받고 신사업 추진을 본격화하는 과정에서 갈등이 시작됐다. 특히 고려아연이 지난 2022년부터 현대차그룹·한화·LG화학 등과 해외 사업을 함께 하며 지분교환을 단행하자 장씨 일가는 이를 공개적으로 반대했다. 영풍 측은 “창업주 때부터 유지돼 온 양 집안의 지분 균형에 균열을 가한 행태”라고 비판했다. 이로인해 영풍의 고려아연 지분율이 낮아졌고, 영풍은 이를 회복하기 위해 고려아연 지분 매입을 본격화했다.

영풍빌딩


주총을 앞두고 양 측은 두 가지 안건을 놓고 대립 중이다. 하나는 배당 규모고, 다른 하나는 정관변경에 관한 것이다. 고려아연은 이번 주총에 지난해 결산 배당금으로 주당 5000원을 지급하는 안건을 상정했다. 1만원을 줬던 지난 2022년보다 줄어든 규모다. 주당 1만원 배당을 요구하는 영풍 측은 29일 “지난해 고려아연의 시가 배당률(주가 대비 배당금 비율)은 2022년 3.54%에서 지난해 3.00%로 낮아졌다”고 지적했다. 이에 고려아연은 “주주환원율이 약 5%에 불과한 영풍의 주주 친화 정책에 대해선 들어 본 적도 없다”며 “영풍의 배당 확대 요구는 고려아연 배당금이 없으면 만성 적자를 벗어날 수 없는 영풍의 경영진을 위한 것”이라고 반박했다.

국내 법인에 제3자 배정 유상증자를 허용하는 정관변경은 갈등의 또 다른 축이다. 고려아연은 신주인수권 제3자 배정 대상을 외국 합작법인으로만 제한한 기존 정관의 삭제를 추진 중이다. 고려아연 측은 글로벌 스탠더드에 맞춘 변화라는 입장이다. 하지만 영풍 측에선 “제3자 배정 유증 조건 완화는 고려아연 현 경영진의 경영권 방어를 위한 수단을 확보하는 작업”이라며 “향후 무절제한 유증으로 일반 주주들이 보유한 주식 가치가 희석될 가능성이 크다”고 지적했다.


두 회사의 장외 여론전은 주총 표 대결로 이어질 전망이다. 현재 최 회장 측 우호 지분은 33.2%고, 장형진 영풍 고문 측 지분은 32%로 1.2%포인트밖에 차이가 나지 않는다. 이에 따라 정관 일부 변경안의 경우 부결 가능성이 높다는 전망이다.

영풍 측은 주총 표 확보를 위해 먼저 움직였다. 고려아연 주주의 가정을 직접 방문해 의결권 위임을 요청하고, 행동주의 펀드 KCGI자산운용(옛 메리츠자산운용)을 우군으로 확보했다. 가정 방문 과정에서 영풍의 권유업무 대리인인 케이디엠메가홀딩스는 ‘고려아연 주식회사’가 강조된 명함을 사용해 논란이 일기도 했다. 케이디엠메가홀딩스가 고려아연 측을 위해 의결권 대리 행사를 권유한다는 오해를 일으킬 수 있다는 것이다. 고려아연 측은 “자본시장법 위반 가능성을 살펴보며 영풍에 대한 법적 대응을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고려아연 측은 영풍이 고려아연 경영권 장악을 궁극적 목표로 한다고 의심하고 있다. 고려아연 관계자는 “장씨 일가 입장에선 고려아연의 주가가 하락해야 고려아연 주식을 더 싸게, 더 많이 매입할 수 있다”며 “영풍과 장씨 일가가 그리는 그림은 과도한 배당 요구→주총 안건 가결→고려아연 투자전략 차질→기업가치 하락→주가 하락→저가 매입→지분 확대→경영권 장악”이라고 주장했다.

양측의 지분율이 비슷한 고려아연과 달리 영풍의 지분은 장씨 측이 52.9%를 보유하고 있다. 고려아연 측은 18.42%에 불과하다. 업계 관계자는 “영풍에 대한 장씨 일가의 지배력은 고려아연의 최씨 일가와 비교해 탄탄한 편”이라며 “고려아연 주총장에서의 대결은 영풍 입장에선 잃을 것 없는 게임”이라고 말했다.

황민혁 기자 okjs@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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