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주안의 시시각각] 가짜 뉴스보다 겁나는 거짓 뉴스
지난 1월 27일자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 17면에 소름 돋는 사진이 실렸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키스하는 장면이다. 백발의 두 정치인이 눈을 지그시 감은 채 입술을 포갰다. 기사의 제목은 ‘가짜(Fake)’다. ‘저스틴 메츠 작가가 FT 기고를 위해 창작한 작품’이라는 설명이 없었다면 실제 상황으로 속았을 사진이다. 기사는 푸틴이 등장하는 딥 페이크(인공지능 기반 가짜 영상)를 소개하며 가짜 뉴스가 범람하는 시대의 혼란을 지적했다.
우리도 가짜 뉴스가 논란이다. 경찰은 윤석열 대통령의 딥 페이크 영상을 수사 중이다. 뻔히 가짜인 줄 알 만한 콘텐트를 단속하는 건 과도하다는 반론도 나온다. 우린 딥 페이크보다 진실성이 떨어지는 뉴스에 늘 노출된다. 처음엔 진짜인 줄 알았으나 시간이 흐르니 거짓으로 드러난 기사가 넘친다. 요즘 ‘비명횡사’ 소식이 잇따르는 더불어민주당을 보자.
‘이재명 불체포특권 포기’. 지난해 6월 19일 각 언론에 보도된 기사다. 이 대표는 이날 국회 교섭단체 대표연설에서 “(검찰이) 구속영장을 청구하면 제 발로 출석해 영장실질심사를 받겠다”고 했다. 한데 그날이 임박하자 이 대표는 단식하며 저항했다. 체포동의안은 민주당 일부 의원이 찬성표를 던지면서 가결됐다. 법원 영장 기각으로 해피엔딩인 줄 알았으나, 당시 찬성표를 던진 것으로 지목된 인사들이 이번 총선 공천에서 밀려났다. ‘이재명 불체포특권 포기’ 기사를 따랐던 의원들의 참변이다. 기사가 하나 더 생각난다.
‘이재명 “이낙연 결단에 깊이 감사… 함께 반드시 정상에 오를 것”’. 2021년 10월 13일 뉴스다. 이 대표는 SNS에 ‘국민의 가슴을 두근거리게 했던 문재인 정부 첫 국무총리, 이낙연 후보님’이라며 ‘이제 손을 꽉 맞잡고 함께 산에 오르는 동지가 되었습니다’라고 썼다. 지난 28일 공천 탈락에 반발하는 친문재인 인사들에게 “탈당은 자유”라고 말하는 이 대표의 모습과 매칭이 되는가. 오죽하면 진보 학자조차 “공천 코미디”(강준만 전북대 명예교수), “매일 변하는 남자”(이대근 우석대 교수)라는 평가를 할까.
가짜 뉴스는 잘 들여다보면 금세 실체가 드러나지만, 거짓 기사는 시간이 흐르고 나야 판별된다. 그래서 더 위험하다. 야당에서만 이런 뉴스가 나온 건 아니다.
‘윤석열 “김대중·노무현처럼 기자실 자주 찾을 것… 김치찌개 같이 먹읍시다”’. 2022년 3월 23일 기사는 2년이 흐른 지금 도무지 실감이 안 간다. ‘尹 “이준석이 뛰라면 뛰겠다”’. 2021년 12월 4일 뉴스는 또 어떤가. 당시 윤 대통령이 “100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 한 젊은 당 대표와 함께하는 것은 행운”이라고 말했다는 기사 내용 역시 비현실적으로 느껴진다.
‘불체포특권 포기’ 이재명 대표 기사
‘기자실 자주 찾을 것’이라던 대통령
실제 뉴스였으나 사실과 전혀 달라
우리 국민을 솔깃하게 하는 거짓 뉴스는 선거철에 특히 기승이다. FT는 가짜 뉴스의 해악을 설명하기 위해 희대의 위작 화가인 에릭 헤본의 일화를 꺼냈다. 1996년 로마의 거리에서 둔기로 머리를 맞고 비명횡사한 그는 책과 방송을 통해 거장의 작품 상당수가 자신의 위작이라고 주장해 파문을 일으켰다. 헤본이 촉발한 진짜와 가짜의 혼돈을 소개한 FT는 “여러 민주주의 국가가 2024년에 투표를 한다”며 가짜 뉴스의 폐해를 환기한다.
다음 달 총선을 앞두고 정부는 가짜 뉴스 엄단을 경고한다. 거짓 뉴스는 더 해로운데도 무방비다. 시민이 감시하는 수밖에 없다. 최근 나온 후보군 몇 개만 추려본다.
‘국회의원 수를 250명으로 줄이겠다.’ ‘국회의원 세비를 국민 중위소득 정도로 하자.’(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
‘선거구 획정 권한을 중앙선관위에 넘기겠다.’(윤재옥 국민의힘 원내대표)
‘증오의 정치, 대결의 정치를 끝내자.’(이재명 대표)
‘협상과 타협을 통해 정치를 복원하자.’(홍익표 민주당 원내대표)
이런 뉴스의 전개를 주시하면 정치권 거짓 뉴스의 계보가 어떻게 이어질지 예측이 가능하다.
강주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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