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企 살린다는 정치권, 상속세 정쟁 도구화… 안타까운 일”

김혜원 2024. 2. 29. 18: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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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 초대석] 정기옥 대한상의 중기위원장
대한상공회의소 중소기업위원회 위원장을 맡고 있는 정기옥 LSC푸드 회장이 지난 27일 서울 중구 대한상의 회관에서 국민일보와 인터뷰하고 있다. 정 회장은 지난해 8월 서울시 중소기업 명예시장에 위촉돼 서울시정에도 참여하고 있다. 이한형 기자


상공회의소와 인연을 맺은 지 벌써 햇수로 15년이다. 2010년 서울상공회의소 노원구상공회 회장을 맡은 게 시초다. 이후 25개 상공회 회장단의 대표인 서울경제위원회 위원장을 거쳐 현재 서울상공회의소 부회장과 대한상공회의소 중기위원회 위원장을 겸하기까지 매번 ‘여성 최초’ 타이틀을 달았다. 중소기업계의 ‘대변인’으로 통하는 정기옥 LSC푸드 회장 얘기다. 지난 27일 서울 중구 대한상의 회관에서 국민일보와 만난 정 회장은 카카오톡 채팅방에 다른 중소기업인이 올린 애로사항 몇 가지를 보여줬다. 중대재해처벌법 적용 유예 또는 완화, 화장품 제조원 표기로 인한 중소기업의 어려움 등을 호소하는 목소리가 생생하게 담겨 있었다. 정 회장은 “중소기업인을 만나 보면 국제통화기금(IMF) 위기 때보다 더 경영 여건이 나쁘다고 한다”면서 “금리와 물가, 최저임금이 모두 높아 원가와 인건비 부담에 각종 노동 규제가 겹치면서 존폐의 기로에 선 중소기업이 역대로 가장 많다”고 말했다. 정 회장은 윤석열 대통령이 강조하는 대·중소기업 간 상생이 단순한 구호에 그쳐서는 안 된다고 지적했다. 윤석열 정부의 상속세 인하 움직임과 관련해선 “독일과 일본처럼 100년 이상 경영을 승계하는 장수기업을 배출하기 위해서라도 파격적인 세제 감면 등 과감한 지원이 있어야 한다”고 밝혔다.

-중소기업을 대변하는 단체의 장으로, 무보수로 봉사한 지 꽤 오래됐다.

“노원구상공회 회장을 6년간 하면서 풀뿌리 중소 상공인의 현장 고충을 해결하려고 분투했던 시간이 귀한 경험의 시작이었다. 현재는 대한상의 중기위원장을 맡으면서 토론도 많이 하고 경영 환경 개선을 위해 뛰고 있지만 어려움이 많다. 우리나라는 중소기업 종사자 비중이 80% 이상으로 압도적으로 많은 나라다. 치열한 글로벌 경쟁에서 뒤지지 않으려면 대기업도 중요하지만 대기업의 협력사가 모두 중소·중견기업이고 이들이 튼튼해야 우리 경제도 흔들림 없이 나아갈 수 있다. 국회에서 입법으로 탄탄한 사다리를 놓아줬으면 한다.”

-최근 중소기업은 어떤 애로사항을 토로하나.

“중소 화장품 업체 U사의 최고경영자(CEO)는 콜마와 코스맥스 제조원 표기로 인해 중소기업이 큰 피해를 보고 있다고 호소한다. 이 문제는 국회에서 공론화 과정을 거쳤지만 번번이 가로막히면서 중소기업은 지쳐 전의를 상실한 지경에 이르렀다. 규제를 풀어야 제2, 제3의 거대 화장품 회사가 생겨날 텐데 현재는 중소기업이 성장할 기회를 원천 차단하는 꼴이다. 지금 대기업 하도급사가 아닌 개별 중소기업은 그 어느 때보다 힘든 시기를 버티고 있다. 이런 가운데 중대재해처벌법을 50인 미만 영세 중소기업에 확대 적용한 것은 현실을 외면하는 가혹한 처벌이다. 그 법이 무엇인지 인지조차 못 하고 있는 곳이 태반이다. 대한상의에서 교육과 홍보를 체계적으로 하는 데도 막상 먹고 살기 바쁜 중소기업 입장에서는 법을 숙지할 시간이 부족하다.”

-급식 업체를 운영하는 창업주 관점에서 볼 때 대기업과의 진정한 상생은 무엇인가.

“단체급식 업종의 사례를 보면 2021년 삼성웰스토리가 공정거래위원회로부터 과징금을 부과받은 것을 계기로 대기업이 구내식당을 외부에 개방했었다. 하지만 막상 뚜껑을 열어 보니 참가 자격 제한 등이 실상과 맞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 벽이 높아 실제 입찰에 참여할 수 있는 조건을 갖춘 중소기업이 거의 없었다. 한바탕 입찰 시즌이 끝나고 보니 결국 ‘그들만의 리그’였다. 3년이 지난 지금도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500식 미만 중소기업을 적합 업종으로 지정하거나 한 식당에서 일정 기간 대기업이 운영한 뒤에는 반드시 중소기업에 위탁 운영을 맡기는 식의 개선이 필요하다.”

-상속세 인하를 요구하는 기업인이 많다.

“정치권에서는 경제의 한 축인 중소기업을 살려야 한다고 주장하면서도 상속세 인하 등을 놓고는 정쟁 도구화하면서 ‘부자 감세’는 안 된다고 한다. 가업의 승계 의지는 꺾이고 세금 부담 탓에 헐값에 기업을 매각하는 안타까운 일이 빈번하다.”

-독일이나 일본에는 장수기업이 많고 상속세가 없는 나라도 있다.

“독일에는 100년 된 장수기업이 1만개가 넘는다. 최근 독일은 법인세 감면을 골자로 한 ‘성장기회법’을 내놨다. 독일 경제의 바탕을 이루는 ‘미텔슈탄트’(직원 500명 이하 매출 5000만 유로 이하 중소기업)를 대상으로 4년간 50종류에 달하는 법인세 감면 혜택 담은 법이라 눈길이 간다. 한국에서는 최대주주가 기업을 상속할 때 최고 65% 상속세를 내야 하는데 홍콩이나 싱가포르에서는 상속세를 전혀 내지 않는다. 캐나다는 세계 최초인 1972년 상속·증여세를 폐지했고 호주도 1984년까지 단계적으로 없앴다. 캐나다 사례를 참고해 상속하는 시점을 자본의 양도로 간주하고 양도차익에 과세하는 자본이득과세로 전환하자는 목소리가 있다.”

-중소·중견기업도 대기업 못지않은 ‘가진 자’로 보는 시각이 있는데.

“기업을 바라보는 시각이 예전보다는 나아졌지만 여전히 ‘피터팬 증후군’에 빠져 있는 중소기업도 적지 않다. 최태원 대한상의 회장은 늘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강조하는데 중소기업도 적극 동참해야 한다. 경영에만 몰두하는 중소기업계가 탄소중립과 ESG 경영 등 글로벌 트렌드를 놓치지 않도록 대한상의 차원에서 조력자 역할을 더 강화하겠다.”

김혜원 기자 kim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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