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차피 면허 정지 못해"…전공의들 정부 '채찍' 겁 안내는 이유

최태원 2024. 2. 29. 0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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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료법에서 민법으로 대정부 전선 옮겨
'의약분업' 면허박탈 의협회장도 재취득
정부 "사표 수리 안된 상태서 무단결근"

의대 2000명 증원에 반발해 사직서를 낸 전공의들이 정부의 초강경 대응에도 무반응이다. 전공의들이 정부가 무슨 말을 하든 결국 자신들에게 불이익을 줄 수 없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정부는 전공의들이 사직서 제출을 예고한 지난 19일부터 업무개시명령, 진료유지명령 등의 행정조치를 내리고 “미복귀 시 예외 없이 면허정지, 면허박탈, 사법처리 등의 조치를 하겠다”는 방침을 수위를 높여가며 공언하고 있다. 검찰총장과 경찰청장도 직접 나서 구속수사 검토 등 강력한 형사처벌을 경고했다. 그러나 전공의들은 아직 복귀 움직임이 없다.

이는 의사는 대체 불가능한 직역이라는 ‘폭탄’을 전공의들이 몸에 두르고 있기 때문이다. 2014년 원격의료 반대 파업에 전공의로 참여했던 의사는 “폭탄이 터져서 내가 죽으면 너도 병을 못 고치는데 나를 건드릴 수 있느냐는 생각”이라고 설명했다.

정부는 “29일까지 미복귀하는 전공의들은 기계적으로 3개월 이상의 면허정지와 사법처리를 하겠다”고 발표했다. 이에 대해 수련병원 관계자는 “정부가 실제로 전공의 1만명에게 3개월 면허정지를 내리면 전국 모든 종합병원의 정상 진료가 3개월간 멈춘다”며 “이를 아는 전공의들은 면허정지는 실행 불가능한 협박이라고 여긴다”고 전했다. 다른 병원 관계자는 "정부가 면허정지 처분을 하면 생길 의료공백을 메울 방법이 없고, 면허취소 등 더 중한 처분은 아예 못 할 것이란 생각으로 전공의들이 버틴다"며 "어차피 육체적으로 힘들었는데 이번 기회에 3개월에서 1년쯤 쉬다가 와서 다시 하면 된다는 생각"이라고 전했다.

2000년 의약분업 파동시 집단폐업과 휴업을 주도한 김재정 전 대한의사협회 회장은 업무방해 혐의 등으로 대법원에서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확정판결받고 2006년 의사면허가 취소됐다. 그러나 그는 2009년 면허를 재취득했다. 그나마 이를 제외하면 의사들이 집단행동으로 처벌받은 사례는 거의 없다.

2020년 의대 증원에 반발한 의사 파업 당시 정부는 업무개시명령을 어긴 전공의와 전임의 10명을 고발했다가 취하했다. 당시 의대생들은 의사국가고시 실기시험 응시를 집단 거부했는데, 이후 정부가 의료법 시행령까지 개정하며 국시 기회를 추가 부여해 의대생을 구제했다. 이런 특혜를 준 까닭은, 의대 졸업생들이 의사 자격을 못 따면 그해 전국 수련병원 인턴 수급이 불가능해지는 등 국가 의료체계가 흔들리기 때문이었다.

이번 전공의 이탈에 대해 일각에선 “사직서 대신 의사 면허를 반납하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의사 면허는 반납할 수 없다. 의료법에 의사 면허 반납 규정이 없다. 의사가 금고 이상의 실형이나 집행유예 등을 선고받고 타의로 면허를 취소당하지 않는 한, 의사가 자의로 면허를 반납하고 ‘비의사’로 돌아가는 건 불가능하다. 의사면허 자진 반납을 허용하지 않는 까닭은 인구 규모에 맞는 의사 인력이 반드시 유지돼야 하기 때문이다. 면허가 취소돼도 형기 만료 후 복지부 장관이 지정한 기관에서 40시간 교육 프로그램을 이수하면 면허를 재교부받을 수 있다. ‘내 의사 신분은 영원하다’는 법적 보장이 전공의들이 정부의 초강경책에도 동요하지 않는 주요 배경이다.

2000년(의약분업), 2014년(원격의료), 2020년(공공의대) 등 과거 세 차례 의사 파업과 달리, 이번에 전공의들은 정부와의 대립 전선을 ‘의료법’에서 ‘민법’으로 옮겼다. 휴가원을 내고 진료를 거부하던 이전 '파업’과 달리, 이번에는 전공의들이 사직서를 내고 '퇴사'했다. 대한의사협회나 대한전공의협의회는 노동조합이 아닌 직능단체여서 법적으로 파업권이 없다. 정부는 이에 따라 현재 전공의들의 근무지 이탈을 불법 파업으로 간주한다.

전공의들은 이에 맞서 “각자 사직서를 내고 퇴사했을 뿐 파업이 아니다”는 논리를 내세운다. 박단 대한전공의협의회장은 사태 초기인 20일 "집단행동을 하지 말라"는 말을 남기고 사퇴했다. 결과적으로 전공의 입장에선 집단 사직이 아니라 대전협이 개입하지 않은 '개인행동'이라는 그림이 그려졌다. 의료법상 의사는 금고형 이상을 선고받으면 면허가 취소될 수 있는데, 전공의들은 개인적으로 사표를 내고 직장을 그만뒀다고 금고형 이상을 선고받지는 않을 것이라고 판단한다.

정부가 내린 업무개시명령과 진료유지명령은 의료법 제59조 1항 '복지부 장관은 국민 보건에 중대한 위해가 발생하면 의료인에게 지도와 명령을 할 수 있다'와 2항 ‘복지부 장관은 의료인이 정당한 사유 없이 진료를 중단하거나 의료기관 개설자가 집단으로 휴업하거나 폐업하여 환자 진료에 막대한 지장을 초래하면 그 의료인이나 의료기관 개설자에게 업무개시명령을 할 수 있다’는 규정에 근거한다. 업무개시명령을 위반하면 의료법상 1년 이하의 자격 정지나 3년 이하의 징역형이 가능하다. 반면 진료유지명령은 처벌 규정이 없는 '상징적인 조치'이다.

이에 대해 전공의들은 “사표를 내고 병원을 그만뒀으니 ‘의료인’이 아니고, 병원을 열고 운영하다가 휴업 또는 폐업한 '의료기관 개설자'도 아니므로 업무개시명령 대상자가 아니다”는 논리를 편다. 이들은 “지난 20일 사직서를 냈으니 ‘근로계약 해지 통고를 하고 1개월이 지나면 효력이 발생한다’는 민법 제660조에 따라 정부가 사직서를 수리하지 못하게 해도 다음 달 19일로 자동 퇴직된다”며 ‘시간 싸움’을 하는 중이다.

그러나 정부는 “병원이 사직서를 수리하지 않았으므로 최소 1개월은 기존 근로계약이 유효하고, 따라서 전공의들은 현재 무단결근 중”이라고 해석한다. 정부가 전공의들에게 업무개시명령과 진료유지명령을 내린 민법상 근거도 여기에 있다. 상급종합병원 고위관계자는 빅5를 포함한 47개 상급종합병원이 전공의 사직서를 수리할 가능성은 없다고 말했다. 그는 "병원이 전공의 사직서를 수리하면 복지부가 상급종합병원 평가 항목 중 '교육 기능'에서 낙제점을 주어 일반 종합병원으로 강등시킬 것"이라며 "그러면 수가 가산율이 떨어져 병원 매출이 하락한다"고 이유를 설명했다.

복지부는 29일 이후 첫 근무일인 다음 달 4일부터 미복귀 전공의를 사법처리하는 수순을 밟을 것으로 보인다. 미복귀자를 집계해 경찰에 고발하면, 경찰은 이들에게 출석요구서를 보내고 수사를 개시할 것으로 예상된다. 경찰은 전공의들이 합당한 이유 없이 출석에 불응하면 검찰과 협의해 체포영장을 발부할 방침이다.

정부는 이에 앞서 지난 27일 김택우 의협 비대위원장, 주수호 의협 비대위 언론홍보위원장, 박명하 비대위 조직강화위원장, 임현택 대한소아청소년과의사회장, 노환규 전 의협 회장 등 5명과 인터넷에 선동문을 올린 성명불상자를 업무방해, 업무개시명령 위반 등 혐의로 경찰에 고발했다. 전공의를 직접 고발하기에 앞서 '주변'부터 압박하는 모양새다. 경찰은 이 사건을 서울경찰청 공공범죄수사대에 배당했다.

최태원 기자 peaceful1@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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