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도포럼] 온 나라가 남 탓, 남 걱정만
충분한 이해없이 부정·폄하
중세의 마녀사냥 떠올라
이분법적 인지, 인간의 약점
인터넷 발달로 무섭게 확산
자신에 대한 성찰은 없이
서로 손가락질만 난무
사회 갈등 해소 리더십이 없다
아시안컵 기간 중 선수단 내 불화를 일으킨 이강인 선수, 이승만 대통령을 소재로 한 영화 ‘건국전쟁’을 관람한 가수 나얼, 자녀 입시비리 혐의 등으로 기소된 조국 전 장관의 항소심 판결을 앞두고 재판부에 탄원서를 제출한 차범근 전 축구대표팀 감독, 광복절에 일본 가족여행 사진을 SNS에 올렸던 배우 고소영. 최근 국민적 비난을 한몸에 받은 사람들이다. 상황에 대한 충분한 이해도 없이 한순간에 보인 태도와 행동을 문제 삼아 그들이 쌓아온 모든 것을 부정하고 폄하하는 것을 보면서 중세 유럽의 마녀사냥을 떠올렸다.
중세 말기는 백년전쟁과 흑사병으로 인한 대기근이 이어져 교회 중심의 통치 질서가 무너지는 상황이었다. 이어지는 재앙의 원인을 찾고자 하는 대중에게 교회는 악마의 존재를 제시한다. 그리고 악마의 하수인인 마녀를 제물로 삼아 성난 민심을 달래고 권력을 유지하고자 했다. 하지만 교회 중심의 정치 질서는 무너졌고 마녀사냥은 신 중심의 중세가 인간 중심의 근대 사회로 진입할 때까지 이어진다. 한 시대가 저물고 새로운 시대가 열리는 혼란스러운 상황에서 기득권 세력의 선동이 ‘이항 대립’ ‘차이 감지 적응’ ‘오류 관리 이론’ 등의 이론으로 설명되는 인간의 본성과 결합하면서 광기 어린 학살이 빚어진 것이다. 그리고 중세 말기 인쇄술의 발달로 악마론 관련 서적이 유럽 전역에 전해지면서 마녀사냥은 극에 다다른다.
인간은 기본적으로 이항 대립의 틀 속에서 인지 대상의 속성을 구분하고자 한다. 선과 악처럼 실제로는 이분법적 접근이 불가능한 연속적인 속성조차도 이분법적인 접근을 통해 인지하고자 한다. 그리고 인지된 대상의 속성이 집단에 해가 될 경우 인지 대상을 집단으로부터 격리하고자 한다. 또 인지 과정에서 확실한 근거가 부족하더라도 불확실성이 높은 상황에서는 위험을 회피하기 위해 최대한 보수적으로 의사결정을 한다. 마녀를 재앙을 불러온 악의 축으로 규정하고 몇 가지 속성을 통해 마녀를 찾아내 처형했다. 마녀를 선별하는 과정에서 판단의 근거가 충분하지 않을지라도 마녀가 끼칠 수 있는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마녀의 속성을 조금이라도 가진 여성은 처형했다.
중세에서 근대로 진입하는 과정에서 유럽인들이 경험한 사회적 혼란을 디지털 기술이 견인하는 새로운 시대로 진입하는 과정에서 현대인들도 경험하고 있다. 정신의학자 폴 트루니에가 그의 저서 ‘인간의 자리’에서 공중그네를 타는 곡예사가 반대편의 그네를 잡기 위해 잡고 있던 그네를 놓고 잠시 공중에 머물러 있는 순간에 느끼는 불안감에 빗대어 정의했던 ‘중간 지대의 불안’을 현대인들도 느끼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불안감을 떨치기 위해 끊임없이 사회적 혼란을 야기하는 원인을 찾아내 제거하고자 한다. 이러한 대중의 욕구가 구성원 간 갈등으로 이익을 취하고자 하는 집단의 선동과 맞물려 온라인 공간은 먹잇감을 찾아 헤매는 하이에나의 사냥터가 돼 버렸다.
구성원들은 자신을 정의의 파수꾼으로 착각하고 끊임없이 타인의 태도와 행동을 재단하며 여론 재판을 즐긴다. 온 나라가 남 걱정이고 남 탓이다. 어디에도 자신에 대한 성찰은 없다. 그저 손가락질만 난무할 뿐이다. 어쩌면 현대판 마녀사냥은 불확실성이 낮아지고 새로운 문명이 뿌리내리기 전까지 지속할지도 모른다. 그리고 인쇄술의 발달로 증폭되었던 근세의 마녀사냥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현대판 마녀사냥은 인터넷이란 매체를 기반으로 빠르게 확산될 것이다.
온라인 공간에 만연한 여론 재판이 두려운 이유는 중세의 마녀사냥과 같이 무죄 추정의 원칙을 기대하기 힘들다는 것이다. 마녀 재판소에 기소된 용의자의 유죄 여부를 판결하는 방법의 하나는 용의자의 손발을 묶어 물속에 빠뜨린 후 수면 위로 떠오르면 유죄를 선고하고, 수면 아래로 가라앉으면 무죄를 선고하는 것이었다. 결국, 판결과 관계없이 용의자는 목숨을 잃게 된다. 여론 재판이 시작되면 사실관계를 떠나 여론 재판의 대상도 죄인으로 낙인찍히고 만다.
현대판 마녀사냥도 역사의 진보를 통해 새로운 문명으로 진입하는 과정에서 겪어야 하는 필연적인 현상으로 이해하고 싶지만, 미래의 비전을 제시하고 법과 제도를 미래 지향적으로 개선하여 불확실성에 기인하는 사회적 갈등을 줄이고자 하는 국가의 리더십이 여전히 아쉬운 선거철이다.
박희준 연세대 산업공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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