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기의 시시각각] 장제원은 억울할까, 편안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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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권성동도 김기현도 버티니 승리
책임을 묻지도, 지지도 않는 나라
책임지고 나선 쪽이 손해 봐서야
」
#1 다음 달 20일 전후로 추진 중인 한·일 정상회담이 아직 유동적이다. 회담 추진의 시작은 이랬다. 기시다 총리는 당초 3월로 예정했던 미국 국빈방문이 4월로 미뤄지면서 방한을 모색했다. 지난해 3월 '제3자 변제안'이란 결단을 해준 윤 대통령에 대한 마음의 빚이 여전히 남아 있기 때문이다. 양국이 선보일 미래지향적 메시지도 측근에게 준비토록 했다. 우연히 서울 고척돔 경기장에서 같은 시기 오타니가 있는 LA 다저스와 김하성이 있는 샌디에이고 파드리스의 미국 메이저리그 개막전이 있다. 그래서 가능하면 한·일 정상이 함께 관람하는 이벤트도 추진하려 했다. 물론 야구는 곁가지일 뿐 핵심은 회담이었다.
그러나 이를 막고 나선 건 양국의 외교 당국. 관료들의 좋게 말하면 신중함, 나쁘게 말하면 책임 회피 때문이다. 한국 외교부는 "4월 10일 총선 전에 일본 총리가 오면 선거에 마이너스 아니냐"며 주저한다. 일본 외무성도 "잘해야 본전"이라고 말린다. 오히려 선거결과에 더 예민해야 할 윤석열 대통령과 기시다 총리는 전향적이다. 트럼프 2기에 대응하기 위해서라도 하루라도 더 빨리, 더 많이 한·일 정상이 협력의 폭을 넓히고 깊이를 더해야 할 텐데 관료들의 눈과 귀, 코는 그저 "잘 안 되면 누가 책임지나"에 쏠려 있다.
돌이켜보면 지난해 3월 강제징용 해결안이 나온 뒤에도 그랬다. 주일대사관은 일본 내 재일교포 기업인과 단체들의 성의를 기부로 연결하기 위해 동분서주했다. 하지만 외교부는 오히려 제동을 걸었다. 섣불리 기부를 받거나 권유할 경우 두고두고 '최순실 사태' 때와 같은 책임 추궁이 올 수 있으니 너무 열심히 일하지 말라는 얘기였다. 한심한 일이다.
#2 하지만 요즘 정치권의 총선 공천 과정을 보고 있노라면 공무원들은 조족지혈, 새 발의 피다. 먼저 더불어민주당. 이른바 '친명'은 문재인 대통령 세력, 즉 '친문'에 지난 대선 패배의 책임이 있다며 공천 학살에 나섰다. 다가오는 당권 경쟁, 대선후보 경쟁에서 아예 경쟁자의 싹을 잘라놓으려는 의도가 너무나 속 보인다. 그러면서 정작 대선에서 패배한 이재명 대표 본인은 아무런 책임도 지지 않는다. 불출마선언 같은 희생도 않는다. 상식적으로 보면 온갖 졸속과 편법이 횡행했던 문재인 정부의 임종석, 추미애, 조국은 물론 사당화에 혈안인 이재명, 정청래, 장경태 같은 이들 모두 깡그리 책임을 물어 '공천 아웃'시키는 게 옳다. 그런데 책임은 안 지고 또 스멀스멀 기어 나온다.
국민의힘이라고 다를 게 없다. 장성민 전 대통령실 미래전략기획관의 "국힘 의석수는 150석에서 160석, 민주당은 110석 정도에 불과할 것"이란 발언을 듣고 뜨악했다. 예측이야 자유다. 하지만 적어도 그는 그런 말 할 자격이 없는 것 아닌가. 대통령실 엑스포 유치 총괄 책임자로 투표 직전 인터뷰에 나와 "당일 초박빙의 승부가 펼쳐질 것"이라고 했던 장본인이다. '119대 29' 참패의 책임을 져야 할 인물에게 책임 추궁은커녕 단수공천을 주니 그런 믿거나 말거나 발언을 또 반복한다. 하기야 당시 한덕수 총리 이하 아무도 책임지지 않았고, 윤 대통령 이하 아무도 책임지라 하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우리 사회에 '책임지면 손해 본다'는 풍토가 자리 잡고 만 건 아닐까.
그런 점에서 최근 몇달 사이 가장 깔끔하게(혹은 순진하게) 책임지는 모습을 보인 건 장제원 의원이 거의 유일하지 않을까. 윤핵관 2선 후퇴론이 불거져도 버티기로 일관했던 권성동 의원, 희대의 'SNS 당 대표 사퇴' 후 잠수를 타다 막판 등장한 김기현 의원 모두 결국 자신의 선거구를 지켜냈다. 나머지 친윤 핵심들도 마찬가지. 책임 안 지고 버티니 살아났다. 그런 모습을 바라보며 지금 장 의원은 무슨 생각을 할까. 성급한 결단을 후회할까, 아님 맹자의 '불원천 불우인'(不怨天不尤人·군자와 선비는 남 아닌 자신에게 책임을 묻는 법이다)의 가르침을 다시 되새기고 있을까.
김현기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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