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복룡의 신 영웅전] 인술 실천한 안창일 소아과 원장
1960년대 서울 신당동 빈촌에 ‘안창일 소아과’ 병원이 있었다. 큰길 건너 박정희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과 김종오 육군 대장이 살았고, 한 블록 더 가면 김종필 중앙정보부장이 살았다. 안창일(사진) 원장은 가톨릭의과대학 박사 1호였다.
병원이 없던 시절이어서 나는 성인인데도 안창일 소아과에 다녔다. 어느 날 몸이 불덩이 같은 아이를 안고 엄마가 들어왔다. 그리 넉넉해 보이지 않았다. 안 원장은 열을 재고 진찰을 한 다음 병이 아니니 집에 가서 몸을 시원하게 하고 보리차를 자주 마시게 하라고 했다. 엄마가 안타까워하며 “약은 안 주시나요”라고 물었다. “병이 아니니 약을 먹일 필요가 없습니다.” 불안해하던 엄마가 “치료비는 얼마인가요”라고 물었다. “치료한 일이 없는데, 치료비를 어떻게 받습니까. 그냥 가세요.”
가난한 엄마는 굽실거리며 병원을 나갔다. 아마 그 엄마는 감사한 마음으로 안창일 원장이 복 받게 해달라고 기도했을 것이다. 곁에서 본 나도 60년 전 일이 생생한데, 그 엄마는 얼마나 감사했을까. 언젠가 신문 인사 동정란에서 안창일 원장이 동산병원 원장으로 부임한다는 기사를 봤다.
2017년에 경희대 부속병원장을 지낸 안창일 한국소아과학회 회장의 부고가 신문에 실렸다. 상주인 아들이 어느 종합병원 부원장이었다. 부고 기사에 고인을 추모하는 몇 편의 글이 달렸다. 틀림없이 천국에 가셨을 것이다. 세상에는 그런 의사가 있었던 시절도 있었다.
‘전공의 사태’를 걱정한다. 한국인에게는 의사를 돈과 연결하는 고정 관념이 있다. 의사는 비싼 학자금에다 고생과 시간을 투자한 만큼 행복을 누릴 권리가 있다. 그들에게 인술만 요구하는 것이 아니다. 그들도 유족한 삶을 살아야 한다. 다만 사경을 헤매는 그대의 어머니가 응급실 문 앞에서 발길을 돌린다 해도 지금의 마음에 변화가 없겠는가. 지금 국민은 의사 편이 아니다.
신복룡 전 건국대 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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