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조가 있는 아침] (216) 밥 도
2024. 2. 29. 00:12
밥 도
이종문(1955∼)
나이 쉰다섯에 과수가 된 하동댁이 남편을 산에 묻고 땅을 치며 돌아오니 여든둘 시어머니가 문에 섰다 하시는 말
-웃지말라니까 글쎄(시인동네)
밥이 무슨 죄인가?
참으로 기가 막힐 노릇이다. 아들이 죽은 지도 모르는 치매 어머니. 나이 쉰다섯에 남편을 산에 묻고 땅을 치며 울다 집이라고 돌아오니 문에 서서 며느리만 학수고대 기다리던 여든두 살 시어머니가 밥을 달라고 한다.
그러나 이 시조의 바탕에 깔려 있는 것은 유머 감각이다. 도저히 웃음이 나오지 않을듯한 상황에서도 피식, 웃음이 나오게 하는 여유. 그래서 우리는 슬픔을 극복하고 살아가는 것이다. 아마 이 며느리도 “네, 어머니”하고 밥을 차려드렸을 것이다. 그러면서 생활 속으로 돌아섰을 것이다. 산 사람은 살아야 하는 것이니까···.
다양한 현상들을 해학적으로 묘사하는 이종문의 ‘밥’을 소재로 한 시조 한 수를 더 읽는다.
“밥을 삼켰어요, 흑, 흑, 우는 밥을, 어깨를, 들먹이며, 흐느껴, 우는 밥을, 내 입엔 들어가지 않으려고, 발버둥을, 치는, 밥을!” -‘밥’
시조는 이렇게 재미있는 장르도 된다. 고시조처럼 한 줄로 이어 쓰면서, 숨가쁘게 찍어댄 쉼표가 읽는 재미를 더한다. 미안하다. 밥아!
유자효 한국시인협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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