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아 성별 언제든 알수 있다…성감별 금지법 37년 만에 위헌
앞으로 태아의 성별을 묻는 부모에게 ‘늠름’이니 ‘핑크색’이니 돌려 말하지 않아도 된다. 이제 의사가 임신 기간과 상관없이 “딸이다” “아들이다”란 사실대로 태아의 성별을 알려줄 수 있게 된 것이다. 28일 헌법재판소는 6:3의 다수 의견으로, 임신 32주가 넘을 때까지 의사가 태아의 성별을 알려주는 걸 금지한 의료법 조항이 헌법에 위반된다는 결정을 선고했다. 헌재 위헌 선고의 효력은 즉시 발생해 해당 조항은 무효가 됐다.
헌재는 15년 전인 2008년에도 같은 조항에 대해 판단했는데, 당시엔 성별 고지 금지 자체는 유지해야 하나 조항을 수정해야 한다고만 했는데(헌법불합치 결정), 이번에는 금지 자체가 사라져야 한다고 보고 아예 해당 조항 폐지를 결정한 것이다.
헌재의 판단이 달라진 건 15년이 지난 오늘날에는 태아의 성별 고지를 제한해야 할 만큼 남아선호사상이 유지되고 있지 않다고 봤기 때문이다. 성별 고지 금지가 우리 법에 처음 등장한 1987년은 여아 낙태가 공공연하게 벌어지던 때였다. 여아 100명당 남아 103~107명을 자연적 출생성비로 보는데, 1980년대 말 110명 이상으로 치솟았고 2007년에서야 정상범위로 돌아왔다.
다만 셋째아 이상의 출생성비가 정상범위로 돌아오는 데는 시간이 더 걸렸다. 헌재가 아직은 성별 고지 금지 조항을 버릴 수 없다고 판단한 2008년에만 해도 셋째아 이상의 출생성비는 116.6이었다. 그로부터 6년이 더 지난 뒤에야 정상범위에 진입(2014년 106.7)해 현재까지 유지되고 있다(2022년 103.9).
다수의 헌법재판관은 “셋째아 이상도 자연 성비의 정상범위에 도달한 2014년부터는 성별 관련 인위적 개입이 없어 보인다”며 “남아선호사상이 확연히 쇠퇴하고 있다”고 봤다. 성별 때문에 낙태하던 시절에는 태아의 성별을 알려주는 게 곧 태아의 생명을 위협하는 일이므로 금지해야 했지만, 이제는 그렇지 않으므로 성별 고지를 제한하는 것 역시 타당하지 않다는 설명이다.
재판관들은 문제의 의료법 조항이 “성별을 이유로 한 낙태가 있을 수 있다는 아주 예외적인 사정만으로 임신 32주 이전 모든 부모에게 태아의 성별 정보를 알 수 없게 하고 있다”며 이는 “태아의 성별을 비롯해 태아의 모든 정보에 접근을 방해받지 않을, 부모로서 당연히 누리는 천부적이고 본질적인 권리”를 쓸데없이 제한하는 결과를 낳는다고 봤다. 다만 소수의 헌법재판관(이종석·이은애·김형두)은 32주보다는 더 빨리 고지 금지를 풀되 고지 금지 자체는 필요하다는 의견(헌법불합치)을 냈다. “남아선호사상이 완전히 사라졌다고 할 수 없고, 남아가 아니라도 부모의 자녀 성별 선호는 있을 수 있다”고 봤기 때문이다. 여기에 낙태의 97.7%가 임신 16주 이전에 행해진다는 사실과 기술의 발달로 성별 확인 시기가 이전보다 앞당겨졌다는 사실(16주→10주)을 합해 보면, 성별을 이유로 한 낙태는 여전히 발생할 수 있다고 했다.
이번 위헌 결정은 2022년과 2023년에 걸쳐 아빠이자 변호사인 청구인들이 낸 호소를 헌법재판소가 받아들인 것이다. 그 사이 태아는 세상 밖으로 나왔다. 7개월 아이의 아빠인 노필립 변호사는 “부모의 알 권리가 법적으로 보장되는 영역에 들어오게 돼 의미 있고 기쁘게 생각한다”고 했다. 15개월 아이의 아빠인 강성민 변호사는 “헌재가 시대 현실을 반영한 결정을 내렸다고”고 했다.
문현경·오삼권 기자 moon.h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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