훈련장도 없는 광주FC의 기적은 현재진행형

김성호 2024. 2. 28.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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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호의 씨네만세 651] KBC광주방송 <옐로 스피릿>

[김성호 기자]

어쩌면 K리그 사상 최고의 감독일지 모른다. 광주FC의 이정효 감독 이야기다.

2021년 겨울, K리그2에서도 여유롭다고 할 수 없는 광주 시민구단의 감독을 맡아 본격적인 커리어를 시작한 그다. 충분한 영입도, 시간도 필요 없다는 듯이 곧장 독보적인 성과를 이뤄냈다. 불과 1년 만에 K리그2 최단기간 우승을 확정지었고 최다승점까지 기록하며 광주FC를 K리그1로 승격시켰다. K리그2에서도 꼴찌 후보로 평가된 전력을 가지고 연전연승하는 모습을 두고 축구팬들은 광주의 노란돌풍이 결코 우연이 아니라고 말했다.

바람은 멈추지 않았다. 2023년 K리그1에 진입한 광주FC는 상위스플릿은 물론, 최종순위 3위까지 기록했다. 전 구단을 상대로 승리를 거둔 유일한 팀이자 아시아챔피언스리그 진출권까지 따낸 승격팀이 되었다. 강등 1순위 후보에서 리그 역사상 가장 강한 승격팀으로 인식이 뒤바뀌는 데는 채 몇 경기가 필요하지 않았다. 출전명단에 국가대표 선수가 여럿인 강팀마저 광주를 맞이해 선수비 후역습 전술을 쓰는 모습은 광주의 축구가 얼마만큼 파격적이고 강력했는지를 보여주었다.

감독 이정효가 K리그에 던진 돌
 
▲ 옐로 스피릿 포스터
ⓒ KBC광주방송
  
그러나 성적만으로 그를 평가하는 건 이정효와 그가 걸어온 길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다. 그는 K리그의 선구자다. 전술부터가 그렇다. 잔뜩 내려서 수비하다 역습으로 골을 노리는 축구, 뛰어난 용병에게 공격을 내맡기고 나머지는 수비에 전념하는 축구, 그렇고 그런 안정 지향적인 축구가 넘쳐나는 K리그의 현실에서 그는 줄곧 이상을 이야기했다. 위험을 무릅쓰고 전진하며 상대를 압도하는 축구, 그렇게 골을 만들어내는 축구로 승리를 가져올 수 있다고 말했다. 모두가 꿈을 깨야한다고 말하였으나 이정효는 전술과 전략으로 차이를 극복할 수 있다고 믿었다.

그렇다면 그는 왜 물러서지 않고 지배하는 축구를 고집했을까. 보다 현실적이면서도 검증된 방법을 놔두고서 말이다. 놀랍게도 그 답은 축구 바깥에 있다. 축구를 넘어 하나의 산업으로써, 광주FC가 광주시민들에게 다가서야 한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좋은 축구가 관중을 부른다는 확신, 모여든 관중이 산업을 일으키리라는 믿음이 광주 감독 이정효의 철학이다.

<옐로 스피릿>은 쿠팡플레이가 선보인 축구 다큐멘터리다. 강등 1순위 후보에서 모든 팀이 두려워하는 강자로 자리매김한 광주FC의 2023 시즌을 담았다. 모두 5회 분량으로 제작된 다큐는 감독 이정효의 철학과 열정, 광주FC의 현실과 성장, 선수 및 팬들이 넘어온 무수한 어려움이 한 데 담겼다.

최고의 한 해, 다큐로 다시 본다
  
▲ 옐로 스피릿 스틸컷
ⓒ KBC광주방송
 

전술했듯 광주FC는 2023년 최고의 한 해를 보냈다. 유례없는 승격팀의 아시아챔피언스리그 진출권 획득을 현실화시켰고, 시즌 내내 그들만의 매력적인 축구를 포기하지 않았다. 그리하여 팬들에게 광주FC라는 상품을 각인시켰고 수많은 축구팬을 경기장으로 끌어냈다. 적어도 2023년엔 저 유명한 기아 타이거즈보다도 광주FC가 큰 파급을 일으켰다 해도 틀리지 않을 테다.

광주의 역사적인 시즌은 다큐 속에서도 극적이다. 전년도 K리그2에서의 압도적 우승을 통해 선수들은 감독에게 확고한 믿음을 품은 상태다. 그러나 열악한 시민구단 사정 탓에 수준급 선수 영입은 이뤄지지 않는다. 부족한 선수층은 체력저하와 골 결정력 부재 등으로 이어지고, 이길 경기를 비기고 비길 경기를 지는 일이 거듭된다. 경기 내용은 훌륭한데 결과는 그렇지 못한 상황이 반복되는 것이다.

해당 시즌 강등되는 수원 삼성 블루윙즈를 수월하게 잡아내며 기분 좋게 시작한 시즌이지만 경기를 거듭할수록 선수의 질적 차이와 얇은 스쿼드의 문제가 드러났다. 부상이 속출하고 체력저하가 눈에 밟혔다. 무엇보다 골 결정력은 고질적 문제였다. 경기를 내내 주도하고도 골을 기록하지 못해 비기거나 패하는 경우가 쌓여나갔다. 어느 팀이 결정력 문제가 없겠느냐만 광주의 경우는 그 정도가 심했다. 수십 차례 찬스에서 단 한 골을 뽑지 못하는 경우가 수시로 벌어졌다.

더는 작은 광주가 아니다
 
▲ 옐로 스피릿 스틸컷
ⓒ KBC광주방송
 

급기야 상대팀이 광주를 상대로 내려앉아 경기를 펼치는 사례까지 속출하자 승점을 쌓는 일이 무척이나 어렵게 된다. 각고의 노력으로 준비한 축구가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는 마음에 감독은 라커룸과 기자회견장에서 울먹거리기까지 한다.

고난과 극복, 성취와 개선점이 맞물리는 다큐다. 결코 쉽지 않은 초반기를 이겨내고 광주의 축구가 성과를 내는 모습은 적잖이 감동적이다. 감독 이정효가 내내 진심을 다하고 있다는 사실이 그대로 엿보이기 때문이다. 솔직하고 열정적인 감독의 성품이 스크린 너머 고스란히 전달되니 다큐를 보는 이도 자연스레 그에게 호감을 품게 될 수밖에 없다.

다큐는 그저 축구팀의 어느 한 시즌을 재현하는 데 머무르지 않는다. 프로축구가 하나의 산업임을 주지케 하고, 그 산업의 상품을 더 나아지게 만들려 고민하는 이들의 노력을 알도록 한다. 하나의 승리보다 관객을 감동케 할 수 있는 더 나은 상품을 고민하는 감독이 있다는 사실은 놀랍기까지 하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러한 노력이 마땅한 응답을 얻어낸다는 사실은 더욱 감동적이다.

어느 광주 시민은 광주FC의 선전으로 더는 광주가 작은 광주로 머물지 않게 되었다고 말한다. 많은 광주 시민이 광주FC의 경기를 보러 축구장을 찾고, 희로애락을 함께 경험하며 제 생활에 영향을 받는다. 축구가 하나의 산업으로 그려지고, 그 산업이 개인의 삶 깊이 침투해 시민들의 생활 자체를 바꿔낼 수 있음을 다큐는 은근히 드러낸다. 이정효가 말하는 좋은 축구가 바로 그 길 위에 있음을 이 다큐가 이야기하는 것이다.

낙후된 구장, 훈련장도 없는 광주의 현실
 
▲ 옐로 스피릿 스틸컷
ⓒ KBC광주방송
 

긍정적인 점 사이로 안타까운 모습 또한 적잖이 등장한다. 광주FC는 K리그에서 유일하게 자체 훈련장을 갖지 못한 팀이다. 선수들이 야외가 아닌 건물 내 복도에서 몸을 푸는 모습이 수시로 등장한다. 경기장 또한 그 상태가 심히 열악하여 공사를 진행하는 동안 팀이 순천으로 옮겨가야 할 정도다. 시민구단 성공사례로 꼽히는 대구와 인천을 동일선상에 놓고 비교하는 것이 민망할 정도의 환경이다.

그럼에도 다큐는 모든 것이 나아지고 있음을 보인다. 광주의 축구에 매료된 팬들이 적극 나서 훈련장 조성 문제를 공론화하고, 그 결과로 시민구단을 주도하는 정치인들이 조금씩이나마 역할을 수행하기 시작한 것이다. 또한 광주의 축구는 어제보다 내일이 더 기대된다. 이정효의 지도 아래 팀은 한국을 넘어 아시아챔피언스리그에 저의 축구가 통할 수 있다는 사실을 입증하려 한다. 그렇다면 더욱 많은 팬들이 경기장을 찾고 선수들을 응원할 수 있을 테다.

<옐로 스피릿>은 한 명의 인간이 저를 옭아매는 현실의 장벽들과 맞서 어디까지 성취해낼 수 있는가를 보이는 사례이기도 하다. 구단으로부터 이렇다 할 지원을 받지 못하고, 여러 팀들이 승점 쌓기에만 급급한 축구를 선보일 때, 저의 이상을 지켜내며 성공에 이르는 흔치 않은 이가 등장하기 때문이다. 위기 속에서도 뜻을 굽히지 않고 울먹거리면서도 전진하는 주인공이 나온다면, 심지어 그것이 극영화가 아닌 다큐라면 어떻게 응원하지 않을 수 있을까.

덧붙이는 글 | 김성호 평론가의 얼룩소(https://alook.so/users/LZt0JM)에도 함께 실립니다. '김성호의 씨네만세'를 검색하면 더 많은 글을 만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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