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민정의 생활의 발견] 넘어야 살고 즐겨야 난다
연거푸 악몽을 꾼 며칠이다. 꿈처럼 저마다의 잠결 속에 제멋대로 흐르는 이야기가 또 있을까 하니 그 풀이야말로 문학이 아니려나 하니 깨고 나면 잔상 정도는 메모를 해두는 참인데, 내게 유난히 불길하고 무서운 정도라 하면 그 소재로 육상에서의 허들이나 뜀틀이나 바가 등장했을 때다. 셋의 공통점을 캐치프레이즈로 써본다면 “넘어야 산다” 정도로 요약할 수 있으려나. 아무렴, 그보다는 체육 시간에 내가 0점을 받은 세 종목이라는 간추림이 더 말은 되겠다.
그러니까 눈에 보이는 장애물, 어찌됐든 가로막아서 거치적거리게 하는 사물들, 그걸 타 넘기 위한 스피드를 기본으로 유연성이며 기민성이며 도약성을 교과서로 배우고 들어선 운동장이었음에도 나는 그 앞에 서면 멈춰버리거나 쭈뼛거리거나 주저앉아버리기 일쑤였다. 친구들이 일으킨 무수한 운동화 흙먼지로 눈앞이 뿌얘졌을 적에 왜 나는 이렇게 유난일까 빨개진 눈으로 수돗가에서 세수에나 바빴다.
졸업만 해봐라 다시는 체육복을 입지 않으리라, 다짐했건만 졸업을 하고 트레이닝복 사들이기에 바빠진 것은 올림픽 명장면 가운데 육상 종목을 골라보기 시작하면서부터다. 그로부터 한참 지나 우상혁 선수가 높이뛰기 경기 가운데 특유의 희고 가지런한 이를 죄다 드러내며 환히 웃을 적에 나도 따라 웃는 걸 느끼고 난 후부터다. 내가 넘어야 할 저 눈앞의 바를 걸림돌이라는 부담으로 여길 것이냐 한곗값이라는 최선으로 즐길 것이냐 예의 그 지점에 내 심장이 뛰었다. 정확한 간격으로 놓인 허들, 공평한 높이로 솟은 뜀틀, 정직한 수치로 올라가는 바, 삶에 있어 이토록 투명하면서도 건강한 거침돌을 학창 시절이 아니고서야 또 만날까.
요 며칠 왜 흉몽의 나날이었을까 하니 누군들 길몽의 하루하루였을까 반문하게 되는 2월의 끝자락이다. 주말에 들른 제주에서 부는 바람에 절로 몸을 맡길 줄 아는 월동무와 당근, 그네들의 연둣빛 머리통으로 가득한 밭에서 나는 아주 잠시 흔들리다 왔다.
김민정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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