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호석화 ‘조카의 난’ 재점화…이번엔 다르다
잠잠해지나 싶었던 금호석유화학 경영권 분쟁 불씨가 다시 피어오르는 중이다. 금호석화 개인 최대주주인 박철완 전 상무가 행동주의 펀드를 운용하는 차파트너스자산운용(이하 차파트너스)과 전격 손잡고 반격에 나섰다. 가뜩이나 실적 부진에 내부 분위기가 뒤숭숭한 금호석화는 ‘조카의 난(박찬구 금호석화 회장은 박철완 전 상무의 작은아버지)’이 또다시 벌어지자 대응책 마련에 부심한 모습이다.
“자사주 전량 소각하라” 압박
투자은행(IB)업계에 따르면 금호석화 지분 9.1%를 보유한 최대주주 박철완 전 상무는 차파트너스를 최대주주의 특별관계인으로 추가했다. 차파트너스는 금호석화 지분 0.03%를 확보한 상태다. 차파트너스는 조현식 전 한국앤컴퍼니 고문의 처남 차종현 대표가 경영하는 행동주의 사모펀드다. 그동안 맥쿼리인프라, 남양유업 등을 상대로 행동주의에 나선 경험이 있다.
차파트너스를 등에 업은 박철완 전 상무는 곧장 “자사주를 전량 소각하라”며 금호석화 압박에 나섰다. 입장문을 통해 “금호석화가 대규모 미소각 자사주를 보유했는데, 자사주가 소액주주 권익을 침해하고 부당하게 활용할 가능성이 있다”고 꼬집었다. 금호석화는 지난해 말 기준 18.4%(약 525만주)의 자사주를 보유한 상태다.
박 전 상무는 기업 거버넌스 개선, 소액주주 권리 보장, 경영진에 대한 감시와 견제를 위해 필요한 권한을 차파트너스에 위임하기로 했다고 덧붙였다. “독립성이 결여된 이사회가 제 역할을 못하면서 기업이 저평가됐다는 점에서 차파트너스와 공감대를 형성했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박 전 상무 측은 자사주 소각 외에도 감사위원회 위원이 되는 사외이사 선임 안건을 제출했다. 그는 “차파트너스 같은 행동주의 펀드가 활성화돼 소액주주 권리를 보호하는 문화가 형성되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재계 관계자는 “박 전 상무 측은 표면적으로는 자사주를 소각해 일반 주주 권리를 높여야 한다는 명분을 내세웠지만 속내는 다르다. 박찬구 회장 측이 자사주를 통해 경영권을 방어하는 루트를 차단하기 위한 목적일 가능성이 높다”고 귀띔했다.
박철완 전 상무는 故 박정구 금호아시아나그룹 회장의 막내아들로 박찬구 금호석화 회장의 조카다.
박인천 금호아시아나그룹 창업주의 2남인 박정구 회장은 1999년부터 회장직을 맡았지만 2002년 지병으로 별세했다. 이후 박인천 창업주의 4남인 박찬구 회장이 금호석화 경영권을 넘겨받으면서 승계 기류에 변화가 생겼다. 특히 박찬구 회장 장남인 박준경 사장 중심의 금호석화 후계 구도가 점차 윤곽을 드러내자 박 전 상무 불만이 극에 달했다. 박 전 상무는 2021년 삼촌인 박찬구 회장과 공동보유 특별관계를 해소하고 경영권 분쟁에 나섰다.
하지만 별다른 성과는 없었다. 박 전 상무는 2021년 금호석화 정기 주총에서 본인이 내세운 사내, 사외이사진 선임을 주주 제안으로 올렸지만 표 대결에서 졌다. 충실 의무 위반 의혹으로 이사회 임원에서 해임되기도 했다. 주총 시즌마다 배당 확대안과 함께 경영진, 이사회 변화를 내건 주주 제안을 했지만 달라진 점은 없었다.
지난해에는 금호석화그룹과 OCI그룹이 합작법인을 설립하면서 315억원 규모의 자사주를 상호 교환하자 이를 ‘경영권 방어 목적’이라고 주장하며 처분 무효 소송을 내기도 했다. 하지만 법원은 각하 판결을 내리며 금호석화 손을 들어줬다.
다만 이번에는 상황이 다르다는 것이 재계 안팎 분석이다. 정부가 기업 밸류업 프로그램을 예고하면서 자사주 소각 등 주주환원 바람이 불고 있기 때문이다. 금호석화 역시 저PBR주로 주목받으면서 주가가 날개를 달았다.
“박 전 상무가 그동안 경영권 분쟁에서 성과를 내지 못했지만 이번에는 차파트너스와 손잡은 만큼 금호석화 입장에서도 긴장할 수밖에 없다. 정부가 기업 밸류업에 드라이브를 걸면서 주주환원 목소리가 높아진 만큼 금호석화로서는 마냥 주주 제안을 무시할 수 없는 상황이지 않겠나.” 금융권 관계자 귀띔이다.
금호석화는 대응책 마련에 부심한 모습이다. 현재 금호석화 지분 구성을 보면 박찬구 회장과 아들 박준경 사장, 딸 박주형 부사장 지분을 합쳐 15.7%에 달한다.
박철완 전 상무 측은 모친 김형일 씨, 장인 허경수 코스모그룹 회장, 차파트너스 보유 지분을 포함해 10.8% 수준이다. 아직까지는 박찬구 회장 측 지분이 많지만 양측 의결권 차이는 5%포인트 안팎에 그친다.
특히 감사위원 선임의 경우 3% 룰이 적용되는 만큼 국민연금과 소액주주, 외국인 표심이 중요한 변수로 작용할 전망이다. 3% 룰은 대주주 의결권을 제한해 소액주주 권익을 보호하는 장치다. 상법에 따르면 자산 2조원 이상인 회사가 주총에서 감사나 감사위원을 선임할 때 대주주가 행사할 수 있는 의결권을 3%까지만 인정한다.
결국 주총에서 국민연금이 캐스팅보트를 쥘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국민연금은 금호석화 지분 9.27%를 보유한 2대 주주다. 소액주주와 외국인 지분은 각각 25.5%, 20.3% 수준이다. 재계 관계자는 “과거 금호석화 경영권 분쟁에서 국민연금은 박찬구 회장 손을 들어줬지만 이번에는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다. 차파트너스 측 주주 제안이 조금이라도 받아들여질 경우 금호석화 대응책을 두고 재계 이목이 쏠릴 것”이라고 귀띔했다.
지난해 영업이익 69% 급감
가뜩이나 실적 부진에 시달리는 금호석화는 경영권 분쟁이 예전과 다른 양상으로 흘러가면서 고심이 크다. 지난해 금호석화 매출은 6조3223억원으로 전년 대비 20.7% 감소했다. 영업이익은 3590억원으로 같은 기간 68.7% 급감하는 등 실적 부진에 시달리는 중이다. 2021년까지만 해도 영업이익이 2조4068억원에 달했지만 불과 2년 만에 2조원 넘게 급감한 셈이다. 합성고무 사업은 그나마 선방했지만 합성수지, 페놀유도체 부문 타격이 컸다. 합성수지 주원료인 스티렌 모노머(SM) 가격 약세가 이어지고 수요가 부진해 고부가합성수지(ABS) 실적이 악화된 영향이 크다.
올해 전망도 밝지 않다. 글로벌 석유화학 업황이 극심한 침체에 빠졌기 때문이다. 한국석유화학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한국 석유화학제품 수출액은 457억달러로 2022년 대비 16%가량 줄었다. 중국 시장 악화가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지난해 중국에 수출한 금액은 170억달러에 그쳐 1년 새 17.7% 감소했다.
중국의 대규모 증설이 악재로 작용했다는 평가다. 한국수출입은행에 따르면 지난해 중국의 연간 에틸렌 생산능력은 5174만t으로 2018년 대비 2배 이상 커졌다. 2026년에는 중국의 에틸렌 생산능력이 5601만t으로 급증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윤용식 한화투자증권 애널리스트는 “중국의 증설로 올해도 금호석화 실적 부진이 이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공급 과잉, 수요 감소로 글로벌 석유화학 업황이 지연되는 점도 변수”라고 진단했다.
“실적 부진에 시달리는 상황에서 경영권 분쟁까지 겹쳐 금호석화 앞날이 불안하다. 특별사면을 받은 박찬구 회장이 지난해 10월 그룹 경영 일선에 복귀했고, 장남 박준경 사장 주도로 사업 재편에 나섰지만 실적이 오히려 악화된 만큼 박찬구·박준경 부자 경영권이 흔들릴 우려도 배제할 수 없다.”
금호그룹 사정을 잘 아는 한 재계 관계자의 진단이다.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248호 (2024.02.28~2024.03.05일자) 기사입니다]
Copyright © 매경이코노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속보]고민정, 최고위원직 사퇴...민주당 집단 탈당 움직임도 - 매일경제
- “차익만 무려 20억?”...개포 디에이치 ‘줍줍’ 주의할 점 많다는데 - 매일경제
- ‘엔비디아 효과’에 치솟더니…SK하이닉스 급락한 이유? [오늘, 이 종목] - 매일경제
- 오늘부터 간호사가 전공의 공백 채운다…“일방적 결정” 반발도 - 매일경제
- 네이버·대한항공 ‘飛上’의 시간…삼성전자·SK하이닉스도 관심 여전 - 매일경제
- 5대 증권사가 뽑은 ‘레벨업’ 후보는? 믿을맨 ‘금융지주’ 튼튼한 ‘현대차그룹’ 찜 - 매일경
- ‘최고 연 5.2% 금리’...‘달달한’ 달달하이 적금 들어볼까? - 매일경제
- 성장·배당주 동시 담아야…결합형 ETF로 한 방에 해결 - 매일경제
- ‘조단위 대어’ 에이피알, 코스피 입성…장 초반 80%대까지 ‘쑥’ - 매일경제
- ‘프랑스산 천연 탄산수’ 페리에 위생 논란...고민 빠진 식품업계 - 매일경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