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실의 말 한 마디... '쿠바'를 뭘로 보는 겁니까 [소셜 코리아]

전후석 입력 2024. 2. 27. 19: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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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셜 코리아] '온전한 조국'에 돌아가고 싶다는 쿠바 한인의 염원 기억하길

한국의 공론장은 다이내믹합니다. 매체도 많고, 의제도 다양하며 논의가 이뤄지는 속도도 빠릅니다. 하지만 많은 논의가 대안 모색 없이 종결됩니다. 소셜 코리아(https://socialkorea.org)는 이런 상황을 바꿔 '대안 담론'을 주류화하고자 합니다. 구체적으로는 ▲근거에 기반한 문제 지적과 분석 ▲문제를 다루는 현 정책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을 거쳐 ▲실현 가능한 정의로운 대안을 제시하고자 합니다. 소셜 코리아는 재단법인 공공상생연대기금이 상생과 연대의 담론을 확산하고자 학계, 시민사회, 노동계를 비롯해 각계각층의 시민들과 함께 만들어가는 열린 플랫폼입니다. 기사에 대한 의견 또는 기고 제안은 social.corea@gmail.com으로 보내주시기 바랍니다. <기자말>

[전후석]

 
 전후석 감독이 2016년 영화 촬영 중 만난 쿠바 한인들. 뒷줄 왼쪽 첫번째가 전 감독.
ⓒ 전후석
 
대한민국과 쿠바의 수교 소식을 접하며 기쁨과 복잡한 마음이 교차했다. 기쁜 이유는 자명하다. 쿠바 한인들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필자와 쿠바의 특별한 인연은 2015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배낭여행으로 떠났던 쿠바에서 우연히 쿠바 한인 후손 3세가 모는 택시에 탔다. 택시 기사 파트리시아의 아버지는 '헤로니모 임'이라는 쿠바 혁명가로 한 때 피델 카스트로, 체 게바라와 함께 일하며 쿠바 정부에서 차관까지 역임했던 전설적인 인물이었다.

헤로니모의 아버지 임천택 선생 역시 일제 강점기 시절 쿠바에서 성금을 모금해 상해 임시정부로 송금했던 독립운동가였다. 임천택 선생은 1905년 홀어머니의 몸에 안겨 멕시코행 선박에 탑승한 1천여 명의 조선인 중 한 명이었다. 멕시코 에네켄 선인장 농장에서 힘겨운 노동을 하던 이들 중 300여 명이 쿠바로 이주한 것은 1921년 3월이었다.

파트리시아와의 이 드라마틱한 인연을 통해 필자는 3년 동안 <헤로니모>라는 다큐멘터리를 제작해서 2019년에 선보였다.

2015년 이후 촬영을 위해 쿠바에 몇 차례 방문하며 한인 후손들과 친밀한 관계를 형성했다. 그들을 통해 쿠바의 역사, 사회, 경제, 정치적 이슈를 곱씹어보는 새로운 시각도 경험했고 재외동포의 이주 역사를 더 깊게 조망하는 기회를 얻기도 했다.

특히 '한반도 분단과 재외동포들의 관계성'이라는 주제가 필자에게는 흥미로웠다. 흔히 재일교포가 남북한 이념 경쟁에서 가장 '직접적으로' 피해를 입은 디아스포라 집단이라고 일컬어진다면, 쿠바 한인은 같은 이유로 가장 '조용히' 피해를 입은 집단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조국에 대한 그리움 표출할 기회조차 박탈
 
 고 헤로니모 임은조 선생
ⓒ 헤로니모 임
 
쿠바는 혁명 전에 한국전쟁에서 대한민국을 지원할 정도로 서방과 가까웠지만 1959년 쿠바 혁명 이후엔 소련의 지원을 받으며 북한과 최고 우방국가가 되었다. 당시 쿠바 한인들은 같은 민족이자 사회주의 이념을 공유하는 북한과 동질성을 느껴 아바나 소재 북한 대사관에 문화 전수와 한글 교육, 경제 지원 같은 도움을 요청했지만 호의적인 반응을 경험한 적은 드물었다고 한다. 재일교포와 달리 쿠바 한인들은 이미 사회주의 체제에서 살아갔기에 선전에 유용한 구석이 없던 것이 그 이유였을 수 있다.

대한민국 역시 그들에게 관심을 가질 여력이 없었다. 쿠바와 직접적인 외교관계가 없기도 했지만 미국과 궤를 같이하는 한국의 이념 체제가 쿠바 한인들에게 낯설게 느껴진 것이다. 무엇보다 한반도의 분단 상황 때문에 한인들은 쿠바 내에서 공식적인 한인회를 인가받지 못했다. 북한 대사관과 쿠바 정부는 한인회가 어떤 '코리아'에 기반한 단체인지 문제 삼아 설립을 불허했다. 분단된 한반도의 현실 앞에 쿠바 한인들은 조국에 대한 그리움과 애정을 표출할 기회조차 박탈당했던 것이다.

그런 역사적 맥락에서 이번 쿠바와 대한민국의 수교는 쿠바 한인들에게 분명 희소식일 수밖에 없다. 특히 현재 쿠바의 심각한 경제난과 정치·사회적으로 어두운 분위기 속에서 수교를 통해 한인 후손들이 대한민국의 경제·문화적 산물을 조금이라도 누리게 될 수 있게 된다면 그것은 매우 긍정적인 일일 것이다.

하지만 이런 기쁜 소식을 접하며 동시에 복잡한 마음이 들었던 이유는 수교 직후 대통령실이 밝힌 입장 때문이다. 지난 15일 한 대통령실 관계자는 기자들과 만나 "이번 수교로 북한은 정치적·심리적으로 타격이 불가피할 것"이라고 밝히며 "역사의 흐름 속에서(…) 대세가 누구에게 있는지 분명하게 보여준 것"이라고 평가했다. 이 대목은 쿠바 수교의 역사적 중요성과 상징성을 순식간에 또 다른 체제 경쟁으로 전락시켰다는 지적을 피할 수 없다.

쿠바는 북한과 마찬가지로 '사회주의 독재체제'를 표방한다. 이번 수교의 진정한 의의는 쿠바와 대한민국이 비록 다른 체제와 이념을 내세우고 있지만 양국이 그것을 초월하는 실리적 상호 이익과 신뢰를 기반으로 우호적인 관계의 복원을 우선시했다는 데 있다. 특히 미중 신냉전과 러시아-우크라이나, 이스라엘-하마스 전쟁 등 불안한 국제 정세에서 이념적 적대관계에 있던 두 국가가 이뤄낸 외교 정상화는 더욱 돋보인다.

하지만 이런 업적이 또 다른 국가를 압박시키고 고립시키는 이념전쟁과 수단으로만 기능한다면, 그것은 모순적인 태도이며 수교 정신의 진정성을 폄하하는 것이다.

쿠바 한인들은 쿠바 이주 100주년 기념식을 2021년 3월에 성대하게 치르려고 준비했다. 몇몇 쿠바 한인들은 이 기념비적인 날 대한민국은 물론 북한 관계자들이 함께 참석해서 우리의 공통된 이산의 역사를 되새기고, 선조들의 끈기와 희생을 기리는 날이 되기를 꿈꿨다. 야속하게도 코로나 장기화로 기념식은 무산되었지만, 필자가 아는 대부분의 쿠바 한인들은 늘 온전한 한반도에 대한 염원을 일관되게 표현했다.

다큐멘터리의 주인공인 고 헤로니모 임은조 선생이 그러셨다. 쿠바 한인으로는 처음으로 1995년 대한민국 땅을 밟았던 그가 타계하기 5년 전인 2001년, 서툰 한글로 남겼던 글귀가 오늘따라 더 진하게 느껴지는 이유다.
 
 고 헤로니모 임은조 선생이 남긴 글
ⓒ 헤로니모 임
 
 
 전후석 / 재미 영화감독
ⓒ 전후석
 
필자 소개 : 이 글을 쓴 전후석은 뉴욕에 거주하는 재미 한인 영화감독입니다. 다큐멘터리 영화 <헤로니모>와 <초선>을 연출했고 <당신의 수식어>라는 저서가 있습니다. 세 창작물 모두 재외동포들의 이야기와 디아스포라적 사유라는 주제의식을 담고 있습니다. 스토리텔러가 되기 전에는 뉴욕 변호사로도 활동했습니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소셜 코리아>(https://socialkorea.org)에도 게재됐습니다. <소셜 코리아> 연재 글과 다양한 소식을 매주 받아보시려면 뉴스레터를 신청해주세요. 구독신청 : https://socialkorea.stibee.com/subscrib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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