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 1년 살기 말고 차라리..." 이게 요즘 육아 현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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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승혜 기자]
"어머님, 씨앗반(1~2세) 정원 수가 15명인데 올해 등록 아동이 4~5명 정도에요. 2년 전만 해도 정원을 다 채우고 대기까지 받았는데 이젠 확 줄었네요."
남편의 회사 연수로 호주에서 1년간 지내다 올 8월 귀국 예정이다. 귀국 이후 아이들이 다닐 기관을 알아보며 전화를 돌리던 중에 한국 집 근처 어린이집 원장님이 하신 말씀을 듣게 되었다.
중간 입소라 자리가 없을까 우려되었다는 내게, 인원 여유가 있으니 걱정할 필요가 없다는 얘기였다. 등록이 가능하다는 건 다행이지만 우리나라 출산율이 낮다는 게 체감돼 마음 한켠이 착잡했다.
▲ 첫째 아이와의 만남 아이와의 첫 만남의 순간은 평생 잊지 못할 경험이다 |
ⓒ 정승혜 |
내가 첫 아이를 낳던 2020년의 합계출산율은 0.84, 둘째 아이를 낳은 2022년의 출산율은 0.78이다.
2년 새에 출산율이 0.06 뺀 만큼 낮아지면서 동네 어린이집의 아동 수는 1/3로 줄었다. 젊은 부부들이 많은 신도시 아파트 밀집 지역에 살다 보니 지역 맘카페엔 늘 어린이집과 초등학교가 과밀이라 걱정된다는 게시글이 올라오곤 했다. 그런 우리 지역마저 아이들이 없다니. 다른 곳의 사정이 어떨지는 안 들어도 대강 짐작이 간다.
몇 달 전 영국 옥스퍼드대 데이비드 콜먼 교수가 한국은 저출산으로 인한 국가소멸 위기를 안고 있다고 경고했다. 이에 대한 많은 의견이 오갔다. 대체로 '한국은 답이 없다'와 같은 냉소적인 의견이었다.
실제로 나보다 빨리 결혼을 해 이미 초등학생 아이를 키우고 있는 친구들은 이렇게 말한다.
"애들한테 줄 수 있는 최고의 선물이 뭔지 알아? 바로 국적이야. 난 다시 출산 전으로 돌아가면 해외에서 낳고 싶어."
"애들 경험시키겠다고 '해외 살기 1년' 이런 거 하지 말고 어릴 때 외국에 나가서 무조건 3년을 버텨. 그럼 한국에 와서 외국인 학교에 애들을 보낼 수 있어."
아이를 낳아 잘 키울 자신이 없으니 아예 낳을 생각을 하지 않던가, 실제 아이를 낳더라도 외국 국적을 주고 싶어 하거나 외국인 학교 입학 자격을 얻어 미국식 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최대한으로 투자를 하겠다는 거다.
이런 걸 실행 할 만한 여건이 안 되면 아이가 말이 트이기 전부터 영어 교육에 투자하면서 바이링구얼(이중언어구사자)로 키운다. 비단 월에 몇 백만 단위의 영어유치원이 아니더라도, 집에서 직접 영어를 가르치는 엄마표 영어 교육법과 같은 가성비 육아법까지 유행한다. 한국 아닌 다른 나라 삶을 대안으로 삼는 것도 부모 여럿에게 해당되는 이야기이리라.
상황을 잘 모르는 사람들은 이런 모습을 보며 유난스럽다 욕하겠지만, 어쩌겠는가. 이것이 대한민국의 출산율을 구성하는 현재의 부모 세대가 고민하는 현실이다. 자식이 대한민국 국민으로 사는 것이 걱정된다는 우려를 손가락질만 한다면 한국에서 아이를 낳고 키우는 어려움을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
저출산이 단순한 사회문제가 아닌 우리 사회의 복합적 문제의 결과물인 것처럼, 아이의 국적을 바꿔 주고 싶다는 부모의 마음도 그렇다고 본다. 부모 세대가 30~40년 동안 살면서 겪어온 경쟁적인 학업 분위기, 미래 산업에 대한 불투명한 전망, 경직된 조직 문화, 성차별적 구조 등으로 인해 고착된 인식의 결과물이다.
거기에 출산율 0.6 수치의 위기감까지 더해졌다(지난해 4분기 합계출산율이 역대 최저인 0.6명대를 기록했다). 애지중지 키운 내 자식이 커서 노년층 부양만 하다가 죽겠구나 싶으니 외국 국적을 주든 한국에서 외국인처럼 살게 하든, 영어를 모국어로 가르쳐서 언제든 한국 밖에서 돈을 벌며 살 수 있도록 하고 싶은 맹모삼천지교의 2024년 판인 것이다.
맹자 부모의 노력은 헌신적이고 지혜로운 모성으로 이야기하면서 지금의 부모들을 어리석다고만 비난할 수 있을까 싶다.
▲ 호주의 어린이집 이 곳은 원하는 곳에 보내기 위해 일찍 등록을 해야 한다. |
ⓒ 정승혜 |
미국 작가 마크 맨슨은 지난달 말 자기 유튜브에 올린 영상에서 한국을 유교문화와 자본주의의 단점이 결합된 세계에서 가장 우울한 나라라고 평했다. 동시에 한국을 강하게 만드는 원동력은 회복력에 있다며, 한국인들은 항상 위기에서 빠져나오는 돌파구를 찾는다고 언급했다.
그의 말처럼 한국인들은 늘 돌파구를 찾아낸다. 1950년대 한국전쟁 후 빠른 속도로 경제 회복을 이뤄냈으며, 1997년 IMF 위기도 빠르게 극복해 냈고 코로나19 시기에도 빠른 대응은 물론 국민들의 적극적인 방역 참여로 위기에서 벗어났다.
하지만 모든 일에는 명과 암이 존재하는 법. 빠르고 효과적인 방법은 성과는 낼 수 있을지언정 모래 위에 지은 성과 같다. 역사적으로 증명해 낸 놀라운 성취 뒤에는 부정부패, 공동체 의식 부족, 노동 및 인권문제 등의 병폐가 동시에 존재하듯 말이다.
그렇기 때문에 출산율 0.6의 정책들이 우려된다. 실제로 당장 2024년부터 시행된 부모 급여 인상 역시 육아 현장에선 그다지 효과를 크게 체감하지 못하고 있다. 올 초에 둘째 아이를 낳은 친구는 출산 지원금 및 부모 급여가 인상되는 해에 출산을 하게 되었다고 좋아했지만, 막상 정책이 시행되고 보니 산후 도우미, 조리원 등 관련 비용이 다 올라서 경제적 부담은 똑같다며 걱정한다.
지원금이 늘어날수록 서비스에 대한 수요가 증가하고 이와 관련한 물가가 상승하는 것은 기초적인 경제 상식이다. 이런 식의 현금성 지원이 과연 출산율을 높이는 데 어떤 효과가 있을지 의심될 뿐더러 퍼주기식 지원이 가져 올 부작용 또한 염려되는 게 사실이다.
오히려 이런 시기일수록 'Festina Lente(천천히 서둘러라)'라는 라틴어 격언을 기억해야 한다. 바쁜 일정에 쫓겨, 자신의 암살 계획에 대한 정보를 주는 서신을 읽지 못해 죽음을 맞게 된 카이사르가 되어서는 안 될 일이다.
이미 우리는 막대한 예산을 사용했음에도 출산율이 꾸준히 낮아지는 현실을 경험했다. 그로 인해 생겨난 '저출산은 어차피 해결할 수 없는 문제다', '한국은 어차피 소멸될 것이다'라는 비관적 인식 또한 큰 문제다.
하지만 저출산은 해결 불가능한 문제가 아니다. 사랑하는 사람과 가정을 꾸리고, 나와 닮은 자녀를 낳고, 살면서 받아온 사랑과 내가 받고 싶었지만 받지 못했던 사랑을 모두 담아 아이에게 주며 서로 간의 살가운 정을 나누고자 하는 것은 인간의 본능에 가깝기 때문이다.
이제 막 걸음마를 시작한 아이가 아장거리다 넘어지면 "아이쿠" 하는 마음이 드는 게 자연스러운 것처럼 말이다. 그럼에도 그걸 잊고 싶을 만큼 현실의 문제가 복잡하고 힘겨운 게 아닐까.
부디 출산율 0.6명의 시대에서 빠르고 효과적이기만 한 해결책을 찾지 않기를 바란다. 2024년에 시행된 정책으로 2025년 출산율이 바로 오를 수는 없을 것이다. 단기간의 지표를 높이는 데 집중하기보다 교육제도, 미래 산업, 기업문화, 주거환경 등 다방면의 개선점을 모색해야 할 것이다.
어쩌면 출산율 0.6명은 그동안 빠른 성장으로 잃어버린 대한민국의 회복탄력성을 찾을 수 있도록 주어진 마지막 기회일 수 있다. 대한민국 국민으로 아이를 키우는 일이 자랑스럽고 행복한 일로 인식되는 사회가 오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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