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토 우산 쓴 스웨덴, 러는 '군관구' 부활…북극권 신냉전 격화
스웨덴이 32번째 나토(NATO·북대서양조약기구) 회원국이 되면서 유럽의 안보 지형이 크게 바뀌고 있다. 북극권의 전략적 요충지인 발트해 인접국들이 모두 나토 회원국이 되면서 러시아를 완전 포위하는 형세가 됐기 때문이다.
'나토의 동진을 막는다'는 명분으로 우크라이나를 침공했던 러시아 입장에선 외려 나토 확대란 정반대 결과를 얻게 됐다. 이뿐만 아니라 일부 유럽연합(EU) 국가가 우크라이나에 지상군 파병을 검토하는 등 압박 수위도 계속 높아지고 있다.
수세에 몰린 러시아는 14년 전 폐지했던 모스크바·레닌그라드 군관구를 부활시켜 사실상 군사 요새로 삼는 전략을 펴기 시작했다. 이에 따라 "나토와 러시아 간 신냉전 대결 구도가 더 첨예해지는 양상"이란 분석이 나온다.
26일(현지시간) AFP통신 등에 따르면 헝가리 의회는 이날 오후 부다페스트에서 열린 본회의 표결에서 스웨덴의 나토 가입 비준안을 가결했다. 나토 가입을 위해선 회원국들의 만장일치가 필요한데 그간 튀르키예와 헝가리의 반대로 지연됐다. 지난달 튀르키예 의회에 이어 이날 헝가리 의회까지 찬성하면서 스웨덴의 나토 가입이 확정됐다.
이제 형식적 절차만 남았다. 이날 헝가리 의회가 가결한 비준안이 '나토 조약 수탁국'인 미국 국무부에 전달되면 최대 5일 안에 마무리된다. 이때부터 스웨덴은 '회원국에 대한 무력 공격을 전체 회원국에 대한 공격으로 간주해 필요시 무력 사용을 포함한 원조를 제공한다'고 규정한 나토 집단방위 5조를 적용받는다.
나토 동진 막으려다... 푸틴의 자충수
핀란드에 이어 200년 넘게 중립국 지위를 유지하던 스웨덴까지 나토에 가세하면서 러시아의 군사적인 입지는 더욱 좁아졌다. 우크라이나가 나토에 가입하려고 한다는 이유로 침공했던 러시아 입장에선 자충수가 된 셈이다.
이와 관련, 토니 블링컨 미국 국무장관은 이날 스웨덴의 나토 합류를 놓고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우크라이나 침략이 '전략적 참패(strategic debacle)'였다는 것을 보여준 일"이라고 말했다. 핀란드·스웨덴의 합류로 나토와 접한 러시아 국경선은 기존보다 두 배 가량 늘어나게 됐다. 또 러시아 제2의 도시 상트페테르부르크(레닌그라드주 주도)와 맞닿은 전략적 요충인 발트해를 나토가 사실상 포위하는 형세가 됐다.
북유럽 안보 지형 재편
전문가들은 "해군력이 강하고 전투기도 생산하는 스웨덴의 가세로 나토의 대러 군사 대응이 한층 강화될 것"으로 내다본다. 스웨덴의 군산복합체인 사브는 그리펜 전투기와 2000t급 디젤 잠수함 등을 개발·생산하고 있다. 우크라이나군에 제공된 정밀유도탄인 '지상발사 소구경 폭탄(GLSDB)'도 사브와 미국 보잉이 공동 개발했다.
스웨덴은 스칸디나비아반도 남쪽의 칼스크로나에 잠수함 기지도 갖추고 있다. 잠수함 운용 능력도 뛰어나다. 이 같은 작전 경험을 토대로 나토의 해상력 장악에 상당한 힘을 보탤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당장 러시아 해군의 핵심인 발트함대 사령부가 위치한 역외 영토인 칼리닌그라드가 완전히 고립된 상황이다. 러시아 군함이 대서양으로 나가려면 스웨덴 해군을 포함한 나토군의 통제 해역을 통과해야 하기 때문에 사실상 러시아가 제해권을 상실하게 됐다.
안보 위협을 느낀 러시아는 2010년 폐지했던 모스크바·레닌그라드 군관구 부활 카드로 맞대응에 나섰다. 군관구 지정으로 해당 지역에선 러시아군이 군사전략에 따라 시설 차출은 물론 물자와 인력을 통제하는 등 행정권을 독립적으로 발동할 수 있다. 레닌그라드 군관구의 경우 발트해 연안 상트페테르부르크 등을 포괄한다.
앞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지난해 핀란드가 나토에 가입하자 "핀란드와의 분쟁은 20세기 중반에 해결됐고 그간 문제가 없었지만 앞으로 문제가 생길 것"이라며 레닌그라드 군관구 재창설 의지를 밝혔다.
스웨덴까지 나토의 '안보 우산' 속으로 들어갔지만 나토 각국 회원국이 마냥 마음을 놓고 있을 상황은 아니다. 나토의 '안보 무임승차론'을 주장해온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이 오는 11월 미 대선에서 재집권할 가능성이 대두되고 있기 때문이다. 로버트 달쇼 스웨덴 국방연구소 책임자는 "만약 트럼프 전 대통령이 당선되고 나토 동맹 방어에 대한 미국의 약속에 심각한 의문이 제기된다면 푸틴이 나토의 결의를 시험하도록 영향을 미칠지도 모른다"고 뉴욕타임스에 말했다.
지난달 15일 독일 빌트가 입수해 보도한 기밀문건에 따르면 독일 국방부는 러시아가 유사 시 폴란드 국경 일대의 전략적 요충지인 '수바우키 회랑'을 공격해 칼리닌그라드와 연결할 가능성이 있다고 봤다. 러시아군이 수바우키 회랑으로 통하는 나토 회원국인 발트 3국(라트비아·리투아니아·에스토니아)을 침공할 가능성이 있다는 경고와 함께다.
이럴 경우 나토가 병력을 동원해 맞대응하는 것도 쉽지 않다는 분석도 나온다. 러시아가 칼리닌그라드에 배치한 전술핵무기로 독일 등 나토 회원국을 위협할 수 있기 때문이다.
카네기국제평화재단도 지난해 말 펴낸 '발트해 지역 안보 계획'에서 "러시아가 칼리닌그라드에 강력한 핵무력을 유지하는 한 '발트해가 나토의 호수가 됐다'고 말하긴 이르다"고 지적했다.
EU, 우크라 파병 카드 거론
EU는 나토 확장의 기세를 타고 러시아를 압박하기 시작했다. 그리스의 우크라이나 특사인 스피로스 람프리디스는 "유럽이 우크라이나를 위한 기금을 마련하려고, 공공 부문이나 민간에서 러시아의 투자 및 자산으로 나오는 이익을 몰수한다는 합의에 접근하고 있다"고 AFP에 밝혔다. 우크라이나 재건에 5000억 유로(722조원) 정도가 필요한데, EU 역내에서 발생하는 러시아 자본의 이익을 몰수하면 500억∼600억 유로(약 72조∼86조원)를 확보할 수 있다는 계산이다.
"유럽 일부 국가에서 우크라이나 파병을 검토 중"이란 얘기도 나왔다. 26일 친러 성향의 로베르트 피초 슬로바키아 총리는 자국 TV 연설에서 "우크라이나에 자국 군대를 보내고 싶어 하는 나토 및 EU 국가들의 양자 협정이 곧 실시될 가능성이 있다"며 "이에 대해 우리는 심각한 안보 위협을 느끼고 있다"고 말했다.
이런 발언은 이날 프랑스 파리에서 유럽 각국 지도자와 북미 장관급 인사 20여명이 참석한 우크라이나 지원 국제회의를 앞두고 나왔다. 실제로 이번 회의를 주최한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지상군 파병에 대한 구체적 합의는 없었으나 이를 배제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유럽 국가들이 우크라이나에 병력을 보내면 나토와 러시아의 직접 충돌로 번질 수 있다. 이는 그간 확전을 경계해온 미국 등 나토의 행보와는 다른 모습이어서 "러시아에 보내는 외교적인 압박"이란 풀이도 나온다. 우크라이나와 국경을 맞댄 나토 최전선인 폴란드, 체코 등 동유럽 국가들은 "파병 계획이 없다"며 이 같은 발언에 선을 그었다.
김민정 기자 kim.minjeong4@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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