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수 속 미세플라스틱 수십만 개 검출에도… 환경부·업체 “기준 없어 모른다”

오상훈 기자 2024. 2. 27.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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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세플라스틱은 생수는 물론 페트병에 담긴 모든 음료에 존재할 가능성이 높다./사진=게티이미지뱅크
“안 마실 수도 없는데…”

32세 A씨는 자취를 시작한 후 2년 간 생수를 사먹었다. 정수기 렌탈 비용보다 저렴해 합리적이라 판단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요즘에는 미세플라스틱이 많다고 해서 걱정이다. 그는 “미세플라스틱이 생수 한 병에 수만개씩 들어 있다는 뉴스를 봤다”며 “몸에 안 좋은 건지 밝혀지지 않았다지만 돈 주고 사먹는 물에 이물질이 들어있는 느낌이라 찝찝하다”고 말했다.

지난달, 1L 생수에서 약 24만개의 미세플라스틱이 검출됐다는 미국 컬럼비아대의 연구 결과가 발표된 이후 국내에서도 생수(먹는 샘물)에 대한 우려가 생겼다. 국내 생수 제조업체들은 미세플라스틱을 새로운 품질 저하 요인으로 보고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다만 미세플라스틱이 페트병 제조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발생할 수밖에 없는 측면도 있어 관리 체계가 필요한 실정이다.

◇수분 함유한 페트 가열하면 미세플라스틱 발생

생수 속 미세플라스틱이 어디로부터 나왔는지는 정확히 알려지지 않았다. 수원지의 물일수도 있고 물을 거르는 필터일 수도 있다. 한국화학연구원 전현열 연구원은 “해외 연구 결과들을 보면 생수 속 미세플라스틱은 그 성분에 따라 어디서 왔는지 추정해볼 수 있다”며 “폴리프로필렌은 뚜껑, 폴리아미드는 정수 필터에서 왔을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페트병 성형가공 과정이 원인으로 거론되기도 한다. 페트병은 플라스틱 중에서도 페트(PET)를 원료로 만든다. 쌀알 크기의 ‘페트 칩(chip)’을 녹여 1차 중간 제품인 투명한 시험관 모양의 프리폼(preform)을 만든다. 그 다음 병 입구에 열 변형 방지를 위한 열처리를 한 다음 약 100도로 미리 가열한 금형 속에 프리폼을 넣고 공기를 불어넣어 최종 제품을 만든다. 통상 ‘사출블로우 성형’이라고 불린다.

문제는 페트의 성질이다. 페트 분자는 물을 잘 끌어당기는 흡습성을 띤다. 대기 중의 수분을 끌어당긴 페트를 가열하면 분자 사슬이 끊어지면서 미세플라스틱을 만들어낼 수 있다. ‘잔류 수분에 의한 가수분해 현상’이라고 한다. 이러한 페트 용기에 생수를 채우면 미세플라스틱들이 섞여들 수밖에 없다.

고분자 전문가들은 대체로 동의하는 내용이다. 상명대 화학에너지공학과 강상욱 교수는 “페트 원료에 수분이 존재하는 상태에서 성형가공하면 가수분해 현상이 일어나는 건 사실”이라며 생수뿐만이 아니라 모든 페트병 성형가공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다“고 말했다. 전현열 연구원도 “페트 용기에 담긴 생수에서 페트 성분의 미세플라스틱이 검출됐다면 운송 과정에서의 기계적 마찰이나 잔류 수분에 의한 가수분해 현상을 원인으로 꼽을 수 있다”고 말했다.

◇난감한 생수 제조업체들, 선제적으로 대응하는 곳도… 

국내 생수 제조업체들도 인지하고 있을까. 시장 점유율이 높은 몇 업체들에 물어보니 대체로 난감하다는 입장을 먼저 표했다. 미세플라스틱이 인체에 유해한지는 물론 어떻게 분석하는지도 정해지지 않았는데 너무 앞서나갔다는 것이다. 한 업계 관계자는 “미세플라스틱의 합의된 정의와 기준 규격, 표준화된 공인시험법이 없는 상태에서 소비자들의 우려만 커지고 있는 상황”이라며 “현재로서는 최신 이슈 및 연구 동향을 주시하고 공인시험법이 고시되는 대로 최우선적으로 대응하는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다만 성형가공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미세플라스틱을 저감하기 위해 조치를 취하는 업체도 있었다. 시장 점유율이 가장 높은 업체의 한 관계자는 “잔류수분에 의한 가수분해 현상으로 얼마나 많은 미세플라스틱이 발생하는지 역시 판단하기 어렵다”면서도 “다만 페트 원료 사용 전 높은 온도에서 건조 공정을 거쳐 수분을 제거하고 분진제거장치 및 집진장치를 이용해 미세입자를 제거하고 있다”고 말했다.

전문가는 원료 건조 공정이 미세플라스틱 발생을 줄이는데 도움 될 것으로 보고 있다. 다만 몇 도에서 몇 분 건조했는지에 따라 잔류 수분의 양이 결정되기 때문에 단순히 건조만 했다고 해서 잔류수분이 100% 없다고 보기는 어렵다. 강상욱 교수는 “미세플라스틱의 존재와 양을 측정할 수 있는 표준화된 방법을 개발하는 게 시급하다”며 “그래야 제조사별로 미세플라스틱이 발생하지 않는 건조 조건 등을 찾을 수 있도록 지원할 수 있다”고 말했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공인시험법 개발돼야 미세플라스틱 관리 가능

결국 가장 시급한 건 미세플라스틱 공인시험법이다. 생수나 음료 속에 미세플라스틱이 얼마나 있는지 알아야 페트병 성형가공 과정을 관리할 근거가 생기기 때문이다. 환경부 관계자는 “공인시험법이 마련돼야 페트병 성형가공 과정이 미세플라스틱 발생에 얼마나 영향을 끼치는지 알 수 있을 것”이라며 “미세플라스틱 공인시험법은 국제표준화기구에도 없는 상태지만 환경부는 추후 미세플라스틱의 인체 유해성이 밝혀질 것을 대비해 시험법을 개발하기 위한 연구를 지속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현재는 어느 정도 일관성을 보이는 시험법으로 몇 개 제품의 실태 조사를 진행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지난해 6월 발의된 ‘미세플라스틱 특별법’이 주목받고 있다. 해당 법안엔 미세플라스틱 관리 기반을 조성하기 위한 연구 개발을 지원하고 미세플라스틱의 인체 유해성을 연구하는 센터를 지정한다는 등의 내용을 담고 있다. 이외에 미세플라스틱의 발생과 배출에 대한 관리 기준을 마련하고 이를 충족하지 못하는 제품의 제조, 수입, 판매, 사용 등을 원칙적으로 금지한다. 다만 해당 법안은 이렇다 할 토의 없이 계류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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