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냥이 굶기라는 당신은 대체 어떤 사람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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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옥근 시인은 고교 국어 교사 출신의 중견 동시 시인입니다.
어른이 '동시'를 쓴다는 사실에 고개를 갸웃거릴 분이 계실 겁니다.
아동문학가로 널리 알려진 이원수님 (1911-1981)을 비롯해 어른들이 쓴 동시집을 읽어 본 기억이 있어 제겐 낯설진 않았습니다.
동시는 어린이가 쓰는 시라는 편견과 달리 요즘 동시는 주로 어른이 쓴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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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병진 기자]
▲ 동시집 <고양이 달의 전설> 이옥근 시인의 신작 동시집 <고양이 달의 전설> |
ⓒ 정병진 |
이옥근 시인은 고교 국어 교사 출신의 중견 동시 시인입니다. 어른이 '동시'를 쓴다는 사실에 고개를 갸웃거릴 분이 계실 겁니다. 아동문학가로 널리 알려진 이원수님 (1911-1981)을 비롯해 어른들이 쓴 동시집을 읽어 본 기억이 있어 제겐 낯설진 않았습니다. 그래도 시인이라면 '동시'보다는 그냥 여느 시인처럼 성인시를 써야 독자가 많을 텐데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옥근 시인을 만나 설명을 들어 보니 그게 아니었습니다. 동시는 어린이가 쓰는 시라는 편견과 달리 요즘 동시는 주로 어른이 쓴다고 합니다. 또 동시의 독자는 어린이만이 아니라 어른도 많이 읽는다네요. 더욱이 성인시는 난해한 시가 많아 종종 독자의 외면을 받기도 하지만, 동시는 금세 이해하고 더 빠르게 공감할 수 있기에 사랑을 받는답니다.
이 시인의 신작 <고양이 달의 전설>은 시와 그림이 잘 어우러져 있습니다. 그림을 그린 배순아 작가는 이 시인의 아내입니다. 배 작가는 수필가, 동화작가로 활동 중인데 그림 솜씨도 수준급입니다.
누군가 이렇게 말한 게 기억납니다.
"한 권의 시집에 독자의 마음에 드는 시 한 편만이라도 있다면 그 시집은 성공한 거다."
이 기준으로 본다면 이 시집은 성공하고도 남았습니다. 시 한 편 한 편마다 곱씹어 봐야 할 여운을 남깁니다. 동시라고 시피보고 읽어선 안 된다는 사실을 일깨우는 시집입니다. 웃음이 나면서도 의표를 찌르는 시를 한 편 봅시다.
'쪽지 싸움'
상가 뒷골목에 붙은
날카로운 경고장
- 길고양이에게
밥 주는 놈은
도대체 어떤 인간이냐?
이튿날 그 아래
삐뚤빼뚤 눌러쓴 답장
- 길냥이에게
밥 주지 말라는 분은
도대체 어떤 사람인가요?
"글은 곧 그 사람"이라 했던가요? 이 '쪽지 싸움'을 보면 '경고장' 날린 자와 답글을 쓴 사람의 인격이 고스란히 묻어납니다. 경고장 쓴 자는 '길고양이' '밥 주는 놈' '어떤 인간이냐?'라 했고, 답글을 쓴 분은 '길냥이' '밥 주지 말라는 분' '어떤 사람인가요?'라 말합니다. 비슷한 말 같으나 어감은 사뭇 다릅니다.
길고양이와 다른 사람을 대하는 태도에서 두 사람이 얼마나 다른지 그 말씨에서 잘 드러납니다. 이 시는 굶주리는 길냥이에게 밥 주는 거 마저 못마땅해 함부로 화를 내는 이야말로 아직 '사람'('삶+앎'이라고 저는 해석합니다)에 이르지 못한 안타까운 '인간'임을 보여줍니다. 그 자신이 내 뱉은 말에 부메랑을 맞은 격입니다.
이 짤막한 시는 평소 우리가 얼마나 말조심을 해야 하는지, 또 힘 없고 약한 이들을 사랑으로 잘 보살펴야 하는지 넌지시 일러 줍니다.
또 한 편의 시를 봅시다.
'학교 앞 도로'
쌩쌩 달리다가
이크!
학교 앞에서는
시치미 뚝 떼고
달라지는 자동차들
걸릴까 봐
찍힐까 봐
갑자기 슬금슬금 기어오며
눈치 살살 살피지
굽신굽신 힐끔힐끔
모두 말 잘 듣는
얌전한 새침데기들.
학교 앞 도로(스쿨존) 차량들을 묘사한 시입니다. 사실 '스쿨존'이란 게 따로 없더라도 초등학교 앞이라면 마땅히 속도를 줄이고 조심해야 합니다. 하지만 자동차로 그 앞을 지나다니는 많은 어른이 그러지 않았습니다.
매년 학교 앞 교통사고로 다치고 죽는 어린이가 많았습니다. 끝내 '스쿨존' 규정이 생기고 학교 앞 도로에 CCTV가 들어섰습니다. 그제서야 처벌받을까 두려워, 또는 감시 카메라에 찍혀 벌금이라도 물까 봐 차량들은 조심하며 속도를 줄였습니다.
사실 이게 '학교 앞 도로'만의 상황은 아닐 겁니다. 법령이 없더라도 당연히 조심해야 할 일들을 법령과 감시, 처벌이 없다고 함부로 하는 사례가, 둘러보면 얼마나 많은가요? 옛 어른들 말씀대로 "하늘이 알고 땅이 아는데..."라 생각하면 감히 못할 짓들을 하니 말입니다.
하긴 최근 다 드러난 대통령 부인의 불법 명품 수수 사실조차 어영부영 덮으려 들고 사정 당국은 수사하려 들지도 않는 걸 보면, 어른도 아이 앞에 할 말을 잃습니다. 이를 생각하면 동시 '학교 앞 도로'는 부드럽지만, 요즘 어른들 사는 꼴을 회초리로 매섭게 후려친 시가 아닌가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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