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대기업 일자리 OECD 최저…입시경쟁‧저출산 불렀다

정진호 2024. 2. 27. 16: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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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대기업 일자리 비중을 더 늘려야 한다는 국책연구원의 주장이 나왔다. 일각에서 주장하는 “대기업 집중이 심하다”는 주장을 정면으로 반박하는 내용이다. 중소기업이 기업 성장시 발생하는 추가 규제 부담 때문에 성장을 미루는 ‘피터팬 증후군’을 해결해 양질의 대기업 일자리를 늘리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제안이다.


韓 대기업 일자리 비중, 미국 4분의1


고영선 한국개발연구원(KDI) 연구부원장은 27일 ‘더 많은 대기업 일자리가 필요하다’는 제목의 보고서를 내놨다. 보고서에 따르면 2021년 한국의 종사자 250명 이상 기업 일자리 비중은 13.9%로, 관련 통계가 있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2개 회원국 중 가장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대기업이 전체 일자리에서 차지하는 비중을 따져봤을 때 OECD 평균은 32.2%다. 한국은 주로 300명을 기준으로 대-중소기업을 구분하지만, OECD는 250명을 기준으로 한다.
김영희 디자이너

이른바 선진국과 비교하면 한국의 대기업 일자리 비중이 극도로 낮았다. 미국이 57.7%로 가장 높았고, 프랑스(47.2%), 영국(46.4%), 일본(40.9%) 등도 40%가 넘었다. 고용시장에서 대기업 의존도는 한국이 미국의 4분의 1 수준에 불과하다는 풀이가 나온다.

한국 다음으로 대기업 일자리 비중이 낮은 건 그리스(17%), 라트비아(21.5%), 에스토니아(21.6%) 등이다. OECD 회원국 중에서도 경제 규모가 상대적으로 작은 나라다. 선진국일수록 대기업 일자리 비중이 높다는 의미다. 한국의 경우 1993년엔 300인 이상 대기업 근로자 비중이 전체의 20% 수준에 다다랐다가 1998년 외환위기 전후로 급감했다.


한정적 일자리가 과당 경쟁 불러


사업체 규모에 따른 임금 격차도 크다. 2022년 5~9인 사업체의 임금은 300인 이상 사업체의 54%에 불과했다. 중견기업급인 100~299인 사업체 역시 300인 이상 기업과 비교하면 71% 수준의 임금을 받는 데 그쳤다. 대기업 일자리가 극히 한정적이다 보니 극소수 근로자만이 상대적으로 높은 임금을 받고 있다는 풀이가 나온다.
지난달 22일 서울 서초구 삼성전자 사옥으로 직원들이 출근하고 있다. 연합뉴스

대기업이라는 양질의 일자리가 제한되면서 과도한 입시경쟁과 극심한 저출산 현상을 불렀다. 4년제 일반대학을 입학생의 수능 성적에 따라 5개 분위로 구분한 후 1분위(하위 20%)부터 5분위(상위 20%) 대학 졸업생의 평균임금을 연령대별로 계산한 결과도 공개했다. 5분위 대학 졸업자의 임금은 1분위와 비교해 25~29세에 25% 높았는데 40~44세엔 51%까지 격차가 벌어졌다. 1분위 대학 졸업생이 연 5000만원 벌 때 5분위는 7500만원을 번다는 의미다.

상위권 대학 졸업자는 대기업 취업, 장기근속 등에 있어 상대적으로 유리해 임금 격차를 벌린 것으로 나타났다. 한정적인 일자리를 차지하기 위한 경쟁이 대학 진학 이전부터 시작하면서 사교육 과열까지 불렀다. 윤동열 건국대 경영학과 교수는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격차가 워낙 큰 데다 노동유연성이 확보되지 않다 보니 첫 직장이 사실상 평생 임금을 결정하는 구조”라며 “소수의 대기업 입사를 위해 학생들이 취업을 장기간 미루기도 하면서 빈 일자리 문제도 나타났다”고 말했다.

지난해 11월 1일 부산 남구 대연캠퍼스 체육관에서 열린 취업박람회에 구직을 희망하는 학생과 졸업생들이 몰려 북적이고 있다. 송봉근 기자


중소기업은 출산휴가, 육아휴직 등 제도를 활용하는 데도 한계가 있었다. 2022년 고용노동부 조사에 따르면 종사자 수 300인 이상 기업의 95.1%는 필요한 사람은 육아휴직을 모두 사용할 수 있었다. 반면 5~9인이나 10~29인 사업체는 각각 47.8%, 50.8%만이 육아휴직을 활용할 수 있었다. 중소기업에서는 출산 지원 제도를 제대로 활용하기 어렵기 때문에 저출생도 대기업 일자리의 부족과 관계가 있다는 게 KDI의 설명이다. 고 부원장은 “수도권 집중 현상도 결국 비수도권에 대기업 일자리가 상대적으로 부족하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중소기업 지원만 집중…“대기업 늘려야”


각종 중소기업에 지원정책을 정비하고, 대형마트 영업시간 제한 같은 대기업에 편중된 규제는 풀어야 한다는 제언이 나온다. 특정 분야에서 대기업의 진출을 금지하는 중소기업 적합업종 제도, 중소기업에 집중된 세제혜택 등으로 인해 기업 규모를 키우지 않으려는 현상이 나타나기 때문이다. 또 이익 규모와 상관없이 단일 법인세율을 부과하는 미국과 달리 한국은 4단계 누진세율 구조다.

반대로, 대기업만 받는 규제도 있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자산총액 5조원 이상을 대기업집단으로 지정해 총수와 특수관계인의 주식소유 현황 등을 매년 제출토록 한다. 각종 공시의무와 출자 관련 제한도 부과된다. 전세계에서 한국에만 있는 규제다.

고 부원장은 “역설적이지만 대기업 부족이 이들에게 경제적 이익을 집중시키는 구조를 낳았다. 대기업과 그 근로자가 늘어야 대기업이 누리는 한정적 프리미엄을 완화할 수 있다”며 “한국은 경제 규모가 가파르게 커졌지만, 일자리 구조 면에서는 대기업 일자리가 적은 후진국 형태를 벗어나지 못 했다”고 말했다. 이어 “정부는 기업의 규모화가 원활히 진행될 여건을 만들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세종=정진호 기자 jeong.jinh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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