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실전 출격 이정후, 28일 MLB 'No.1' 컨트롤 아티스트와 대결
(엑스포츠뉴스 김지수 기자) 미국 메이저리그 샌프란스시코 자이언츠의 이정후가 미국 무대 첫 실전에 나선다. 경미한 부상을 훌훌 털고 힘차게 방망이를 돌릴 채비를 마쳤다.
이정후는 오는 28일 오전 5시 5분(한국시간) 미국 애리조나주 스코츠데일 스타디움에서 열리는 2023 메이저리그 시범경기 시애틀 매리너스전에 선발 출전한다.
샌프란시스코 크로니클의 수잔 슬루서 기자는 27일 자신의 소셜미디어 계정을 통해 샌프란시스코 구단이 클럽하우스에 붙인 28일 경기 라인업을 공개했다. 이정후는 1번 타자 중견수로 이름을 올렸다.
샌프란시스코는 28일 시애틀 매리너스전에 이정후(중견수)-타이로 에스트라다(2루수)-라몬테 웨이드 주니어(1루수)-호르헤 솔레르(지명타자)-윌머 플로레스(3루수)-패트릭 베일리(포수)-케이시 슈미트(유격수)-엘리오트 라모스(우익수)-루이스 마토스(좌익수)로 이어지는 타순을 꾸렸다. 선발 투수는 조던 힉스가 마운드에 오른다.
샌프란시스코는 지난 25일부터 시범경기 일정에 돌입했지만 이정후는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있다. 메이저리그 공식 홈페이지 MLB닷컴은 "이정후가 허리 통증 탓에 팀의 2024년 시범경기 개막전에 결장했다. 이날 이정후는 타격 훈련을 했다. 28일 시애틀 매리너스와의 경기 출전이 예상된다"고 전했다.
밥 멜빈 샌프란시스코 감독은 전날 AP통신 계열 방송사인 APTN 등 현지 취재진에 "이정후는 시범경기 개막전에 빠진다. 허리에 가벼운 통증을 느꼈기 때문"이라며 "며칠 뒤에는 출전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밥 멜빈 감독은 이정후가 조금이나마 편한 상태에서 시범경기 데뷔전을 치를 수 있게 샌프란시스코의 홈경기를 이정후의 첫 출전 경기로 점찍은 것으로 보인다.
이정후가 메이저리그 무대 첫 공식 경기에서 맞붙을 투수는 시애틀의 우완 조지 커비다. 커비는 2022년 빅리그 데뷔에 성공한 뒤 2023 시즌 31경기 13승 10패 평균자채점 3.35로 빼어난 활약을 펼쳤다. 지난해에는 올스타전까지 출전하면서 라이징 스타로 떠올랐다.
커비는 안정된 제구력을 바탕으로 직구 평균 구속 153km의 빠른 공을 구사한다. 이정후는 첫 공식경기부터 메이저리그 정상급 투수 중 한 명을 상대하게 됐다.
커비는 특히 2022 8월 25일 워싱턴 내셔널스전에서 경기 시작 후 1구부터 24구까지 모두 스트라이크 판정을 받아낸 컴퓨터 제구력으로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2023 시즌에는 190⅔이닝을 던지면서 19개의 볼넷만 내줬다. 규정이닝을 채운 투수 중 최소 볼넷이었다.
이정후는 지난해 12월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와 계약기간 6년, 총액 1억 1500만 달러(약 1628억 7500만 원)의 초대형 계약을 맺고 메이저리그 진출에 성공했다.
이정후의 샌프란시스코 내 입지는 이미 탄탄하다. 올 시즌부터 샌프란시스코 지휘봉을 잡은 밥 멜빈 감독은 이정후를 일찌감치 2024 시즌 리드오프 겸 중견수로 확정하고 중용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샌프란시스코는 2023 시즌 내셔널리그 서부지구 5개팀 중 4위에 그쳤다. 79승 83패, 승률 0.488로 5할 승률에도 못 미쳤다. 2년 연속 포스트시즌 진출에 실패하면서 2010년대 강팀의 위용을 현재는 잃은 상태다.
샌프란시스코의 가장 큰 문제점은 빈약한 공격력이다. 2023 시즌 팀 타율 0.235로 극심한 빈공에 시달렸다. 투수들이 최소 실점으로 버텨줘도 타자들이 점수를 얻지 못하는 악순환 속에 쉽게 게임을 풀어가지 못했다.
공격의 첨병 역할을 해줘야 할 마땅한 1번타자가 없는 것도 아킬레스건이었다. 샌프란시스코는 2023 시즌 1회 공격에서 첫 번째 아웃 카운트를 의미 없이 날려버리는 경우가 너무 많았다. 무려 9명의 선수가 1번타자로 선발 라인업에 이름을 올렸지만 제 몫을 해냈던 선수가 없었다.
중견수 포지션에서 마땅한 주인이 없는 것도 문제였다. 샌프란시스코는 2023 시즌 루이스 마토스가 샌프란시스코에서 가장 많은 76경기에 중견수로 나섰지만 타율 0.250(228타수 57안타) 2홈런 14타점 OPS 0.661로 기대에 못 미쳤다. 마토스의 출루율은 0.319로 리드오프에 어울리지 않았다.
밥 멜빈 감독은 지난 1월 샌프란시스코의 스프링 트레이닝에서 진행한 현지 언론과 인터뷰에서 "(정규시즌) 개막전에 이정후가 출전하지 않는다면 그것이 놀라울 것"이라며 "이정후는 엄청난 타격 기술을 가지고 있다. 30홈런을 기대하지는 않지만 훌륭한 타자라는 점은 분명하다"고 강조했다.
MLB닷컴은 메이저리그 30개 구단의 스프링 트레이닝 시작에 앞서 미국 야구 통계 전문 사이트 팬그래프닷컴의 예측 시스템 스티머가 예상한 포지션별 대체선수대비승리기여도(WAR) 상위 선수를 소개했다.
스티머는 이정후의 2024 시즌 WAR을 3.4로 예측했다. 올해 메이저리그에 데뷔하는 신인 외야수 중에는 가장 높은 평가를 받았다. 이정후의 컨택 능력을 인정한다는 뜻이다. 텍사스 레인저스의 에번 카터가 2.1, 밀워키 브루어스의 잭슨 슈리오가 1.4로 이정후의 뒤를 이었다.
MLB닷컴은 "이정후는 뛰어난 선구안과 놀라운 타격 기술을 갖췄다"며 "샌프란시스코의 새로운 중견수로 올해 예상 타율은 0.291이다. 로날드 아쿠냐 주닝어, 프레드 프리먼에 이은 내셔널리그 4위다"라고 긍정적인 전망을 내놨다.
MLB닷컴은 이와 함께 "이정후는 KBO리그 시절(2017-2023) 3974타석에서 타율 0.340을 기록했다. 삼진은 304개밖에 당하지 않았다"며 "스티머는 올해 이정후의 삼진율을 9.1%로 예상했다. 지난해 타격 1위 루이스 아라에스의 7%보다 조금 높은 수치"라고 이정후의 선구안을 치켜세웠다.
다만 이정후를 바라보는 일부의 회의적인 시선도 존재한다. 최근 미국 스포츠 전문 매체 '디애슬레틱'이 선정한 최악의 자유계약선수(FA) 계약 공동 2위에 올랐다.
'디애슬레틱'은 메이저리그 전현직 구단 임원, 감독, 코치, 스카우트 등 총 31명을 대상으로 여러 가지 설문조사를 진행해 비시즌을 평가했다.
이정후는 FA 계약 부문에서 7표를 받으면서 팀 동료인 조던 힉스와 함께 공동 2위에 올랐다. 보스턴 레드삭스의 루카스 지올리토가 8명으로 가장 많은 표를 받았고, 4위는 신시내티 레즈의 프랭키 몬타스로 4명의 표를 받았다.
이정후가 왜 최악으로 꼽혔는지 선택한 이들의 자세한 설명은 없었다. '디애슬레틱'은 이 항목의 선정 기준이 선수의 기량보다는 계약 조건이라만 밝혔다. 이정후가 아직 메이저리그 공식 데뷔 전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일방적인 평가절하라고 밖에는 볼 수 없다.
이정후는 2017년 휘문고등학교를 졸업하고 1차 지명으로 키움 히어로즈에 입단하며 프로 무대에 데뷔했다. 아마추어 시절까지 이정후 자신의 이름보다는 KBO리그 역사 최고의 전설 중 한 명인 아버지 이종범의 아들로 유명했지만 2024년 현재는 외려 이종범이 '이정후 아버지'로 불리는 일이 더 많아졌다.
이정후는 프로 데뷔 때부터 남달랐다. 2017년 루키 시즌부터 정규리그 144경기에 모두 출전했다. 타율 0.324(552타수 179안타) 2홈런 47타점 12도루 OSP 0.812로 신인왕에 올랐다. KBO 역대 신인 타자 데뷔 시즌 최다 안타 기록을 갈아치운 건 덤이었다.
이정후에게 프로 2년차 선수들이 겪는 성장통인 소포모어 징크스는 전혀 어울리지 않았다. 이정후는 2018 시즌 109경기 타율 0.355(459타수 163안타) 6홈런 57타점 11도루 OPS 0.889로 더 뛰어난 활약을 선보였다.
이정후는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에 출전, 태극마크를 달고 금메달을 목에 걸으면서 병역특례까지 받았다. 외야수 부문 골든글러브까지 수상하면서 명실상부한 KBO리그 최고의 외야수로 자리매김했다.
이정후는 2021 시즌 한미일 프로야구의 새 역사까지 썼다. 123경기 타율 0.360(464타수 167안타) 7홈런 84타점 10도루 OPS 0.959로 맹타를 휘두르고 타격왕에 올랐다.
이정후는 아버지 이종범이 현역 시절 해태 타이거즈에서 1994 시즌 타율 0.393로 타격 1위에 올랐던 가운데 세계 야구사 최초로 부자(父子) 타격왕의 위업을 이뤄냈다. 한국보다 프로야구의 역사가 길고 야구인 2세의 활동이 활발한 메이저리그와 일본프로야구에서도 볼 수 없었던 진귀한 대기록이 이정후의 손에서 이뤄졌다.
이정후는 2022 시즌 자신의 한계를 또 한 번 뛰어넘었다. 142경기 타율 0.349(553타수 193안타) 23홈런 113타점 5도루 OPS 0.996로 2년 연속 타격왕을 따냈다. 압도적인 꼴찌 후보로 꼽혔던 키움은 이정후를 앞세워 구단 역사상 세 번째 한국시리즈 진출에 성공했다.
이정후는 2022 시즌 정규리그 MVP 트로피까지 품었다. 아버지 이종범이 1994 시즌 KBO리그 MVP에 올랐던 가운데 이정후는 28년 후 똑같은 길을 걸었다.
이정후는 2022 시즌을 마친 뒤 메이저리그 진출 도전 의사를 공식적으로 밝혔다. 키움 히어로즈도 이정후가 2023 시즌 종료 후 포스팅 시스템을 통한 메이저리그 진출에 나설 수 있도록 허락했다.
키움 히어로즈는 2014년 강정호, 2015년 박병호, 2020년 김하성을 포스팅 시스템을 통해 메이저리그에 보낸 바 있다. 이정후의 꿈을 적극 지원하면서 일찌감치 빅리그로부터 주목을 받을 수 있도록 도왔다.
이정후는 지난해 3월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에서도 14타수 6안타, 타율 0.429로 메이저리그 진출을 위한 쇼케이스까지 성공적으로 마쳤다.
이정후는 2023 시즌 정규리그 초반 타격폼 수정 여파로 슬럼프에 빠지기도 했지만 빠르게 반등했다. 86경기 타율 0.318(330타수 105안타) 6홈런 45타점 OPS 0.861로 클래스를 되찾았다.
이정후는 2023 시즌 후반기 시작과 동시에 경기 중 발목 부상을 당하면서 수술대에 오르는 불운을 겪었지만 메이저리그 진출에 걸림돌이 되지 않았다.
샌프란시스코는 이정후 영입에 사활을 걸었다. 지난해 10월에는 피트 푸틸라 샌프란시스코 단장이 직접 한국을 찾아 고척스카이돔에서 뛰는 이정후를 지켜봤다. 프런트 최고 책임자가 발 벗고 나섰다는 점에서 이정후를 얼마나 원했는지 알 수 있었다.
이정후의 메이저리그 포스팅 협상을 담당했던 슈퍼 에이전트 스캇 보라스의 능력은 또 한 번 빛을 발했다. 이정후에게 한국인 역대 메이저리그 포스팅 계약 최고액을 안겨줬다.
이정후는 일본프로야구(NPB) 최고의 타자였던 요시다 마사타카가 지난해 보스턴 레드삭스와 계약을 맺을 당시 조건이었던 5년 총액 9000만 달러(약 1170억 원)를 제치고 역대 아시아 타자의 포스팅 최고액 기록까지 세웠다.
이정후의 메이저리그 정규리그 공식 경기 데뷔전은 벌써부터 팬들의 관심을 모으고 있다.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는 오는 3월 29일 미국 캘리포니아주 샌디에이고의 펫코파크에서 열리는 샌디에이고 파드리스와의 경기와 개막전을 치른다.
샌디에이고에는 이정후와 2017년부터 2020년까지 키움에서 한솥밥을 먹었던 절친한 선배 김하성이 주전 유격수로 뛰고 있다. 김하성은 지난해 내셔널리그 유틸리티 플레이어 부문 골드글러브를 수상하는 등 '아메리칸 드림'을 이뤘다.
샌디에이고에는 이정후의 '가족'도 몸 담고 있다. 지난해 LG 트윈스의 29년 만의 우승에 힘을 보탠 투수 고우석도 올해 메이저리그 진출 꿈을 이뤘다.
고우석은 지난해 이정후의 여동생 이가현 씨와 결혼식을 올려 화제를 모았다. 1998년생 동갑내기 절친인 이정후, 고우석은 이제 처남-매제로 관계가 발전했다.
샌디에이고는 올 시즌 일본프로야구 최고 마무리 투수였던 마쓰이 유키와 고우석으로 불펜 필승조를 꾸렸다. 이정후는 개막전부터 고우석과 대결할 가능성이 열려 있어 한국팬들에게는 눈을 뗄 수 없는 장면이 연출될 것으로 보인다.
사진=연합뉴스
김지수 기자 jisoo@xports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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