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심 받던 지아-메가, '리그 최고 쌍포'로 우뚝
[양형석 기자]
지난 24일 대전 충무체육관에서 열렸던 흥국생명 핑크스파이더스와 정관장 레드스파크스의 정규리그 마지막 맞대결은 5라운드 전승을 기록한 흥국생명의 1위 탈환 여부에 배구팬들의 관심이 집중됐다. 하지만 이날 경기에서 승리한 팀은 흥국생명이 아닌 홈팀 정관장이었다. 정관장은 흥국생명을 세트스코어 3-1로 제압하며 4위 GS칼텍스 KIXX와의 승점 차이를 8점으로 벌렸다(물론 다음날 GS칼텍스가 곧바로 승점 차이를 다시 5점으로 줄였다).
정관장은 지난 1월 18일 IBK기업은행 알토스와의 4라운드 마지막 경기부터 최근 8경기에서 7승 1패를 기록하며 가파른 상승세를 타고 있다. 최근 4연승은 이번 시즌 정관장의 최다연승이기도 하다. 무엇보다 지난 시즌이 끝난 후 어깨수술을 받은 '쏘캡' 이소영이 3라운드까지 큰 힘이 되지 못하다가 4라운드부터 풀타임 주전으로 활약하면서 공수에서 안정감이 생긴 것이 정관장이 상승세를 타게 된 가장 큰 비결로 꼽힌다.
외국인 선수를 중도교체한 흥국생명을 제외한 모든 구단의 외국인 선수가 팀 내 최다득점을 기록하고 있는 가운데 유독 정관장은 외국인 선수와 아시아쿼터 선수가 '쌍포'를 형성하며 고르게 활약하고 있다. 시즌 개막 전까지만 해도 팬들 사이에서 활약 여부에 의문부호가 붙었지만 정규리그가 얼마 남지 않은 현재 리그 최고의 쌍포로 군림하고 있는 지오바나 밀라나(등록명 지아)와 메가왓티 퍼티위(등록명 메가)가 그 주인공이다.
▲ 지아는 정관장에서 팀 공격의 31.51%와 리시브의 40.95%를 책임지고 있다. |
ⓒ 한국배구연맹 |
V리그의 외국인 선수는 아포짓 스파이커에 집중되는 경우가 많다. 아무래도 V리그에서는 외국인 선수가 최소 30%, 최대 40% 이상의 공격점유율을 책임져야 하기 때문에 서브리시브에 부담을 주기 보다는 공격에 전념할 수 있는 아포짓 스파이커를 지명하는 경우가 대다수다. 실제로 V리그에서 활약했던 뛰어난 아웃사이드히터는 케니 모레노와 메디슨 리쉘 등 손에 꼽을 수 있을 만큼 적었다.
지난 시즌에도 기업은행이 7개 구단 중 유일하게 아웃사이드히터 포지션의 외국인 선수 달리 산타나와 함께 했다. 산타나는 지난 시즌 49.02%의 리시브 효율과 함께 606득점을 기록하며 공수에서 상당히 좋은 활약을 해줬다. 하지만 산타나는 지난 시즌 38.35%의 공격성공률을 기록하며 외국인 선수 본연의 임무인 폭발적인 공격력을 보여주지 못했고 기업은행은 6위에 그치며 봄 배구 진출에 실패했다.
따라서 지난 시즌 득점 1위(1015점) 엘리자벳 이네 바르가(KSP 체믹 폴리스)를 보유했던 정관장이 외국인 선수 드래프트에서 아웃사이드히터 지아를 지명했을 때 팬들 사이에서 우려의 목소리가 컸던 게 사실이다. V리그에서 아웃사이드히터가 성공했던 사례가 적은 데다가 정관장에는 수술을 받은 이소영을 제외하더라도 박혜민과 이선우, 고의정(한국도로공사 하이패스) 등 토종 아웃사이드히터 자원이 충분해 보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시즌이 개막한 이후 정관장 구단과 고희진 감독의 선택이 틀리지 않았음이 증명됐다. 지아는 이번 시즌 정관장이 치른 31경기 중 30경기에 출전한 지아는 42.84%의 높은 성공률로 601득점을 올려주고 있다. 여기에 팀 내에서 가장 많은 980개의 서브리시브를 받아내며 35.31%의 리시브 효율을 기록하고 있다. 지아는 세트당 5.84개의 수비(리시브+디그, 8위)로 리베로를 제외한 선수들 중 가장 높은 수비기여도를 기록하고 있다.
더욱 고무적인 사실은 시즌이 후반으로 접어 들수록 지아의 위력이 점점 더 살아나고 있다는 점이다. 실제로 지난 4라운드 5경기에서 82득점에 그쳤던 지아는 5라운드 6경기에서 46.72%의 성공률로 135득점을 기록했다. 지난 24일 흥국생명과의 경기에서도 팀 내 가장 많은 28득점을 퍼부으며 정관장의 3-1 승리를 이끌었던 지아는 남은 5경기에서도 정관장의 '3위 굳히기'를 위한 선봉에 설 것이다.
▲ 메가의 활약이 커지면서 현재 인도네시아에도 V리그가 중계되고 있다. |
ⓒ 한국배구연맹 |
한국축구에게 많은 아픔을 남겼던 2023 AFC 아시안컵에서는 중동 국가들의 강세 속에서 동남아시아 팀들의 선전이 돋보였다. 김판곤 감독이 이끄는 말레이시아는 정예멤버가 모두 출전한 한국과 3-3으로 비기는 이변을 연출했고 D조에 속했던 신태용 감독의 인도네시아 역시 역대 처음으로 아시안컵 16강에 진출하는 감격적인 순간을 누렸다. 하지만 여자배구에서는 한국이 한 번도 인도네시아를 적수로 생각한 적이 없었다.
따라서 2023년 4월 처음으로 실시된 아시아쿼터 드래프트에서 전체 3순위 지명권을 가지고 있던 정관장이 인도네시아 출신의 메가를 지명했을 때 의아하게 생각하는 배구팬이 많았다. 게다가 메가의 포지션은 외국인 선수의 고정 포지션으로 여겨지던 아포짓 스파이커. 메가가 아무리 동남아시아 무대에서 알아주는 아포짓 스파이커라 해도 아포짓 스파이커의 점유율이 높은 V리그에서 버틸 수 있을지 회의적인 시선이 많을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뚜껑을 열어본 결과 메가의 기량은 배구팬들의 예상을 훌쩍 뛰어 넘었다. 그저 히잡을 쓰고 경기에 나서는 게 독특해 보였던 메가가 아포짓 스파이커 자리에서 지젤 실바(GS칼텍스)와 브리트니 아베크롬비(기업은행), 레티치아 모마 바소코(현대건설) 같은 쟁쟁한 외국인 선수들과 대등하게 경쟁했기 때문이다. 팀 내 토종 선수와의 경쟁에서도 밀릴 거라 예측했던 일부 배구팬들을 머쓱하게 만드는 결과였다.
더욱 대단한 사실은 메가의 활약이 정규리그 5경기를 남겨두고 있는 시즌 후반까지 계속 이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1라운드에서 득점 4위(138점)를 기록했던 메가는 6라운드를 치르고 있는 현재까지도 31경기에서 660득점을 기록하며 득점 7위를 달리고 있다. 국내 선수 중 메가보다 많은 득점을 올리고 있는 선수는 김연경(흥국생명,672점) 한 명 뿐이고 아시아쿼터 선수들로 한정하면 333득점의 레이나 토코쿠(흥국생명)를 2배 가까이 앞서고 있다.
메가는 인도네시아 배구를 한국에 알리고 V리그를 인도네시아에 알리는 '홍보대사' 역할도 톡톡히 하고 있다. 실제로 정관장의 공식 유튜브 채널은 최근 V리그 구단 최초로 구독자 10만 명을 돌파했는데 이는 메가로 인한 인도네시 팬들 유입 효과가 상당히 컸다. 메가의 대활약으로 인해 이제 다음 시즌 각 구단들은 아시아쿼터 드래프트에서 동남아시아 공격수 중 메가 같은 '진주'를 찾기 위해 눈에 불을 켜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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