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학교 품은 초등학교…日입학생 8명서 전교생 1000명 됐다 [사라지는 100년 학교]

이후연, 서지원 2024. 2. 27. 0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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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도쿄 시나가와구에 있는 히노학교 입학식. 9학년 학생들이 신입생의 손을 잡고 행사장에 들어온다. 초·중학교를 통합해 9년제로 운영하면서 생긴 전통이다. 사진 시나가와구 홈페이지

일본 도쿄 시나가와구 빌딩 사이에 위치한 히노학교(日野学園)에서는 입학식 때마다 특별한 장면이 연출된다. 최고참인 9학년 학생들이 신입생의 손을 이끌고 행사가 열리는 강당으로 들어오는 일이다. 2006년부터 초·중학교를 통합해 9년제로 운영하면서 생긴 전통이다. 시나가와구 소식지는 “조금 큰 교복을 입고 긴장한 신입생과 이들을 배려하는 9학년의 모습이 인상적”이라고 묘사했다. 졸업식 때는 9학년 학생들이 일렬로 서 있는 1~2학년들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작별 인사를 한다.

지난해 3월 히노학교 졸업식에서 9학년 학생들이 1~2학년들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작별 인사를 하는 모습. 사진 시나가와구 홈페이지

히노학교의 전신은 1903년 개교한 제2히노소학교(초등학교)다. 100년이 넘는 역사를 가진 도쿄의 초등학교지만, 저출생과 도심 공동화를 피해갈 수 없었다. 2001년엔 입학생이 8명까지 떨어지며 ‘폐교 위기’에 놓였다. 적정 규모의 학생 수를 유지하기 위해서라도 다른 학교와 통합은 불가피했다.

히노소학교는 인근 초등학교 대신 1947년에 개교한 히노중학교와 합치는 실험을 했다. 초·중 9년을 통합해 운영하되, 초등 6년, 중학 3년을 나누지 않았다. 예를 들어 ‘영어’의 경우 1~4학년은 ‘즐기는 영어’를, 5~9학년은 ‘사용할 수 있는 영어’를 목표로 가르친다. 4+3+2학년으로 나뉘는 과정도 있다. 그 결과 히노학교의 신입생은 2022년에 78명으로 늘었고, 재학생은 958명이 됐다. 생존을 고민하던 100년 학교가 ‘1000명 학교’로 살아남았다.

박경민 기자

일본 초중 의무학교, 7년 만에 22개교→207개교 증가


박경민 기자
일본의 100년 학교들은 한국보다 먼저 저출생 쓰나미에 휩쓸리면서 줄줄이 폐교 위기에 직면했다. 일본 경제가 호황이던 1960년 1259만 680명이던 초등학생 수는 버블경제가 붕괴되며 2000년 736만 6079명으로 40년 만에 60% 수준으로 줄었다.

학생 수 감소로 소규모 학교가 빠르게 늘자 일본은 학교 통폐합과 관련한 다양한 시나리오를 준비했다. 그중 하나가 초·중 교육 통합으로 공교육의 질을 높이는 ‘초중 의무교육 학교 설치’ 프로젝트다. 단순히 초등학교와 중학교가 건물을 같이 쓰는 게 아니라, 9년간 일관되게 교육을 받을 수 있는 새로운 학교 유형을 만들었다.

박경민 기자

그 결과 2016년 22개였던 초중 의무교육 학교는 2023년 207개까지 증가했다. 같은 기간 재학생 수도 1만 2702명에서 7만 6045명으로 5배 이상 늘었다. 학교당 학생 수 역시 지난해 기준으로 367명에 이른다.

초중 통합 학교 모델이 일본 내에서 안착한 건 학생·학부모 사이에서 좋은 평가를 받았기 때문이다. 히노학교의 경우 활발한 학년 간 교류를 통해 통합의 장점을 극대화했다. 6학년생이 1학년생에게 책을 읽어주고 교가를 알려주거나, 9학년생이 1학년생과 점심 때 놀아주는 ‘형제 학년’ 프로그램이 대표적이다. 9학년생이 5학년생 공부를 가르쳐주는 ‘썸머스쿨’도 인기다. 히노학교 학부모들은 “학생들이 서로 돕다보니 학교생활에 적응이 빠르다”, “5학년부터 중학생과 같은 학습 형태가 되기 때문에 초·중학교 사이 단절이 적다”고 했다.


한국 통합학교 “한 지붕 두 가족…임시방편 뭉쳐놓은 것 불과”


박경민 기자
한국도 초·중 이음학교 등 통합 학교를 운영하고 있지만 ‘한 지붕 두 가족’에 그칠 뿐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초·중 통합학교 수는 지난해 기준 136개교로 2020년(48개교)보다 늘었지만, 학생 수는 1만 8964명에 불과하다. 학교당 학생 수(139명)가 일본의 3분의 1 수준이다. 일부 학교는 올해 신입생이 0명인 것으로 알려졌다.

통합을 가로막는 가장 큰 벽은 교육 제도다. 현행법상 초등교원이 중학생을 가르칠 수 없고, 그 반대도 안 되기 때문에 실질적 의미의 ‘통합교육’이 거의 이뤄지지 못한다. 충북의 한 초등학교 교장은 “이대로 가는 건 곧 없어질 학교들을 고작 몇 년 더 유지될 수 있도록 임시방편으로 뭉쳐 놓은 것에 불과하다”며 “학교 통합은 예고된 미래인 만큼, 교원 자격에 대한 규제도 좀 더 열고 통합 교육이 실질적으로 이뤄질 수 있도록 빨리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했다.

정제영 이화여대 교육학과 교수는 “미래 100년을 이어가는 학교가 나오려면 우리나라도 지금까지 없었던 새로운 교육과정을 갖춘 학교들이 만들어져야 한다”며 “학생 수 감소가 불가피한 상황에서, 교육 품질의 고도화 방안을 하드웨어적으로도 고민해야 할 때”라고 했다.


학교 개방도 속도…“27년까지 200곳에 복합시설 만들 것”


지난해 6월 히노학원에서 열린 5~9학년 운동회. 이 학교의 PTA(학부모·교사 연합회) SNS 계정에는 "코로나19로 3년간 봉인되어 있던 큰 성원이 돌아왔다"라며 "많은 학부모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학생들은 진지하게, 전력으로 그리고 웃는 얼굴로 각자의 종목에 참여하고 서로를 응원했다"라는 설명이 올라와 있다. 사진 히노학원PTA
일본은 통합뿐 아니라 학교 개방을 통해 100년 학교의 명망을 유지하면서 지역사회와 공존을 모색하고 있다. 1970년부터 초등학교 시설을 지역 주민에게 개방해온 게 대표적이다. 히노학교도 2006년부터 학교 운동장과 체육관을 ‘시나가와 구립 종합 체육관’으로 만들어 지역 주민에게 개방하고 있다.

한국 정부도 지난해부터 학교 내 활용하지 않는 건물을 카페, 체육관, 문화·보건센터 등 학교복합시설로 꾸며 지역 주민에게 개방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2027년까지 5년간 매해 40곳씩 총 200곳의 학교를 선정할 예정이다. 교육부 관계자는 “앞으로 학생 수가 줄면 폐교 또는 학교 내 유휴 공간이 늘어날 수밖에 없다”며 “학교를 중심으로 편의시설을 만들면 지역 공동체가 계속해서 유지될 수 있고, 지역별 복지·문화·교육 격차를 줄이는 효과를 거둘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이후연·서지원 기자 lee.hooye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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