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nd 건강] 숨어있는 산후 우울증 환자… 5년간 10대 93% 급증

민태원 2024. 2. 27. 04: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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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후 우울증
출산 후 4주 이내 우울증 경험
3~6개월까지도 발생할 수도
생물학·사회 환경적 요인 다양
정신건강 관리·지원 강화 필요

게티이미지뱅크

산후 우울증을 겪던 산모가 자해·자살하거나 아기의 생명까지 위태롭게 한 사건들은 매번 터질 때마다 사회에 큰 충격을 던진다. 산모 수가 감소 추세임에도, 산후 우울증 환자는 많이 증가하는 상황에서 우려가 더해질 수밖에 없다. 하지만 여전히 산후 우울증은 예민하고 유난스러운 개인의 문제로 여겨지거나 시간이 지나면 저절로 해결되는 일 정도로 취급되는 경우가 많다. 저출산 문제 해결을 위해선 정부가 산모의 정신건강 관리에도 더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출산 후 4주 이내 경험

미국 정신질환 진단기준(DSM-5)에 따르면 산후 우울증은 출산 후 4주 이내 발생한 우울증이 해당한다. 대부분의 시간 동안 지속하는 우울감, 즐거움을 느끼기 어려움, 식욕·수면의 변화, 초조, 피로감, 지나치고 부적절한 죄책감, 죽음·자살 생각 몰두 등의 증상이 2주 이상 이어질 때 진단된다. 차의과학대 일산차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정슬아 교수는 26일 “임상현장에선 출산 후 3~6개월까지도 산후 우울증이 발생할 수 있다고 본다”고 했다.

출산 후 80~90%의 산모가 경험하는 ‘산후 우울감’과는 분별해야 한다. 산후에는 대개 눈물이 많아지고 수면에 어려움을 겪고 예민해진다. 이런 산후 우울감은 시간이 지나면 수일~수주 후 저절로 나아진다. 또 상황에 따라 좋은 감정을 경험하고 죽음·자살에 대한 몰두는 거의 경험하지 않는다. 정 교수는 “출산 후 24시간 이내에 호르몬(에스트로겐, 프로게스테론)이 뚝 떨어지는데, 이런 호르몬의 급격한 변화에 따라 기분의 변화도 발생한다”면서 “임신 중일 때와 출산 후 해당 호르몬의 레벨 차이가 클수록 산후 우울증 위험이 크다는 연구가 있다”고 설명했다. 일반적으로 출산 후 8~12주에 흔히 발생하고 초기 5주의 위험성이 3배 높다는 보고가 있다.

또 엄마와 아이 사이 애착을 형성하는 호르몬(옥시토신)이 출산 전 경험한 스트레스로 인해 적게 분비되는 경우 산후 우울증으로 이어진다는 가설도 있다. 수면 주기 교란으로 야간에 생성되는 호르몬(멜라토닌)이 떨어지면 우울증에 취약해질 수도 있다.

생물학적 요인 외에 사회 환경적 요인도 굉장히 중요하다. 지지 체계 부족, 경제적 어려움, 원치 않는 임신, 지나치게 젊은 나이 산모 등이 위험 요인이다.

서울대병원과 분당차병원 산부인과 연구팀이 대한의학회지(JKMS) 최신호에서 임산부 2500명 대상으로 임신 12주~출산 4주까지 추적 관찰한 연구 결과를 보면 산후 우울증 그룹에서 출산 후 보육과 주거의 어려움을 호소한 비율이 높았다. 또 출산 후 다양한 스트레스와 아이와의 관계에서 오는 어려움, 두려움 등이 산후 우울증의 위험 요인으로 꼽혔다. 반면 출산 후 느끼는 결혼 생활의 만족도가 높을 때 산후 우울증 위험이 낮았다.

산후 우울증 유병률은 세계적으로 10~20% 정도로 알려져 있다. 앞서 서울대·분당차병원 연구팀이 특정 기간 추계한 국내 산후 우울증 발생률은 16.3%다. 문제는 한국 산모의 경우 진단과 치료를 받는 비율이 2~3%에 그치고 있다는 점이다. 그만큼 숨어있는 산후 우울증 환자가 많다는 얘기다. 정신건강의학과의 진단·치료에 대한 사회적 낙인이 여전하기 때문이다.

지난해 국정감사 자료를 보면 2022년 산모 수는 24만4793명으로 2018년(32만2252명)보다 24% 줄었다. 하지만 산후 우울증 환자는 2018년 6649명에서 2022년 7819명으로 17.6% 늘었다. 산모 1000명당 출산 후 1년 이내 진단받은 산후 우울증 환자는 같은 기간 20.6명에서 31.9명으로 54.8% 증가했다. 연령별로는 5년간 19세 이하 환자가 92.6% 급증(2018년 55.7명→2022명 107.3명)해 가장 높았다. 이어 20대 65.1%(25.3명→41.7명), 30대 59.1%(18.9명→30.0명) 증가 순이었다.

19세 이하의 산후 우울증 비율이 높은 것은 원치 않는 임신이거나 준비되지 않은 출산, 그로 인해 주변 지지 체계가 부족한 영향이 크다는 분석이다. 따라서 산후 우울증 극복을 위해선 임신과 출산 전 과정에 대한 사회적 지원이 강화돼야 하고, 특히 어린 산모에 대한 치료와 관리에 집중할 필요가 있다.

산후 우울증을 방치할 경우 자·타해 위험이 커지는 것은 물론 수개월에서 수년간 우울증이 지속하면서 가족 관계를 악화시키고 자녀에게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친다. 정 교수는 “많은 여성이 도움을 구하지 못하는 데는 산후 우울증이 일부는 일찍 회복되기 때문이고, 일부는 아프다는 것을 깨닫지 못하며, 일부는 증상을 얘기했을 때 무시당하고 낙인찍히고 아기를 잃을까 봐 두려워 침묵을 지키기 때문”이라면서 이를 예방하기 위해선 효과적인 진단과 치료가 중요하다고 했다. 그는 “우선 산부인과 등 1차 기관에서 산후 우울증에 관심을 두고 정신건강의학과 치료에 유입될 수 있도록 해야 하고 가족들도 산모 상태를 살피며 도움 요청 시 적극적으로 호응해 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먹는 신약 국내 도입 언제?

최근 산후 우울증 치료에 대한 기대감은 커지고 있다. 지난해 8월 미국 식품의약처(FDA)가 최초로 승인한 경구용 산후 우울증 치료약(주라놀론)으로 인해 환자 선택의 폭이 넓어졌기 때문이다. 기존에 주로 처방되는 일반 우울증 치료제(주로 모로아민 신경전달물질에 작용)는 효과가 나타나는데 3~4주 이상의 시간이 걸린다. 주라놀론은 2019년 FDA 허가된 주사제 ‘줄레쏘(브렉사놀론)’를 개선한 약이다. 둘 다 일반 항우울제와 달리 ‘가바(GABA)A 수용체’에 작용해 기능을 활성화해 준다. 가바는 경직 불안 불면 경련 등과 관련 있다고 알려진 물질이다. 줄레쏘는 60시간 이상 계속 정맥 주사해야 하는 불편함이 따르지만, 주라놀론은 하루 1회, 2주간 경구 복용하면 빠를 경우 3일 만에도 증상이 개선되고 42일까지 효과가 지속하는 것으로 임상시험에서 확인됐다.

정 교수는 “다른 약에 비교해 빠르게 효과를 발휘하는 데 장점이 있을 수 있으나 이런 빠른 효과는 중독·의존과 관련한 부작용이나 오남용 문제를 늘 염두에 둬야 한다”면서 “산후 우울증 치료에 새로운 옵션으로 기대와 함께 우려를 동시에 갖고 있다”고 했다. 다만 정 교수는 “새로운 항우울제의 등장은 반가운 일이지만 국내 도입 시기에 대해선 아는 바가 없다”고 덧붙였다.

민태원 의학전문기자 twmi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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