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아이] 나도 혹시 ‘소프트 꼰대’?
예의와 친절함으로 무장한 일본인이지만, 가끔 새롭게 떠오르는 신조어를 보면 그 무자비함에 놀랄 때가 있다. 2000년대 중반 유행한 ‘마케이누(負け犬· ‘싸움에 진 개’라는 뜻으로 결혼하지 않고 자식도 없는 30대 여성을 일컫는 말)가 그랬고 요즘에는 ‘노해(老害·일본어로 ‘로가이’)’다. 말 그대로 ‘늙음의 해악’이란 뜻. 인터넷에선 ‘자신의 늙음을 인식하지 못하고 주변 젊은이들에게 피해를 주는 행동, 또는 그런 행동을 하는 사람’으로 정의한다. 특징으로 ‘위에서 내려다보는 시선으로 자신의 의견만 밀어붙인다’ 등이 있으니 한국어 ‘꼰대’와도 비슷한데, 꼰대라는 말에 담긴 약간의 해학(?)조차 찾아보기 힘든 가차없음이 느껴진다.
최근엔 ‘소프트 노해’, 즉 ‘소프트 꼰대’라는 단어가 퍼지고 있다. 일본의 유명 방송작가인 스즈키 오사무가 최근 출간해 베스트셀러가 된 책 『일을 그만두는 방법(仕事のやめ方)』에 처음 등장한 말이다. 저자는 책에서 자신이 30년 넘게 해온 방송 작가 일을 완전히 그만두겠다고 선언하면서 그 이유 중 하나로 스스로 ‘소프트 꼰대’가 됐음을 확인했기 때문이라고 썼다. 그가 말하는 소프트 꼰대는 주로 40대 이상에서 출몰하며, 회사의 부장 등 중간관리자 역할을 하는 경우가 많다. 현장을 떠났지만 여전히 본인의 감각이 뛰어나다고 믿고 있고, 스스로를 합리적인 상사로 인식한다.
‘소프트 꼰대력’이 주로 발동되는 것은 윗사람에게서 지시받은 업무를 젊은 직원들에게 전달할 때다. 후배들이 “말이 안 된다”며 항의해도 “하기 싫은 마음은 알지만 어쩔 수 없다”는 식으로 후배들을 설득한다. 결국 위의 뜻을 따르기로 결정했으면서도 직원들에겐 “나는 너희들 편”이라고 어필하거나 “나 때는 더 심했다”는 식으로 호소한다. 표현은 ‘소프트’하지만 결국 젊은 직원들의 사기를 꺾어버리는 ‘노해’로 귀결된다.
저자는 자신이 회의 시간에 무심코 내놓은 의견 때문에 오랜 기간 고민한 아이템을 접어야 했다는 후배의 ‘폭로’를 듣고 이를 깨달았다고 한다. 소셜미디어(SNS)에선 ‘뜨끔하다’는 얘기부터 ‘어리다고 더 나은 생각을 하는 것은 아니다’까지 다양한 논쟁이 펼쳐지는 중이다.
여기까지 읽고 ‘혹시 나도?’ 의심이 든다면 저자의 조언을 마음에 새길 법하다. 소프트 꼰대가 되지 않기는 무척 어렵다. 단, 자신을 늘 부감(俯瞰·높은 곳에서 내려다봄)으로 관찰하며 객관화하는 습관을 갖자. 그래도 어쩔 수 없다면 스스로 서 있는 자리가 달라졌음을 인정하자. ‘미움을 받으려면 제대로 미움받자’는 것이다.
이영희 도쿄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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