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싸라기 땅' 강남도 푼다…'여의도 117배' 군사보호구역 해제
서울 강남·서초·송파구 일대 46㎢ 등 여의도 면적의 117배에 달하는 339㎢ 땅이 군사시설 보호구역(보호구역)에서 해제된다. 2007년 관련법(군사기지 및 군사시설보호법) 제정 이래 최대 규모의 해제 조치다. 정부가 '4·10 총선'을 앞두고 대규모 보호구역 해제에 나서면서 이번 선거에 미칠 영향에 정치권도 주목하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은 26일 충남 서산비행장에서 열린 ‘미래산업으로 민생 활력 넘치는 충남’을 주제로 15번째 열린 국민과 함께하는 민생토론회에서 “군과 지역주민이 상생하는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 국가적으로 매우 중요하다”며 이 같은 정부의 결정을 발표했다.
서산비행장 일대에선 141㎢의 토지가 이번 조치로 보호구역에서 풀린다. 윤 대통령은 “군사시설 보호구역 해제로 충남이 환황해권 경제 중심으로 비상하는 데 필요한 입지 공간 여건의 거의 다 갖춰졌다”며 “앞으로 미래 모빌리티 산업의 거점이자, 대한민국 국방산업의 중심으로 발전할 수 있도록 지원하겠다”고 말했다.
이날 국방부에 따르면 이번에 해제되는 보호구역은 ▶군 비행장 주변(287㎢) ▶작전에 미치는 영향이 없는 접경지역(38㎢) ▶민원 지역 등(14㎢)으로 결정됐다. 2008년 이후 거의 매해 실시된 해제 조치 중 가장 큰 규모다. 올해를 제외하고 가장 큰 규모의 해제 조치는 문재인 정부 2년차인 2018년(338.4㎢) 때 이뤄졌다.
이번에 해제 대상으로 선정된 군 비행장 주변 보호구역엔 서산비행장 이외에 대통령 전용기가 뜨고 내리는 경기 성남비행장(서울공항)등 7개 군 비행장 주변 땅이 포함됐다. 특히 성남비행장 인근 지역은 서울 강남구(개포동·대치동·세곡동·수서동·율현동·일원동·자곡동), 서초구(내곡동·신원동·염곡동·원지동), 송파구(가락동·거여동·마천동·문정동·방이동·삼전동·석촌동·송파동·오금동·잠실동·장지동) 등 이른바 '강남 3구'와 분당(경기도 성남) 일대에 걸쳐 있다.
이번 조치와 관련, 국방부는 "(기존) 보호구역을 기지 방호에 필요한 최소 범위로 축소했다"고 설명했다. 보호구역이 해제되면 '비행안전구역별 제한 고도'를 초과하지 않는 범위에서 군과 별도 협의 없이 건축물의 신축과 증축, 용도변경을 자유롭게 할 수 있다.
'금싸라기 땅'으로 평가받는 지역이어서 부동산 업계에선 개발 효과가 클 것이란 기대가 나온다. 한국부동산경영학회 회장인 서진형 경인여대 교수는 "주택 수요가 높은 곳이어서 비행 보호구역 규제를 해제하게 되면 수도권 지역의 공급 확대에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며 "특히 고도 제한이 풀리면 재개발, 재건축시 용적률이 높아지는 만큼 장기적으로 주변 부동산 가격 상승의 효과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창무 한양대 도시공학과 교수는 “이번에 보호구역에서 해제되는 강남 3구 지역은 입지가 매력적인 곳”이라며 “시급한 과제로 여겨지는 서울 인접 지역에서 주택 공급이 군사적 목적과 합리적 절충안을 찾는 건 바람직한 방향”이라고 평가했다.
일각에선 당장 개발 효과를 논하기엔 이르다는 의견도 나온다. 부동산 전문가인 함영진 전 직방 빅데이터 랩장은 “성남비행장 일대는 강남 중심부 접근성이 좋은 곳이라 토지가격 인상 등 자산가치 상승 효과는 있을 것”이라면서도 “해당 조치가 바로 개발로 이어질지는 토지가 갖고 있는 고도제한 등 다른 중복규제 사항도 살펴봐야 명확히 알 수 있다”고 말했다.
접경지역의 보호구역 해제 대상은 강원도 철원 등 4개 지역이다. 국방부는 "군사기지·시설 유무, 취락지역·산업단지 발달 여부 등을 고려해 군 작전에 미치는 영향이 없는 범위 내에서 선정했다"고 밝혔다. 해당 지역에선 앞으로 높이 제한 없이 건축물의 신·증축, 토지 개간과 지형 변경을 할 수 있다.
이번 해제 대상에 포함된 민원 지역은 고덕국제신도시(경기도 평택) 내 민세초등학교 등 2개 지역이다. 민세초등학교의 경우 학교 부지 일부가 인근 보호구역에 저촉돼 개교에 어려움을 겪었는데, 이번 조치로 오는 9월 개교가 가능해졌다. 세종시의 연기비행장도 향후 이전 계획을 고려해 미리 보호구역을 해제하기로 했다. 연기비행장은 2025년 조치원비행장으로 통합 이전될 계획이다.
국방부는 "보호구역을 해제하기 어려운 경기도 파주 등 4개 지역 103㎢의 땅에 대해선 주민이 보호구역 해제와 유사한 효과를 체감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관련 법규를 적용해 "일정 높이 이하 건축물의 신축 등에 대해선 군 당국과 협의를 생략한다"는 구상이다.
역대 최대 규모인 이번 보호구역 해제를 놓고 일각에선 총선을 50일도 채 남겨놓지 않은 가운데 ‘선거 민심’을 고려한 조치라는 지적도 나온다. 정부는 지난해 12월에도 보호구역 53.7㎢를 해제했다. 앞서 문재인 정부도 총선을 3개월 앞둔 2020년 1월 대규모 보호구역 해제를 발표해 '총선용'이란 지적을 받았다.
'총선용'이란 지적과 관련, 국방부는 "현 정부의 국정과제 중 하나인 ‘군사시설 보호구역 최소화를 통한 국민권익 증진’을 구현하기 위한 조치"라는 입장이다. 국방부 관계자는 “지난해 12월까지 진행된 해제 조치에도 국토 면적의 8.2%가 여전히 보호구역으로 묶여있어 주민과 지자체의 해제 요구가 꾸준히 제기돼왔다”며 “해제하더라도 작전에 문제가 없는 지역, 주민 불편에 따른 민원이 있는 지역 등을 위주로 보호구역 해제를 적극적으로 검토했다”고 말했다.
이근평·이유정 기자 lee.keunpyu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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