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논단] 존엄사 도입, 충분한 사회적 합의 있어야

입력 2024. 2. 26. 04:08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최창영 법무법인 해광 대표변호사

지난달 존엄사 헌법소원 사건
정식 심판 절차에 회부
한국서도 본격적 논의 불붙어

사회·경제적 약자에 강요되고
사회 부담 줄이기 악용 우려도

정치권 다수결이나 전문가들
의견만으로 결정돼선 안 돼

사람은 스스로 죽음을 결정할 권리가 있을까? 최근 전 네덜란드 총리가 자택에서 배우자와 동반 안락사로 생을 마감했다. 그는 2019년 뇌졸중을 앓았고 부부 모두 건강이 악화하면서 안락사를 선택했다고 한다.

안락사는 의학적인 조치를 통해 고통받는 환자의 생명을 종결시키는 행위를 말한다. 주로 불치병 등 심각한 질병으로 고통받는 환자들에게 적용된다. 행위의 주체와 사용되는 수단에 따라 의료진이 직접 약물을 주입하는 등 인위적·적극적인 방법으로 죽음을 앞당기는 적극적 안락사와 환자나 가족들의 요청으로 생명 유지에 필수적인 치료나 기계적 지원을 중단함으로써 환자가 죽음에 이르게 되는 소극적 안락사로 나뉜다. 의료진이 사망에 필요한 약물을 마련해 주고 환자가 직접 자신에게 약물을 투입해 사망에 이르게 하는 것을 조력 자살이라고 하고, 소극적 안락사와 함께 존엄사라고 부르기도 한다.

네덜란드는 세계에서 처음으로 안락사와 조력 자살을 합법화했다. 참을 수 없는 고통을 겪고 있고 개선될 가능성이 없는 경우 환자의 명시적 의사 등 정해진 지침과 의료진의 판단에 따라 행해진다. 2022년 기준 전체 사망자의 5.1%인 8700여 명이 안락사로 생을 마감했다고 한다. 그 외에도 벨기에, 캐나다, 룩셈부르크 등 여러 나라에서 다양한 형태로 안락사 또는 조력 자살이 허용되고 있다. 그러나 그 허용 여부와 무관하게 안락사를 둘러싼 법적·윤리적 논란은 계속 진행 중이다.

의학의 발달, 소득 수준과 사회복지의 향상으로 한국인의 평균 수명은 1970년 62.3년에서 올해 83.64년으로 크게 증가했다. 사람들은 단순히 오래 살기보다는 질적으로 높은 삶을 꿈꾸게 되었고, 삶을 마무리하는 시점에서도 고통보다는 안락한 마지막에 더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그런데 우리 형법은 자살을 교사하거나 방조하는 것을 모두 처벌하고 있어 안락사나 조력 자살이 허용될 여지는 없다. 다만 2018년 연명의료결정법의 시행으로 말기 환자나 임종 과정에 있는 환자에 대해 환자 본인이나 가족 등의 의사에 따라 엄격한 조건 하에 연명 의료행위 중단이 허용될 뿐이다. 존엄사에 대한 사회적 논의도 이뤄지지 않다 보니 다양한 변칙적 수단이 활용된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의 부검 결과 외국의 안락사에 사용되는 약물이 검출되는 사례가 발견되고 있고 실제 해외에서 안락사 약품을 들여오려다 형사처벌을 받기도 했다. 안락사를 돕는 스위스 단체 디그니타스에 가입한 한국인은 2019년 58명에서 2022년 말 117명으로 배 이상 증가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2022년 수용하기 어려운 고통을 겪는 말기 환자들의 경우 본인이 희망하면 담당 의사의 조력을 받아 자신이 스스로 삶을 종결할 수 있도록 조력 존엄사를 도입하는 내용의 연명의료결정법 개정안이 국회에 발의됐다. 헌법재판소도 지난 1월 조력 사망이 제도화되지 않아 행복추구권과 자기결정권이 침해당하고 있다는 이유로 의사 조력 존엄사를 허용해 달라며 제기한 헌법소원 사건을 정식 심판 절차에 회부했다. 바야흐로 한국에서도 존엄사를 둘러싼 본격적인 논의가 시작되는 모습이다.

안락사, 존엄사에 대한 논의는 복잡하면서 민감하다. 극심한 고통을 겪고 있는 환자들에게는 합법적 존엄사가 환자와 가족에게 신체적·정신적·경제적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생명권의 절대성 문제는 차치하고라도 안락사가 노년층이나 난치병 환자, 정신질환자를 비롯한 사회적·경제적 취약계층에게 강요될 수 있고 회복 불가능한 환자의 고통을 덜어주기보다 사회적인 부담을 줄이기 위한 수단으로 전락할 수 있다는 반대론자들의 우려는 쉽게 외면하기 어렵다.

법적·윤리적 기준에 관한 논란이 불가피하고 우리 사회의 가치와 의료윤리에 대한 진지한 성찰이 필요한 주제이기도 하다. 새겨야 할 것은 이 문제가 단순히 국회 차원에서 몇몇 전문가들과 다수결에 의해 결정돼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법률가와 의료 전문가는 물론 환자와 가족들, 사회학자나 윤리학자를 비롯한 학계, 종교계, 언론계, 장애인단체 등 다양한 계층에서 지속적인 대화와 연구를 통해 사회적 합의를 이룰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최창영 법무법인 해광 대표변호사

GoodNews paper ⓒ 국민일보(www.kmib.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Copyright © 국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