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현옥의 시선] 이기심의 고차방정식 된 의대 증원

하현옥 입력 2024. 2. 26. 00:32 수정 2024. 2. 26. 06: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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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현옥 논설위원

본질은 사라지고 숫자만 남았다. 필수 의료 및 지역 의료 강화를 위한 방안 중 하나로 추진한 의대 증원이 본질을 집어삼키고 있다. 의료 인력 재배치를 위한 구체적 논의는 뒷전이다. 2000명 증원의 실현 가능성에 대한 고민도 우선순위에서 밀린다. ‘의사 기득권 지키기’와 ‘의사 기득권 깨기’란 편 가르기 속 감정싸움을 넘어 치킨 게임으로 치닫는 양상이다.

의대 증원을 둘러싼 논란과 전공의 사직 등으로 인한 의료 파행 사태의 와중에 가장 많이 등장하는 말이 ‘이기심’이다. 이기심의 사전적 의미는 ‘자신의 이익만을 꾀하는 마음’이다. 의대 증원 사태가 갈등으로 치닫고 충돌로 격화하는 것은 이 문제를 둘러싼 이해당사자와 이해관계자가 자신의 이익을 꾀하기 위해 첨예하게 맞붙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의대 증원 논란은 이기심의 고차방정식이 됐다.

현재 상황에서 전공의는 이기심의 결정체로 여겨진다. 환자를 볼모로 삼아 이익을 지키려 한다며 이기적이라는 비난이 쏟아진다. ‘의대 증원 전면 백지화’와 ‘필수 의료 정책 패키지 백지화’라는 강경 주장은 여론의 반발을 산다. 정부는 행정처분과 함께 징역형 구형과 면허 취소도 적극적으로 검토한다고 엄포를 놓고 있다.

전공의는 아랑곳하지 않는다. 전공의는 수련의다. 임상 경험을 쌓으려 법적으로 허용한 주당 80시간의 근로와 8시간의 교육을 감내했다. 주 80시간 초과 근무도 비일비재했다. 평균 7000만원의 연봉을 따져보면 최저임금에도 못 미친다. 전공의가 이를 견뎌낸 데는 미래 수익에 대한 기대도 작용했다. 그런데 의대 정원이 늘며 경쟁이 치열해진다면, 다른 선택을 하는 게 낫겠다는 것이다. 옳고 그름의 판단을 떠나 그들의 선택에도 이유가 있다.

한국에서 자신을 갈아 넣으면서도 나쁜 놈 취급을 받을 바에야 해외에서 수련 받겠다며 고민하는 움직임도 나타나고 있다. 미국 의사면허시험(USMLE)과 일본 의사면허시험(JMLE) 준비 서적이 동나고, USMLE 준비 사이트도 접속 폭주로 다운됐다. 어차피 같은 돈을 받는다면 업무 강도가 낮은 해외 수련을 모색하겠다는 것이다.

「 사직한 전공의, 해외 수련도 고민
정부, 여론 지렛대 삼아 강경 모드
환자, 공공병원 놔두고 ‘빅5’로만

인건비 싼 전공의로 경영 효율을 꾀했던 대형병원은 이들의 줄사직으로 아비규환이다. ‘빅5’ 병원의 전공의 비중은 34~46%에 달한다. 병원 정상 운영에 필요한 적정 수의 의사를 전문의로 채웠다면 전공의 사직에 따른 파행을 피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렇지만 싸게 쓸 수 있는 의사를 두고 이익을 포기할 곳은 없다. 2020년 공공의대 설립에 반대해 벌어진 의사국가고시 거부 사태 때 대형병원장들이 전공의 구제를 위해 고개를 숙인 것도 선배나 스승으로서의 책임감과 함께 전공의 공백을 피하기 위한 것이었음을 부인할 수 없다. 실제로 의대 증원으로 싼값의 의사가 늘어나는 만큼 일부 병원장은 조용히 표정 관리한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의대의 인기가 하늘을 찌르는 상황에서 의대 증원은 대학에 불감청 고소원이었을 것이다. 다다익선이니 증원 규모 조사에서 마구잡이로 숫자를 써냈을 것이다. 그러나 전공의 사직과 의대 동맹 휴업이 벌어지자 지난 19일 의대학장 협의회는 돌연 ‘2000명 증원 철회’ 성명서를 내놨다. 책임지는 이는 없다. 개원의는 한발 물러서 있는 분위기다. 10~15년 뒤에 나올 의사를 경쟁자로 여기고 앞장 서 싸울 필요는 없다. 전공의의 저항을 대리전 삼아 정부와의 협상에서 자신들에게 유리한 방향을 고민하고 있을 것이다. 전공의가 개원의와 묶이길 기피하는 이유기도 하다.

의사 집단 내 각자의 계산 속에 강경 일변도인 정부는 환자를 볼모로 한다는 비판 여론을 지렛대 삼아 의사를 압박하고 있다. 개혁이란 '칼'을 빼 들었지만, 치밀하고 구체적인 계획은 없다. 무딘 칼을 휘두르며 처벌에만 목소리를 높인다.

의사와 정부의 전면전에 고통을 겪는 환자는 히포크라테스 선서를 한 의사가 아픈 사람을 내팽개치는 건 말이 안 된다고 주장한다. 맞는 말이지만 환자도 손해와 비용을 감수할 생각은 없다. 전공의가 떠난 대형병원을 대신해 공공병원이 진료를 늘렸지만 찾지 않았다. 그저 전공의가 돌아와 저가로 양질의 서비스를 계속 제공했으면 하고, 의대 증원으로 의사 수를 늘려 가격을 더 낮추면 된다고 강조한다. 전공의와 의대생이 반발하면 다 자르고 해외 의사를 데려오자고도 한다.

각자 주판알을 튕기는 이기심의 전면전은 답을 찾기 어려운 문제다. 이 고차방정식에서 답을 찾는 길은 각자의 이익을 조금씩 내려놓고 건설적인 논의를 하는 데서 시작된다. 과정은 지난하겠지만, 풀 지 못할 문제는 아니다.

하현옥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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