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두얼의 이코노믹스] 인력 통제수단 된 정원 제도, 이제는 철폐해야

입력 2024. 2. 26. 00:28 수정 2024. 2. 26. 06: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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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 등 전문자격사 제도 문제의 본질


김두얼 명지대 경제학과 교수
어쩌다 송사에 휘말린 사람이 있다고 하자. 그는 법에 대해 잘 모르기 때문에 전문가에게 돈을 주고 도움을 얻고자 한다. 하지만 그는 법 전문가라고 나선 사람이 제대로 실력을 갖춘 사람인지 판별할 수 없다. 법을 몰라 전문가에게 도움을 청하려 하는데, 도움을 청하려면 법을 알아야 하는 역설에 봉착한 것이다.

제품이나 서비스를 사려는 사람이 구매 대상에 대해 정확한 정보를 알 수 없는 상황을 경제학에서는 ‘정보 비대칭성’이 존재한다고 부른다. 중고차 시장은 정보 비대칭성이 존재하는 대표적인 경우다. 차를 파는 사람은 차의 이력이나 상태를 잘 알지만, 차를 사는 사람은 그렇지 못하다. 변호사나 의사처럼 전문 지식이 요구되는 서비스를 구매하는 경우 본질적으로 중고차 거래와 동일한 문제가 존재한다.

「 정보 비대칭 해소 위한 자격제도
서비스 구매·공급자 모두 이익

자격증 시험으로 인력 공급 통제
면허 소지자 고소득 유지 수단돼

직역 단체 반발에 손 놨던 정부
뒤늦은 대규모 증원이 반발 초래

이코노믹스

정보 비대칭성은 구매자뿐 아니라 공급자에게도 어려움을 가져다준다. 지불한 돈에 걸맞은 제대로 된 서비스를 구할 수 없다면 구매자는 제값을 치르고 구매하려 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는 공급자가 아무리 실력을 갖추고 선의를 가지고 있더라도, 서비스를 제공하고 돈을 벌 수 없는 상황에 빠질 수 있음을 뜻한다. 정보 비대칭성은 구매자나 판매자가 제대로 된 가격에 거래하지 못하리라는 기대를 가져다줌으로써 거래 자체를 포기하게 되는 상황, 즉 시장이 형성되지 못하고 양자 모두 불행해지는 결과를 야기할 수 있다.

면허, 일정 이상 능력자로 업무 제한

인류는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다양한 방안을 활용해 왔는데, 그 중 대표적인 것이 자격(certificate) 제도다. 자격 제도란 서비스 제공자가 일정 수준 이상의 능력을 갖추고 있다는 사실을 서비스 구매자나 제공자가 아닌 제3자가 인증해서 정보를 제공하는 것이다. 서비스 제공자에 대한 객관적 정보는 정보 비대칭성을 완화해 거래가 원활하게 이뤄지도록 하고, 서비스 구매자와 공급자 모두에게 이익을 가져다준다.

어떤 사람이 일정 수준 이상의 능력을 갖췄는지 판별해서 자격을 부여하는 가장 일반적인 방법은 시험이다. 예를 들어 토플이나 토익 같은 외국어 능력 인증시험은 어떤 사람이 외국어를 얼마만큼 구사하는 지를 시험 주관기관이 객관적인 방법으로 검증해서 알려줌으로써, 외국어 능력을 갖춘 사람을 고용하려고 하는 기업 등이 직면하는 정보 비대칭성 문제를 줄여준다.

박경민 기자

그런데 자격 중에는 단순히 정보를 제공하는 수준을 넘어 그런 수준의 능력을 갖춘 사람만 활동할 수 있도록 제한하는 것이 보다 적절한 것들도 있다. 복을 다루는 요리사를 생각해 보자. 능력을 갖추지 못한 요리사가 복 요리를 만들 경우, 자칫 손님이 회복하기 어려운 큰 피해를 볼 수 있다. 이런 경우에는 일정 수준 이상의 능력을 갖춘 사람만 복을 조리할 수 있도록 제한하는 것이 바람직할 수 있다. 능력을 갖춘 사람만 업무를 할 수 있도록 제한하는 종류의 자격을 면허(license)라고 부른다.

자격은 민간에서도 얼마든지 발급할 수 있는 반면, 면허는 국가가 운영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해당 면허를 갖지 않은 사람은 활동하지 못하도록 처벌 등을 통해 강제해야 하기 때문이다. 의사나 변호사, 회계사 등 여러 가지 자격은 우리나라를 포함한 많은 나라 정부가 면허 형태로 운영한다. 면허 제도는 헌법이 규정한 직업 선택의 자유와 충돌하는 측면이 있다. 하지만 서비스 제공자와 구매자 모두의 후생을 증대시킴으로써 얻는 사회적 이익이 더 크기 때문에 정당성을 인정받는다.

최소 인원 합격제, 합격 정원으로 변질

세상에 존재하는 많은 제도는 좋은 목적에 기반한다. 하지만 해당 제도가 현실에서 작동하는 방식은 원래 목적과는 매우 다른 경우가 허다한데, 면허 제도가 가장 대표적인 경우이다. 우리나라에서 전문서비스 공급과 관련한 면허는 오랫동안 원래 취지 즉 정보 비대칭성과 관련한 문제를 완화하기 위해 일정 수준 이상의 능력이 있는 사람만 특정 업무를 할 수 있도록 한다는 목적보다는 인력 공급을 통제함으로써 면허소지자의 소득을 높게 유지하는 수단으로 오용돼왔다.

박경민 기자

건국 이래로 우리나라 정부는 변호사나 변리사, 회계사 같은 전문자격사 시험을 시행하면서 합격 인원을 미리 정해놓고 시험을 실시하는 방식으로 운영했다. 그리고 합격 인원은 사회가 필요로 하는 수준보다 훨씬 낮은 수준으로 유지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이것은 해당 전문자격사의 소득을 비정상적으로 높이는 힘으로 작용했고, 이런 자격사 시험을 통과하는 것이 ‘개천에서 용이 나는’ 일로 여겨지도록 만들었다. 해당 서비스의 공급 부족으로 인한 높은 비용이 국민의 후생을 감소시킨 것은 물론이다.

이런 문제를 정부가 완전히 인지하지 못하거나 도외시하기만 한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 정부는 1990년대 말에 합격 인원을 미리 정하고 시험을 시행하는 방식을 폐지하고 일정 수준 이상의 능력을 갖춘 사람에게 모두 면허를 부여하는 방식으로 시험 제도를 개편했다. 단, 그럴 경우 시험 운영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자격사 단체가 시험 문제의 난이도를 불필요하게 높여서 인원을 통제하는 꼼수를 쓸 가능성이 있었다. 이를 막는 보완책으로 정부는 반드시 합격시켜야 하는 최소 인원을 발표했는데, 이를 ‘최소 합격 인원 제도’라고 부른다.

불행하게도 전문자격사별로 면허시험을 운영하는 개별 부처는 이런 개혁에 동참하지 않았다. 부처들은 일정 수준 이상 능력을 갖춘 사람을 모두 뽑는 대신 최소 합격 인원만큼만 뽑았고, 결국 최소 합격 인원은 시험 합격 정원의 다른 이름으로 전락했다. 심지어 최근에는 공인중개사 협회 회장 선거에서 합격 인원이 지나치게 많은 것을 통제하기 위해 최소 합격 인원 제도를 도입하겠다는 것이 후보자의 주요 공약으로 등장하는 웃지 못할 일도 일어났다.

정원 통제는 보다 복잡한 형태로 이뤄지기도 했다. 어떤 자격은 시험 한 번으로 능력을 측정하는 것이 적절하지 않기 때문에 교육과 결합해서 능력 평가가 운영되기도 한다. 과거에 사법시험은 시험 한 번으로 능력을 측정했지만, 2000년대 후반 도입된 법학전문대학원(법전원) 체제는 법전원을 졸업한 사람만 자격시험을 볼 수 있도록 함으로써, 자격 부여에 있어 교육을 결합했다.

의대·법전원이 인력 통제 수단 되기도

의사의 경우는 훨씬 오래전부터 의대 졸업생만 의사면허 시험을 볼 수 있었다. 이런 영역에서는 대학 또는 대학원 정원이 합격자 통제수단으로 활용됐다. 법전원 제도 도입 당시 결정된 전국의 법전원 정원 2000명은 절대 바뀔 수 없는 성역처럼 된 지 오래다. 현재 논란이 되는 의대 정원 역시 2000년대 중반에 정해진 숫자에서 단 한명도 바뀌지 않은 채 20년 가까이 유지됐다. 사회적 요구에 발맞춰 대학 혹은 학과 정원이 많은 영역에서 빠르게 변화해온 흐름에 비춰보면 정말 놀라운 일이다.

전문자격사 제도를 정상화하기 위해 합격 인원 통제를 없애거나 대학 또는 대학원 입학 정원을 조정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될 경우, 직역 단체는 시장이 포화상태라고 반박한다. 그런데 이 주장은 지금보다 공급이 늘어나면 의사나 변호사 등의 소득이 지금보다 감소한다는 말을 다르게 표현한 것일 뿐이다. 결국 자격사의 인원 통제가 자격사의 소득 수준 유지를 위한 수단이라는 뜻인데, 이는 면허 제도의 원래 취지와는 동떨어진 것이며, 정부가 특정 직역의 소득을 보장하는 규제를 한다는 것은 정당하지도 않다. 나아가 정원이 정해진 시점으로부터 많은 시간이 흘러 달라진 사회·경제 환경을 고려하지 않은 채, 과거의 기준으로 전문자격사의 영역을 규정하고 공급 인력을 고수하는 것은 사회·경제 발전을 가로막고 국민 후생을 저해한다.

면허 제도가 이렇게 원래 취지와는 동떨어진 방식으로 전락하게 된 근본 책임은 정부에 있다. 소관 부처는 많은 경우 인력 증원과 관련한 직역 단체들의 반발에 적극적으로 대응하기를 꺼린다. 심지어 직역 단체에 포획(capture)돼 정원 통제를 적극적으로 옹호하기도 한다. 그러다 보면 인력 공급이 원활하지 못한 탓에 사회·경제적으로 문제가 누적되는데, 그제야 정원을 큰 폭으로 조정하려 든다. 문제는 이것이 직역 단체에 또 다른 반대의 빌미를 제공한다는 사실이다. 직역 단체는 급작스러운 정원 증가가 자격사의 질을 떨어뜨림으로써 국민에게 피해를 입힌다는 주장을 펼친다. 그리고 정원 증가를 몰아붙이지 말고 원점에서 다시 차분히 논의를 진행하자고 요구한다. 이런 반론은 사실 여부를 떠나, 애당초 자격사 관련 교육 인력 정원이 원활하게 조정됐다면 제기되지 않았을 비판이라는 점에서 동의하기 어렵다.

정원에 대한 소모적 논쟁 지양해야

가장 당황스러운 것은 정부가 입학 정원이나 최소 합격 인원을 늘리려고 할 때 직역 단체가 정부 안이 과학적 근거가 없다고 비판하는 것이다. 면허 제도 운용에서 정부의 책임은 일정 수준 이상의 능력자를 선별하는 것이지 미래를 예측하는 것이 아니다. 이런 점을 도외시한 채, 정부 방안의 문제점을 찾아내서 증원 방안을 막으려고 하는 것은 잘못된 질문으로 문제의 본질을 호도하는 일일 뿐이다.

지난 수십 년 동안 정부는 제도의 원리를 잘못 이해하고 운영한 결과, 전문자격사와 관련한 거의 모든 영역에서 면허는 인력 통제 수단으로 둔갑했고, 비생산적인 논쟁이 놀라울 정도로 똑같은 방식으로 되풀이됐다. 궁극적으로 이것은 사회·경제 발전을 가로막고, 국민에게 피해를 가져다줬다. 이런 문제를 해결해야 할 당사자는 당연히 정부다. 현재 진행되는 의대 정원 문제에 머물지 말고, 전문자격사 제도 운용을 제도의 원리에 충실하게 바로 세움으로써 더는 소모적인 논쟁이 반복되지 않게 하기를 요청한다.

김두얼 명지대 경제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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