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봉렬의 공간과 공감] 도시 같은 자연, 라빌레트 공원
산업혁명 이후 과밀화로 열악해진 근대 도시를 치유하기 위해 19세기 중반 영국 리버풀에서 최초의 ‘공공의 정원’, 즉 공원이 탄생했다. 꽉 찬 도심의 일부를 비워 숲과 초원과 호수를 만들었다. 파리에는 불로뉴 숲이, 뉴욕에는 센트럴파크가 조성되었다. ‘도심 속 독립된 자연’이라는 개념은 근대의 도시공원이 추구한 진리적 가치였다.
파리 북동부의 라빌레트는 1975년까지 도축장과 육류시장이 있었던 지역이다. 당시 미테랑 정부는 ‘위대한 파리계획’의 하나로 새로운 공원 조성을 추진했다. 전 세계 800여 점이 응모한 현상 경기에서 스위스인 베르나르 추미의공모안이 당선되는 이변이 일어났다. 당시 39세의 당선자는 이미 이론가로서 상당한 내공을 쌓았으나 건축가로는 첫 작품이었다. 그는 ‘도시 같은 공원’의 기치로 자연 같은 공원이라는 전통적 개념을 전복시켰다.
55㏊의 광대한 면적을 점-선-면의 중첩된 레이어들로 조직화했다. 26개의 작은 건물들인 ‘폴리’가 격자형 축선 상에 배열돼 점의 요소가 됐다. 이들을 산책로와 선형 데크, 공중 통로와 운하가 선적으로 연결한다. 점과 선 사이의 여백에 12개의 주제 정원과 대형 녹지를 조성했다. 빨간색의 폴리들은 카페나 전망대, 매표소, 어린이시설로 사용되며, 코드를 붙여 위치를 확인하는 기준점이 되기도 한다. 공원 곳곳에 예술학교와 공연장과 전시관 등 도시적 시설들이 산재한다. 시설은 분산되고 공간은 각각 다른 배경으로 병존한다. 공원의 주체는 시설이나 자연이 아니라 그곳에서 일어나는 시민들의 행위와 움직임이기 때문이다.
추미는 데리다의 철학에 동조해 중심의 분산이라는 해체적 전략을 실현했다. 분산된 건축의 장면들은 에이젠슈타인의 몽타주 각본 기법을 따라 설계된 결과다. 라빌레트 공원은 거대한 해체주의적 건축이고, 철학적으로 재구성된 자연이며, 영화적으로 편집된 세트와 같다. 21세기 도시공원들은 추미의 패러다임 속에서 조성되고 있다.
김봉렬 건축가·한국예술종합학교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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