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리그 달굴 린가드 가세… “이제 ACL 무대 밟아볼까”

이누리 2024. 2. 25. 2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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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인] ‘서울의 봄’ 이끌 김기동 FC 서울 감독
김기동 감독이 지난 16일 태국 후아힌 트루아레나에서 FC 서울의 동계 전지훈련을 이끌고 있다. FC 서울은 올해 EPL 출신 제시 린가드의 합류로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다. 김 감독은 “축구는 스타 한 명으로 할 수 없다”면서도 “ACL은 꼭 나가고 싶다”고 말했다. 한국프로축구연맹 제공


‘재활공장장’ 김기동(52) 감독이 다시 팀 ‘재건’에 나선다. 5년 전 지휘봉을 잡은 포항 스틸러스에서도 한 차례 실현해본 일이지만 말처럼 쉬운 건 아니다. 악조건 속에서 새 전술을 짜고, 부상 선수들을 일으켜 세우기 위해 그간 김 감독은 누구보다 많이, 또 빨리 뛰어야 했다.

뼈를 깎는 노력으로 포항에 ‘축구 명가’ 타이틀을 되찾아줬던 그가 이제는 FC 서울에 손길을 뻗는다. 반등이 어느 때보다 절실하다. 서울은 K리그에서 손꼽히는 명문 구단이지만 최근 4년간은 리그 하위권을 맴돌고 있다. 아시아축구연맹(AFC) 챔피언스리그(ACL) 무대도 밟아본 지 오래다.

팀을 위해서도, 감독 자신을 위해서도 올 시즌은 중요한 분기점이다. 시즌 개막을 앞두고 일본 가고시마에서 전지훈련을 비롯해 ‘새 판 짜기’에 한창인 김 감독을 18일 유선상으로 만났다. “새로운 도전이 필요했다”고 운을 뗀 그는 인터뷰 내내 “김기동의 서울을 보여주겠다”고 강조했다.

5년 만에 올 ‘서울의 봄’

2개월 차 서울 감독은 벌써 팀에 녹아들어 있었다. 서울 간판스타 기성용(35), 조영욱(25) 등 이제껏 상대 팀으로만 만났던 선수들과 부대끼며 의외의 면도 발견했다. 김 감독은 “바깥에서 봤을 땐 선수들이 ‘서울 깍쟁이’인 줄 알았는데 훈련하는 태도가 정말 진지해 놀랐다”며 “코치들에게도 너스레를 떨 정도”라고 말했다.

올 시즌 가장 큰 주목을 받고 있는 ‘최대어’ 제시 린가드(32·사진)도 이미 탐색을 완료했다. 김 감독은 “연습 경기를 뛰게 해보니 영리하고 퀄리티 높은 선수라고 느꼈다”며 “볼 터치, 패스 하나하나 허투루 하는 게 없다. 다 의미 있는 움직임이고 패스를 주고받는 타이밍도 놀라울 정도로 좋다”고 설명했다.

사진=뉴시스


다만 체력적인 부분은 좀 더 끌어올려야 한다. 김 감독은 “정상적인 몸 상태는 아니”라며 “개막전 등판도 쉽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밝혔다. “이번에 연습 경기 50분을 뛰게 하면서 ‘적당히 뛰지 말라’고 했더니 ‘50분을 90분처럼 뛰겠다’는 거예요. 그런데 40분쯤 뛰고 나니까 바로 혓바닥이 나오더라고요. (웃음) 실망했다고 말했더니 본인도 막 웃더라고요.”

물론 선수의 의지만 있다면 김 감독의 트레이닝 아래 K리그 최강 병기로 거듭날 수 있다. 김 감독은 “주위에서 ‘대체 린가드가 여기에 왜 왔냐. 사업 때문에 온 거냐’고 의구심을 갖는 분들이 많은데, 철저한 식단 조절에 훈련량도 차츰 늘려가는 걸 보면 얼마나 축구에 진심인지 알 수 있다”며 “오늘도 본인은 50분밖에 안 뛰었다며 경기가 끝나고도 웨이트하러 가더라”고 전했다.

린가드의 등장에 K리그 흥행은 따놓은 셈이지만, 그렇다고 성적까지 보장된 건 아니다. 김 감독은 “린가드 하나 들어왔을 뿐, 주전 멤버들이 다 빠져나가는 바람에 전력은 이전과 똑같다고 보면 된다”며 “축구는 스타 한 명 갖고 할 수가 없다”고 강조했다.

올 시즌 변수가 될 포지션은 3선 수비다. 이번에 센터백으로 이라크 국가대표 출신 레빈 술라카(31)를 데려오긴 했지만 직접 확인한 선수가 아니라 아직 불안 요인이 있다. 김 감독은 “공격 쪽에서는 좀 더 직선적이고 역동적인 축구를 보여줘야 한다”며 “그러려면 3선에서 앞선까지 볼을 얼마나 빠르게 찔러주느냐가 관건”이라고 짚었다.

변화가 거센 만큼 너무 많은 것을 욕심냈다간 탈이 날 수 있다. 김 감독은 “리그는 6위만 들어도 되지 않겠느냐고 하지만 일단 축구 자체가 재밌어야 한다”며 “아시아에서 활약하는 FC 서울이 됐으면 하는 기대에서 ACL은 꼭 나가고 싶다”고 말했다.

멀리서 봐야 희극

“사람들은 제가 탄탄대로를 걸어온 줄 알아요.”

그도 그럴 만하다. 지도자로서 첫발을 뗀 2013년 코치 시절부터 지금까지 그의 현역 은퇴 후 경력은 끊긴 적이 없다. 23세 이하 대표팀 이광종호에 코치로 승선했을 땐 아시안게임에서 28년 만의 무실점 우승에 힘을 보탰고, 포항에선 꾸준히 성적을 내 지난 시즌엔 FA컵 우승컵까지 거머쥐었다. 2020 K리그1 감독상, 2023 대한축구협회 올해의 지도자상 등 각종 수상 기록은 덤이다.

한국프로축구연맹 제공


김 감독은 “결과와 별개로 과정을 보면 매 순간 위기였다”고 돌아봤다. 감독 데뷔를 치른 2019년엔 충격적인 4대 5 역전패를 당했다. 먼저 4골을 몰아치고도 막판 25분 동안 상대 강원 FC에 5골을 허용해 다 잡은 승리를 놓쳤다. 4골 차를 뒤집은 역전 승부는 K리그는 물론 세계 축구사를 통틀어도 드문 일이기에 김 감독에겐 아직도 아픈 기억으로 남아있다.

이후에도 한동안 부진을 거듭하던 그는 단장에게 찾아가 “2개월만 기회를 달라. 그 안에 정상화하지 못하면 그만두겠다”며 배수진을 쳤다. 다행히 반등에 성공해 한때 강등권이었던 순위를 4위로 끌어올린 채 첫 시즌을 마쳤지만, 그때 강수를 두지 않았더라면 지금의 김기동은 없었다.

‘재활공장장’이라는 별명도 얻고 싶어 얻은 게 아니다. 팀 상황상 비싼 선수를 데려올 수 없다 보니 신인 선수 혹은 전성기보다 기량이 떨어진 선수들을 살려야만 했다. 매해 이적, 부상, 입대 등 다양한 이유로 선수를 잃으며 시즌을 치렀다. 직전 시즌도 공격수부터 중원까지 부상 병동이나 다름없었다. 가용 자원이 턱없이 부족했지만 재활과 선수 육성을 병행하며 버텼다.

“선수를 포기해본 적은 없어요”

김 감독은 용장, 지장, 덕장, 운장을 넘어서는 ‘육각형 감독’을 꿈꾼다. 그 육각형 중심에는 ‘선수’가 있다. 전술도 중요하지만 선수들의 활용법을 고민하지 않으면 무용지물이기 때문이다. 물론 재활에 능한 김 감독이어도 어려운 선수는 있기 마련이다. 이미 자신만의 축구 스타일이 몸에 밴 나이 든 선수들의 경우 단점을 발견해도 손을 대기 어려웠다.

고집이 센 선수들은 감독의 틀에 적응할 수 있도록 조금씩 변화를 줬고, 본래 생각했던 전술까지 완전히 찌그러뜨리면서 선수를 살리기 위해 노력했다. 아무리 기다려도 폼이 오르지 않는 선수는 임대를 보낸 후에도 끝까지 손에서 놓지 않았다. 김 감독은 “주변에서 ‘이 선수까지 살리는 거 보고 인정했다’는 말을 들으면 꽤 뿌듯하다”며 웃었다.

애써 키운 선수들이 다른 팀으로 가면 힘이 빠질 만도 한데, 그는 “전혀 서운하지 않다”며 단호히 말했다. 선수들과 약속을 했기 때문이다. “저는 선수들한테 그러거든요. 나하고 있을 때 잘해서 이 팀이 너를 담을 수 없게 만들어라. 큰 물고기가 돼서 어항이 아니라 바다로 가야 한다. 내가 그런 선수로 만들어줄 테니 여기서 만족하지 말아라.”

최근 그가 대표팀 차기 사령탑 후보로 거론되는 것도 그래서 사실 이상한 일은 아니다. 그만큼 선수에 대한 남다른 애정, 축구를 향한 진심, 또 위기관리 능력을 갖춘 지도자가 한국 축구에 필요하다는 뜻이리라. 그러나 정작 김 감독은 “K리그 문제로도 벅차다”며 “생각해본 적 없는 자리”라고 선을 그었다.

이누리 기자 nuri@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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