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판대 오를 ‘심판론’…KO펀치는 누구 [신율의 정치 읽기]
개혁신당에 조국신당 출범…민주당 골칫거리로
이재명 민주당 대표 2선 후퇴 가능성 더 높아져
가히 ‘심판론 전성시대’다.
이번 총선에서만 심판론이 등장한 것은 아니다. 심판론은 선거 구도를 형성하는 데 있어 결정적인 역할을 하기 때문에, 거의 매 선거마다 등장한다. 특히 정권 3년 차에 치러지는 선거에서 그런 현상이 더욱 두드러진다. 하지만 이번처럼 ‘다양한’ 심판론이 등장하는 선거가 있었을까.
민주당은 당연히 정권 심판론을 들고나왔다. 정권 심판론 부각을 위해 김건희 여사 문제를 수시로 꺼낸다. 그런데 이런 전략은 그다지 성공적인 것 같지 않다. 김건희 여사 관련 사안의 약발이 서서히 떨어져가는 것 같다. 윤석열 대통령 신년 대담 관련, 김건희 여사 명품백 수수 논란에 대한 윤 대통령 사과가 미흡했다는 지적이 많았다. 오히려 정권에 부담만 됐다는 분석도 있었다. 그런데 ‘대담’에 대한 여론이 포함됐던 지난 2월 16일 발표된 한국갤럽 자체 정례 여론조사(2월 13일부터 15일까지 전국 18세 이상 1002명을 대상으로 전화 면접조사, 응답률은 13.7%,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 ±3.1%포인트, 자세한 사항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를 보면, 대통령 지지율은 지난 2주 전보다 4%포인트 상승했다. 대담이 민심에 악영향을 줬다면, 이런 여론조사 결과가 나올 수 없다. 김건희 여사 명품백 수수 문제에 대한 여론 관심이 점차 낮아지고 있다는 분석이 가능하다.
여기다 한동훈 위원장이 ‘운동권 심판론’을 들고나오면서 민주당은 더욱 난감한 상황에 직면하게 됐다. 엠브레인퍼블릭이 지난 2월 4일과 5일 양일간 전국 18세 이상 1005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전화 면접 방식의 조사, 응답률은 12.6%,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 ±3.1%포인트, 자세한 사항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를 보면, 이번 총선 성격으로 ‘민주당이 주장하는 정권 심판론’을 지목한 응답자는 38%인 반면, ‘국민의힘이 주장하는 86운동권 심판론’을 꼽은 응답자는 30%였다. 정권 심판론이 운동권 심판론보다 8%포인트 높게 나왔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는 이번 총선이 정권 심판론으로만 치러지기는 힘든 상황임을 보여준다. 즉, 운동권 심판론도 만만치 않은 기세를 보이고 있다는 의미다.
이런 와중에 제3지대 연합 정당인 개혁신당이 창당 11일 만에 다시 분당됐다. 빅텐트가 무너진 것은 민주당으로서는 오히려 잘된 일이다. 여론조사를 보면 빅텐트로 출범한 개혁신당은 민주당 지지율을 더 잠식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앞서 언급한 한국갤럽 여론조사에서 국민의힘 지지율은 2주 전 대비 3%포인트 올라 37%의 지지율을 기록한 반면, 민주당은 2주 전 조사에 비해 4%포인트 빠져 31%의 지지율을 기록했고, 개혁신당 지지율은 4%였다. 개혁신당 출현에도 불구하고 국민의힘 지지율은 상승한 반면 민주당 지지율은 하락했다는 것은, 개혁신당이 민주당 지지율을 더 잠식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때문에 민주당은 민주당 지지율을 잠식하는 정당의 공중분해를 반길 만하다.
그렇다고 100% 반길 상황만은 아니다.
개혁신당이라는 3지대 연합 정당은 출범 당시부터 이념 색채가 지나치게 다양하고, 따라서 개혁신당 앞길에는 도처에 ‘지뢰’가 깔려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이런 측면에서 보면, 3지대 연합 정당 와해는 예정돼 있었다. 하지만 총선을 앞둔 시기에 합쳤다 분당하면 이낙연 대표와 이준석 대표 모두가 치명상을 입을 수밖에 없기 때문에, 당장 분당될 것이라고 생각하는 이는 많지 않았다. 실제 이낙연 대표도 분당까지는 생각하지 않았던 것으로 알려진다. 그런데 이낙연 대표가 2월 20일 분당을 전격 선언했다.
첫째, 이준석 공동대표가 이낙연, 김종민 두 사람이 나갈 경우 이원욱 의원과 천하람 위원장을 최고위원에 임명하면 된다고 기자들에게 말한 사실이 분당을 결심한 계기가 됐을 수 있다. ‘새로운미래’ 측은 이런 언급을, 이준석 대표가 자신들을 몰아내려고 애초부터 계획하고 있었다는 증거로 생각했을 수 있다. 그래서 깨끗한 결별을 선택했다는 분석이다.
둘째, 이낙연 대표가 분당을 선언하기 전날, 김영주 국회부의장이 탈당을 선언하면서 자신이 하위 20%에 들었음을 밝혔다. 이는 하위 20% 의원에게 통보가 시작됐음을 의미하는데, 이런 ‘통보’ 역시 ‘새로운미래’ 측이 분당을 결심하는 계기가 됐을 수 있다. 즉, 비명이 상당수 포함됐다고 알려진 하위 20% 의원은 자신들의 정치적 미래를 고민할 수밖에 없게 됐다. 이런 상황이 세력 확장의 기회가 될 수 있다고 ‘새로운미래’ 측은 판단할 수 있다는 의미다. ‘새로운미래’ 이낙연 대표가 “진짜 민주당을 세우겠다”고 말한 이유도, 공천이 어렵게 된 비명 의원 포섭을 의식한 발언이라고도 볼 수 있다.
때문에 이낙연 대표의 ‘새로운미래’는 당분간 ‘이재명의 민주당’을 심판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 ‘이재명의 민주당 심판론’이 대두될 것이라는 말이다.
그런데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조국신당까지 출현했다. 조국신당은 민주당의 골칫거리가 될 수 있다. 민주당이 정권 심판론으로 선거를 치르려는 전략에 걸림돌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조국 전 장관 등장은 과거 2020년 조국 사태를 떠올리게 만들어, 총선판에 다시금 ‘공정’ 문제를 소환할 가능성이 있다. 이른바 ‘불공정 심판론’이 재등장할 수 있는 것.
민주당도 이런 문제점을 인식한 듯 보인다. 박홍근 더불어민주당 민주개혁진보 선거연합(민주연합) 추진단장은 “설령 (조국)신당이 만들어지더라도 이번 총선 승리를 위한 선거연합 대상으로 고려하기 어렵다는 점을 밝혀둔다”며 분명한 선 긋기에 나섰다. 그렇다고 민주당 뜻대로 거리 두기가 성공할까. 민주당이 아무리 거리를 두려 해도, 일반 유권자들은 조국 전 장관을 보면서 민주당을 떠올릴 것이다.
종합적으로 보면, 이번 선거에서 나오는 심판론은 ‘정권 심판론’ ‘이재명의 민주당 심판론’ ‘운동권 심판론’ 그리고 ‘불공정 심판론’으로 요약된다. 다양한 심판론이 제기되면서 특정 심판론이 선거판을 지배할 수는 없는 환경이 됐다.
상황이 이렇게 될수록 이재명 대표의 2선 후퇴 가능성은 커진다. 이 대표가 뒤로 물러나고 전면에 비대위를 내세울 가능성이 크다는 말이다. 이 대표가 2선으로 후퇴한다 해도, 그 시기는 공천이 마무리되는 시기 즈음이 될 것이다. 다만 이때의 2선 후퇴는 자칫 책임 회피용 2선 후퇴라는 말을 들을 수 있다. 제1야당 대표이자 정치 지도자로서의 이재명 대표가 당당한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서는 공천이 마무리되기 이전인 지금 뒤로 물러나야 한다. 지금 기회를 놓치면 친문 반발은 더욱 거세지고, 이런 내홍은 총선 승리 가능성을 낮춘다. 총선 승리에 모든 것을 걸 수밖에 없는 이 대표는 지금 현명한 선택을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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