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우크라이나 전쟁 2주기 맞이하며… 누가 나의 진정한 가족인가
누가 상상이나 했을까. 우크라이나 전쟁이 2주기까지 올 줄을…. 아직도 끝을 모르는 공방전과 그 속에서 죽어가는 군인들, 그리고 민간인들. 그 어떤 명분을 찾으려고 해도 찾을 수 없는 이 전쟁의 끝은 언제일까.
나는 지난 설날 연휴를 이용하여 2월 8일부터 12일까지 한국교회봉사단, 글로벌위기대응네트워크와 함께 일본 이시카와현의 노토반도 지진 피해지역에 긴급 구호를 다녀왔다. 무너져내린 집들과 갈라진 도로들, 불타버린 건물들의 잔해들. 온통 폐허가 된 도시, 인구의 90% 이상 떠난 마을은 그 자체로 유령 도시였다. 마치 지진으로 상처받은 수많은 일본인의 마음처럼 도시 곳곳은 갈기갈기 찢어져 있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그들을 위해 기도하는 것일 뿐. 그래도 작은 소망을 잃지 않기를, 그리고 하나님의 위로를 경험하기를…. 우리는 함께 가져간 본죽과 겨울옷을 전달하였다.
내가 또 일본에 가야 할 이유. 가야 할 곳은 동경이다. 2022년 2월 24일 우크라이나 전쟁이 터질 때 나는 폴란드 바르샤바에 거주하고 있었다. 수많은 피난민이 폴란드로 넘어왔다. 하루에도 수십만 명의 피난민들이 국경을 넘었다. ‘이 상황에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기도하며 결정한 것은 우선 이들에게 보금자리를 마련하는 것이었다. 여러 도움의 손길들을 통해 작은 호스텔이나 호텔을 빌려 쉼터를 시작했다.
그때 우리 쉼터에 들어온 한 우크라이나 가족이 있었다. 그 가족은 젊은 엄마와 어린아이 둘 그리고 남동생이 전부였다. 젊은 엄마의 이름은 카트리나, 17살 남동생의 이름은 로스란, 4살 아들의 이름은 엘리세이, 3살 여동생의 이름은 율리아나. 아빠는 이혼하고 없다. 부모님도 모두 돌아가셨고 가족은 이 네 명이 전부. 아빠의 품이 아주 그리웠는지 늘 율리아나는 내 품에 안겨 있었다.
그렇게 몇 개월을 쉼터에서 지내다가 갑자기 이 가족이 일본으로 간다는 것이다. 일본 정부가 마련한 우크라이나 피란민 정착 프로그램을 통해서 일본 요코야마로 가고 싶다는 것이다. 그렇게 정이 들고 가족같이 지냈건만 멀리 보내야 한다니 섭섭한 마음이 많이 들었다. 그래도 어쩌겠는가…. 일본으로 향하는 날 공항에서 일본행 비행기를 타고 일본으로 떠나보낸 지 1년 8개월이 지났다.
나는 동경에서 이 가족을 만나기로 한 것이다. 그 넓은 동경역 앞 광장에서 무작정 만나기로 했다. 한 모퉁이에 기다리며 서 있는데 왜 이리 마음이 떨리던지…. 혹시나 이 아이들이 나를 못 알아보면 어쩌나, 그동안 무슨 일이라도 있었던 것은 아닐까. 그렇게 기다리다 살짝 뒤를 돌아보는 순간 어떤 여자아이 하나가 뛰어오며 나에게 안긴다. 율리아나였다. 나는 율리아나를 품에 안고 터지는 눈물을 주체할 수 없었다. 마치 정말 내가 낳은 자녀인 양 꼭 안아주었다. 가족 모두를 안아주었다. 여전히 말이 통하지 않는 상황에서 내가 해줄 수 있는 건 안아주는 것뿐이다.
식당으로 이동하는 내내 율리아나는 내 품을 떠나질 않는다. 나도 율리아나를 내려놓고 싶지 않았다. 점심을 함께 먹으며 구글 번역기를 돌려가며 부리나케 얘기한다. 그동안 어떻게 지냈는지, 일은 하고 있는지, 아이들은 잘 적응하고 있는지, 교회는 다니는지, 어려움은 없는지 등등. 그런데 놀랐던 것은 너무 잘 지내고 있다. 캡슐 호텔에서 일도 하고 있고 아이들은 어린이집에 잘 다니고, 로스란은 작은 샌드위치 가게도 열려고 준비하고 있단다. 아이들이 정말 잘 컸다. 아빠 없이 크고 있지만, 전혀 아빠 없는 아이들 같지가 않다. 너무 이쁘다. 그냥 먹는 모습만 보아도, 바라만 보아도 너무 이쁘다. 한국에서 가져간 과자를 주니 너무너무 좋아한다.
우리는 그다음 날 주일까지도 동경온누리교회에서 함께 예배를 드리며 너무 많은 축복을 받았다. 마키토 후쿠자와 목사님과 사모님, 여러 성도님으로부터 기도도 받고 축복송을 받으며 너무나 큰 사랑을 받았다.
또 한 가지 기가 막힌 사연이 있다. 교회를 다니고 있느냐는 질문에 최근 호텔에서 함께 일하는 친구가 다니는 교회를 함께 갈 계획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어딘지 주소를 확인하여 마키토 목사님께 알려드렸더니 이 교회는 여호와의 증인이라는 것이다. 정말 아찔한 생각이 들었다. 우리가 만나지 않았다면 이단에 빠질 뻔한 것이다. 이것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나는 목사님께 카트리나 가족을 부탁드렸다. 좋은 교회도 소개해 주시고 계속 지켜봐 달라고 말이다. 목사님은 흔쾌히 승낙하셨다.
마가복음 3장 31~33절에는 이런 말씀이 나온다. “이때 예수님의 어머니와 형제들이 밖에 와서 사람을 시켜 예수님을 부르자 둘러앉은 사람들이 예수님께 ‘선생님 어머니와 형제분들이 밖에서 선생님을 찾고 계십니다.’ 하고 말하였다. 그때 예수님은 그들에게 ‘내 어머니와 형제가 누구냐’ 하신다.”(현대인의 성경)
누가 내 진정한 가족일까. 피 한 방울 섞이진 않았고 잠시 만났던 가족이지만 예수님의 사랑으로 품고 함께 했던 이들, 이들이 바로 우리의 진정한 가족들 아닐까. 내 이웃을 사랑하라는 예수님의 말씀을 다시 한번 가슴 깊이 느끼며 빨리 이 전쟁이 끝나길 기도드린다.
김아영 기자 singforyou@kmib.co.kr
GoodNews paper ⓒ 국민일보(www.kmib.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Copyright © 국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예복은 달라도 믿음 하나로 전신갑주처럼 순종의 옷을 입다 - 더미션
- 5300㎞ 거리 최전방까지 구호품 배달 사역… “희망은 살아있다” - 더미션
- 전도지·티슈 나눠주며 “입학 축하”… 선물같은 복음을 건네다 - 더미션
- “냉동 배아도 태아”… 미 대법원 첫 판결 - 더미션
- “3선 금배지 뗀 뒤 봉사하며 신앙 회복… 선한 삶이 성공한 삶” - 더미션
- 셀린 송 감독 “‘기생충’ 덕분에 한국적 영화 전세계에 받아들여져”
- “태아 살리는 일은 모두의 몫, 생명 존중 문화부터”
- ‘2024 설 가정예배’ 키워드는 ‘믿음의 가정과 감사’
- 내년 의대 정원 2천명 늘린다…27년 만에 이뤄진 증원
- “엄마, 설은 혼자 쇠세요”… 해외여행 100만명 우르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