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은 장애와 관련없다… 즐겁게 하는 게 중요” 시각장애 피아니스트 쓰지이 노부유키
“신은 그의 눈을 가져갔지만 가장 위대한 피아노 작품을 아우를 수 있는 신체적, 정신적 재능을 주셨다.”
2009년 미국 반 클라이번 콩쿠르 심사위원이었던 거장 피아니스트 메나헴 프레슬러(1923~2023)는 일본 출신의 쓰지이 노부유키에 대해 이렇게 평했다. 시각장애를 가진 쓰지이는 경연장에 부축받으며 등장했지만 피아노 앞에서 연주하는 모습은 비장애인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결국 쓰지이는 경이로운 연주력과 표현력으로 공동 1위에 올랐다. 쓰지이는 앞서 2005년 쇼팽 국제 콩쿠르에서도 최연소로 비평가상을 받으며 국제적 주목을 받은 바 있다.
‘기적의 피아니스트’라는 수식어가 따라다니는 쓰지이(36)가 다음 달 3일 서울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첫 단독 내한 리사이틀을 갖는다. 2011년 피아니스트 손열음과 듀오 콘서트 무대에 선 지 13년 만이다. 이번 무대에서는 바흐 ‘프랑스 모음곡’, 쇼팽의 즉흥곡들, 드뷔시 ‘판화’, 라흐마니노프 ‘악흥의 순간’을 연주한다.
쓰지이는 최근 국내 언론과 가진 온라인 인터뷰에서 “음악은 장애와 관련이 없다”며 “어릴 때는 ‘왜 나는 다른 사람과 다를까’ 생각하기도 했지만, (눈이 안 보여도) 음악을 통해 제가 할 수 있는 건 다 표현할 수 있다”고 말했다.
쓰지이는 의사인 아버지와 아나운서 출신 어머니 사이에서 선천성 소안구증을 가지고 태어났다. 하지만 2살 때 어머니의 노래를 듣고 장난감 피아노로 그 선율을 칠 정도로 음악적 재능을 보였다. 4살 때부터 피아노를 배우기 시작한 그가 작품을 익히는 방법은 왼손과 오른손이 따로 녹음된 음악을 듣고 이를 통째로 외우는 방식이다. 그는 “초등학생 때 점자 악보로 음악을 익히는 방법을 배우기도 했지만 그건 시간이 너무 많이 걸린다”고 밝혔다. 듣기 난해한 현대음악에 대해서도 “도전을 좋아하는 성격이기 때문에 어려운 곡을 만나면 더 열정이 생긴다”고 강조했다.
그런데, 리사이틀의 경우 혼자 연주하면 되지만 오케스트라와의 협연은 어떻게 할까. 협연자와 지휘자의 소통이 필수적이기 때문에 앞이 보이지 않는 쓰지이에게는 만만치 않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는 “지휘자의 숨소리에 집중해 신호를 알아차린다”면서 “여기에 리허설을 여러 번 반복하면서 호흡을 맞춰나간다”고 밝혔다. 다만 예전에 그리그의 피아노 협주곡을 연주할 때 도입부의 팀파니 소리 때문에 지휘자의 숨소리를 듣지 못해 시작할 타이밍을 놓친 적도 있단다.
쓰지이는 반 클라이번 콩쿠르 우승 이후 세계 각지에서 연주하고 있다. 콩쿠르 이후의 변화를 묻자 그는 “20대 때는 젊음과 열정으로 연주했다면, 지금은 표현력이 좀 더 깊어진 것 같다”면서 “콩쿠르 우승으로 여러 나라를 방문해 그곳의 거리를 걷고, 공기를 느끼는 기회가 는 것도 표현력을 좋게 만든 배경이라고 생각한다. 연주 기회가 많아진 만큼 인생 경험이 많아졌고, 그런 인생 경험을 음악에 녹이게 됐다”고 말했다.
쓰지이는 작곡가로도 활동하며 일본 영화와 드라마 주제곡 작업에 참여하고 있다. 쓰지이가 작곡한 것을 연주하면, 다른 사람이 이것을 악보로 옮겨 주는 방식이다. 2011년에는 자신이 작곡한 ‘쓰나미 희생자들을 위한 비가’를 무대에서 앙코르곡으로 연주해 큰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그는 “내 안에서 떠오르는 이미지나 자연 속에서 걸으며 느끼는 바람, 새의 울음소리 등에서 영감을 얻는다”고 말했다.
시각장애로 인한 여러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쓰지이는 “장애를 가졌기 때문에 힘들다고 생각한 적은 없었다. 그래서 장애를 ‘이겨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면서 “늘 긍정적이셨던 어머니의 영향 덕분인지 나 역시 어릴 때부터 장애를 의식하지 않고 그저 음악에 집중했다”고 털어놓았다. 이어 장애 등 여러 어려움을 가진 후배 연주자들에 대한 조언을 묻자 “음악은 우리 모두를 하나로 만들어주는 수단”이라면서 “음악에는 어떠한 제한도 없기 때문에 그저 즐겁게 하면 좋지 않을까 싶다”고 피력했다.
장지영 선임기자 jyjang@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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