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려 54년 동안 반장... 94세 류봉화 이야기

남해시대 전병권 2024. 2. 25. 1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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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세까지 해도 좋을 듯" 남해읍 유림 2리 1반 반장... 절대적 신임의 힘은 '고무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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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해시대 전병권]

오전 9시 30분 경남 남해군 남해읍 유림2리 경로당에는 유림2리(이장 정철)의 '왕할머니' 류봉화(94)씨가 가장 먼저 출석 도장을 찍는다. 문을 열고 겨울에는 보일러를 켜고 물도 끓이며 동생들을 맞이할 준비를 한다. 밤새 마을에는 무슨 일이 없었는지 살피며, 주위를 청소하기도 한다. 

그녀는 올해로 54년차 유림2리 1반 '반장'직을 수행하고 있다. 

반장은 이장을 지원하면서 마을의 소식통이 역할도 한다. 특히 주민들과 원만한 관계 속에서 마을회비를 걷거나 수도요금, 전기요금, 적십자회비 등 공과금을 받기도 하며, 각종 고지서를 나눠주는 등 봉사하는 자리다.

"처음엔 남편이 반장이었는데, 조금 거들다 보니까..." 그렇게 54년
 
 류봉화 남해읍 유림2리 1반 반장을 지난 15일 유림2리 경로당에서 만나 인터뷰를 진행했다. 류봉화 반장이 반장을 시작하면서 함께한 추억의 물건인 검정 고무신을 대신한 최근 검정 고무신과 경로당의 열쇠, 서류 등을 보이며 반장으로서 자부심을 드러내는 미소를 짓고 있다.
ⓒ 남해시대
지난 16일 유림2리 경로당에서 본지와 만난 류봉화 반장. 그녀는 94세라는 나이가 믿기지 않을 정도로 총명하고 명석하며, 맡은 일은 끝까지 해내는 책임감을 지녀 주민들의 절대적인 신임을 얻고 있다. 100세를 향해가는 인생에서 절반 이상을 마을에 반장으로서 봉사를 해오고 있는 그녀.

류 반장은 남해군 221개 마을 반장 중 최장기 반장과 최고령 반장 칭호를 받을 수 있는 유일무이한 존재다.

류 반장은 설천면 모천마을에서 태어나 19세에 결혼해 70년 넘게 유림리에 뿌리를 내리고 아들 4명과 딸 2명을 낳고 성실히 살아가고 있다. 그녀는 유림리가 1, 2리로 분리되기 전부터 근현대를 살아가고 있는 역사다.

또, 마을에서 여성 중 가장 나이가 많은 어르신이다. 남편인 강표성 어르신도 100세가 넘어 장수부부로 든든히 자리하고 있다. 반장을 하게 된 계기는 무엇일까?

"우리 영감이 처음 반장을 맡게 됐는데, 농사도 지어야 하고 할 일이 많았지. 그래서 실제로는 반장 일에 집중하기가 어려워서 내가 조금씩 거들다 보니까 어느 순간 내가 하고 있더라고."

류봉화 반장은 남편이 1960년대 후반 반장직을 처음 접한 것으로 기억하고 있어, 1969년 내지 1970년쯤 본인이 반장을 처음 맡은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슬하에 자녀도 한둘이 아니고 육아와 가정, 농사도 지어야 했는데 본인도 바쁘지 않았을까?

류 반장은 "조금만 더 부지런하면 돼"라면서 대수롭지 않은 듯 답했다. 그러면서 "실제 내가 활동하니까 주민들도 인정해주고 그럴 거면 나보고 반장을 하라는 얘기를 많이 들었다"면서 "이장님들도 내보고 해달라고도 했고, 마을을 위해 봉사할 수 있는 일이라, 깊이 고민 안 하고 시작하게 됐어"라고 말했다. 

검정고무신의 의미

지금까지 반장을 하면서 보람을 느끼고 좋았던 때는 언제일까? 그는 곧장 검정 고무신을 떠올렸다. 그녀는 "옛날에 반장을 하게 되면 마을에서 검정 고무신 한 켤레를 주더라고. 그거 신고 주민들 만나려고 많이 뛰어다녔지"라고 회상했다. 1년에 한 켤레로는 응당 부족하지만 그녀의 기억 속에는 반장 세월을 함께한 검정 고무신이 반장의 상징이라고 한다.

반대로 힘들었을 때는 없었을까? 그는 "고비가 한 번 있었는데, 우리 마을이 유림1리, 2리로 분리되고 2개 마을 반장을 겸임한 적이 있어. 그때 사람이 없다고 내보고 해달라고 부탁을 하는 거야. 그래서 했지"라며 "몸은 하나요. 챙길 곳은 넓어지니 몸이 힘든 거야. 그래서 2년을 겨우 채웠지"라고 말했다.

반장, 언제까지 할 수 있을까? 류 반장은 "자식들도 진작에 그만하라고, 만류하고 있지. 그래도 어쩌겠어. 주민들도 그렇고 이장이 바뀌어도 내보고 해달라고 하는데 건강에 문제가 없으면 해야지"라고 밝혔다. 이어 "옛날에는 통신이 안 좋았지. 근데 지금은 얼마나 발달했다고. 세상이 좋아져서 신체적으로 많이 애쓰지 않아도 된다"고 설명했다. 또 "100세까지 해야 하는 건 아니지만, 그것도 나쁘지는 않을 것 같다"며 미소를 지었다.

정철 이장은 "반장님 덕분에 마을에 대해 많이 배우고, 이장 일에 많은 도움을 받고 있다"며 "적극적으로 주민들과 소통하고 반장 을 맡아 주시니 감사할 따름"이라고 전했다.

류봉화 어르신은 당시 신었던 검정 고무신 대신 새 고무신과 경로당 열쇠 등을 보이며 반장으로서 자부심을 표현했다.

류봉화, 그녀는 지금도 내일도 유림2리 1반 반장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남해시대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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